눈 내리자 대학 강의실서 '의외의 떼창' 터졌다...캐럴의 세대교체

양승준 2023. 12. 25.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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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럴 팝송' 천하 깨고 엑소 '첫 눈' 깜짝 1위
뮤비도 없는 5번째 수록곡 10년 만의 '역주행' 
각국 캐럴 인기곡 공통점은 '미운오리새끼'
공개 당시 주목받지 못하다가 뒤늦게 인기
"1020의 옛 노래 '디깅' 문화로 더 강세"
그룹 아이브가 '첫 눈 챌린지'를 하고 있다. 아이브 사회관계망서비스 캡처
그룹 엑소의 인기 캐럴 '첫 눈'이 실린 음반 표지.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지난 1일 경기 안성시의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문화예술세미나 수업. 노트북을 빔프로젝터에 연결하며 강의 준비를 하던 김모 교수가 "눈이 온다"고 말하자 학생들은 창밖을 내다보며 환호했다.

수업 직전의 강의실은 '노래방'으로 돌변했다. 10여 명의 학생들은 어깨동무를 한 채 같은 노래를 불렀다. 대학 축제 때처럼 '떼창'이 터진 곡은 아이돌 그룹 엑소의 '첫 눈'. 김 교수는 "학생들이 유튜브로 '첫 눈'을 틀고 함께 부르기에 '왜 이 노래냐'고 물어봤더니 '초등학생 때 엄청난 추억을 쌓은 노래'라고 하더라"고 웃으며 말했다.

20대에게 '첫 눈'은 특별한 노래다. 대학생 임나영(23)씨는 "엑소의 (최고 히트곡인) '으르렁'(2013)이 나왔을 때 중학생이었는데 그때 대부분의 친구들이 엑소를 좋아했다"며 "겨울만 되면 친구들이 '첫 눈'을 찾아 듣곤 했다"며 또래의 추억을 들려줬다. 40대 이상 세대가 눈 오는 연말에 미스터투의 '하얀 겨울'(1993)이나 터보의 '화이트 러브'(1998) 등을 떠올린다면, 20대는 크리스마스 시즌 노래로 '첫 눈'을 품고 살아온 셈이다.

그룹 트와이스 멤버들의 '첫 눈 챌린지' 모습.
그룹 스트레이키즈 멤버들의 '첫 눈 챌린지' 모습.
교사와 제자들의 '첫 눈 챌린지' 모습.
인기 유튜버 엔조이커플의 '첫 눈 챌린지' 모습.
공고했던 외국 캐럴 '벽'을 부수다

엑소의 '첫 눈'이 올 연말 음원 시장을 들썩이게 하고 있다. 이달 19일부터 24일까지 멜론 등 여러 음원 플랫폼에서 1위다. 2013년 12월 발표된 이 노래가 음원 차트 정상에 오르기는 이번이 처음. '첫 눈'은 엑소의 겨울 스페셜 앨범 '12월의 기적'에 실린 타이틀곡도 아닌 다섯 번째 수록곡이었다. 기획사에서 소위 '미는' 곡이 아니라서 뮤직비디오도 제작되지 않았다.

이변은 지난달 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틱톡에 '이번 겨울에 첫 눈 챌린지 같이할 사람?'이란 제목의 영상이 올라온 뒤 시작됐다. 세 청년이 '첫 눈' 후렴인 "너를 만나면 눈물 차올라. 메리 메리 크리스마스"에 맞춰 양손으로 눈물이 흘러내리는 춤을 추는 모습이 입소문을 타면서 SNS엔 '첫 눈 챌린지'란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굴비 엮이듯 올라왔다. '첫 눈 챌린지' 열풍으로 20대에 이어 10대까지 엑소의 '첫 눈'을 찾아 들으면서 음원 차트 정상까지 치고 올라갔다. 1020세대가 주도해 음원 차트에서 '캐럴의 세대교체'를 이룬 배경이다. 9개 플랫폼의 음원 소비량을 집계하는 써클차트에 따르면, 지난 5년간 12월에 가장 많이 재생된 캐럴은 머라이어 캐리의 '올 아이 원트 포 크리스마스 이즈 유'(1994)와 아리아나 그란데의 '산타 텔 미'(2014) 등 모두 외국 팝송이었다.

