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가족의 '숨 쉴 틈' 연중무휴 ‘긴급돌봄센터’
긴급 시 돌봄공백 메우기엔 부족…대상·범위 확대해야
(부산=뉴스1) 조아서 기자 = #평소 조울증을 앓던 박미연씨(38)는 최근 극심해진 불안 증세에 발달장애인 딸 서아(7)와 함께 있는 시간이 더욱 힘겨워졌다. 심신의 안정이 필요하다는 주치의 말에도 선뜻 용기를 내지 못했던 미연씨는 발달장애인 긴급돌봄센터를 찾아 상담을 받고 서아와 잠시 떨어져 자신을 돌보기로 마음 먹었다.
#이경희씨(43) 부부는 연말을 맞아 첫 가족 여행을 떠난다. 발달장애인 장남 병준이(13)를 돌보느라 몇번이나 미뤄왔던 둘째 희준이(8)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장시간 이동을 힘들어 하는 병준이는 3일간 발달장애인 긴급돌봄센터에서 지내기로 했다.
#나진숙씨(57)는 지난 10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천청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아들 민석씨(27)를 떠올렸다. 성인이지만 발달장애인인 아들을 맡길 곳이 없어 동동거리던 진숙씨는 발달장애인 긴급돌봄센터에 민석씨를 맡기고 어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곁에서 지켰다.
크리스마스, 새해를 일주일 앞둔 이맘때면 평소 가족에게 소홀했던 이들도 미뤄왔던 안부 전화를 걸거나 떠났던 고향에 돌아오는 등 가족의 품을 찾는다. 이렇게 수많은 가족 가운데 발달장애인 가족이 있다.
이들은 특별한 날 모여 화기애애한 시간을 갖는 여느 가정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만 24시간 연중무휴 끝없는 '돌봄' 노동에 시달리곤 한다.
특히 한부모 가족, 고령 보호자의 경우 그 무게감은 배가 된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강서갑)이 지난해 발달장애인 가족(433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발달장애인 가족 10명 중 6명(59.8%)이 극단적 선택을 고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극단적 선택을 고민하는 이유로 △평생 발달장애자녀(가족)를 지원해야 하는 부담감(56.3%)이 가장 큰 것으로 조사됐다. 다음으로 △발달장애자녀(가족) 지원으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어려움(31.1%) 등이 뒤를 이었다.
발달장애인 가족이 갖는 가장 큰 문제는 가족의 희생을 대체할 만한 사회적 제도나 안전장치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들을 위해 부산시는 지난 7월1일 금정구에 첫 발달장애인 긴급돌봄센터를 개소해 시범운영하고 있다.
센터는 발달장애인의 보호자가 입원하거나 경조사, 신체적·심리적 소진과 같은 긴급상황이 있을 때 최장 7일 내(연 최대 30일) 일시적으로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최인금 부산시 발달장애인 긴급돌봄센터장은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많은 어머니들이 우울증, 조울증 등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지만 정작 자신을 돌볼 시간적 여유는 잠깐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면서 "보호자가 행복해야 발달장애인도 행복할 수 있다. 센터는 발달장애인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을 위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이용자 한달에 5명꼴…이용 활성화 위해 접근성 높여야
센터 이용자는 지난 7월 1일 개소 이후 12월 현재까지 약 반년간 30명으로, 한달에 5명꼴이다. 센터에 따르면 가장 큰 장벽은 보호자들의 '죄책감'이다.
보호자는 센터를 이용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증명해야 한다. 보호자가 심리적 이유를 발달장애인을 맡길 경우 정신의학과 진단서를, 병원에 입원한 경우 입·퇴원 기록서를, 지병이 있는 경우엔 각종 진단서를 필수로 제출해야 한다.
최 센터장은 "죽을 것 같아서 찾아왔다는 분도 필요한 서류를 말씀드리자 그냥 가시더라"며 "안그래도 죄책감에 시달리는 보호자들에게 스스로 이유를 증명하게 하는 절차는 그들을 한번 더 머뭇거리게 만드는 걸림돌로 작용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에 센터는 본래의 설립 취지를 살리기 위해 지난 10월부터 '사전체험제'를 도입했다. 최대 24시간(1박2일)뿐이지만 '사유 제한 없음'으로 이용 접근성을 대폭 완화한 것이다.
그는 "처음에 불안해하던 부모님들도 한두번 이용하고 나면 나중엔 자녀가 본인을 찾지 섭섭하다며 농담하기도 한다"며 "입소 전 상담을 통해 센터 선생님들이 발달장애인 분들의 식성, 루틴, 증상 등을 습득하고 최대한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하게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 없이도 살 수 있는 세상…제도적 보완 필요
지금까지 센터 입소자 중 최연소는 8세, 최고령은 60세였다. 센터 이용 대상은 만 6세 이상~65세 미만의 등록 발달장애인이다.
보통 발달장애인 하면 아동을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현실적으로 50~60대가 된 발달장애 자녀를 돌보는 70~80대 노모도 적지 않다. 주 보호자였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경우 형제·자매가 보호자가 되면서 돌봄이 대물림되기도 한다.
최 센터장은 "고령의 보호자의 경우 수술하기 위해 서울에 있는 병원을 가기도 하고 장기간 입원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며 "1회 최장 일주일(1년 최대 30일)인 이용기간은 돌봄 공백을 채우기엔 현실적으로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현행 조건으로는 돌봄의 사각지대가 여전히 존재한다. 경조사의 경우 2촌 이내 가족만 가능하다. 심지어 부모(보호자)가 아플 때만 발달장애 자녀를 맡길 수 있어 또다른 자녀나 조부모가 아플 경우 센터의 서비스는 무용지물이 된다.
최 센터장은 이용 조건 확대, 센터 재량권 보장 등 현장 상황을 반영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그는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들은 소원이 '자식보다 하루만이라도 더 사는 것'이라고 자주 말씀하신다. 정말 끔찍한 말이다, '내가 없어도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돼야 하지 않겠냐"며 "우리 센터가 끝나지 않는 돌봄 노동의 작은 '숨 쉴 틈'이 될 수 있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ase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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