공고했던 외국 캐럴의 '벽'을 허문 '첫 눈'은 곡 제목처럼 첫 눈이 내리는 날 첫사랑을 떠올리며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을 담은 발라드풍 노래다. 작곡가 미친감성은 "후렴에서 고음으로 확 터지는 전통적 캐럴 히트곡들과 달리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게 '첫 눈'의 차별점"이라고 평했다. 곡이 발표된 지 10년이 지난 시점에 안무를 맞춰 본 적 없는 노래가 음원 차트 정상까지 휩쓸자 엑소도 놀란 눈치다. 수호는 "'첫 눈 챌린지'를 계기로 음원 차트에서 점점 순위가 올라 처음엔 우리도 놀랐다"고 말했다.

미국 가수 브렌다 리는 1958년 발표한 '로킹 어라운드 더 크리스마스 트리'로 올해 12월 미국 빌보드 정상에 올랐다. 유니버설뮤직 제공
머라이어 캐리가 브렌다 리에 보낸 1위 축하 꽃다발. 브렌다 리 사회관계방서비스 캡처
'1위' 미뤄진 머라이어 캐리가 꽃다발 보낸 사연

한국에선 '첫 눈'이 크리스마스의 새 노래로 떠올랐다면, 미국에선 브렌다 리의 '로킹 어라운드 더 크리스마스 트리'(1958)와 머라이어 캐리의 '올 아이 원트~'가 이달 미국 빌보드 '핫100' 정상에 차례로 오르며 인기를 끌었다.

한국과 미국에서 올해 사랑받은 캐럴 히트곡들은 모두 처음엔 '미운오리새끼'였다. 곡 발표 당시엔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 뒤늦게 차트를 '역주행'하며 빛을 봤다.

머라이어 캐리가 1994년 부른 '올 아이 원트 포 크리스마스 이즈 유'는 크리스마스 시즌 때마다 각국에서 울려 퍼진다. 소니뮤직 제공

"친애하는 브렌다님, 당신의 역사적인 1위를 축하합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시고요." 브렌다 리는 이런 문구가 적힌 엽서와 함께 꽃다발을 머라이어 캐리로부터 최근 받았다. 1958년 낸 노래 '로킹 어라운드~'로 이달 둘째 주 빌보드 '핫100' 정상에 처음 오른 데 대한 후배 가수의 축하였다. 1944년생인 리는 팔순을 앞두고 65년 전 낸 노래로 '역대 최고령 빌보드 핫100 1위'란 역사를 쓴 뒤 셋째 주까지 1위 자리를 지켰다. 곡이 발표된 지 65년이 된 올해 뮤직비디오를 새로 찍어 요즘 젊은 세대의 관심을 불러 모은 결과였다. 리는 최근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초현실적"이라며 깜짝 1위를 놀라워한 뒤 "13세 때 스튜디오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워 두고 모든 연주자들이 '산타 모자'를 쓴 상황에서 이 노래를 녹음했다"고 옛 곡 작업 뒷얘기도 전했다. 리에 이어 이달 셋째 주 1위 자리를 물려받은 '올 아이 원트~'도 공개 9년 뒤인 2003년 개봉한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 실리면서 뒤늦게 사랑받았다.

'캐럴 역주행' 이변 속출한 이유
왬!의 노래 '라스트 크리스마스'(1984)가 실린 음반 재킷 이미지.
남성 듀오 왬! 멤버 앤드루 리즐리가 1984년 발표한 노래 '라스트 크리스마스'로 올해 12월 영국 차트에서 정상에 처음 오른 뒤 기념패를 들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오피셜차트 홈페이지 캡처

세계 캐럴 시장에서 신곡은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한다. 추억을 기반으로 모든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곡들이 전통적으로 강세였다. 영국에서도 조지 마이클이 생전에 활동했던 듀오 왬!이 1984년에 부른 '라스트 크리스마스'가 지난 22일 자 오피셜차트 주간 순위 정상에 올랐다. 곡 발표 39년 만에 영국에서 첫 1위를 찍었다. 김상화 음악평론가는 "옛것을 새로운 방식으로 즐기는 '뉴트로' 열풍에 요즘 젊은 세대들이 옛 노래를 발굴하며 즐기는 '디깅' 문화까지 더해져 추억의 캐럴이 세계 음악 시장에서 더 주목받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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