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존엄 아내의 가슴을 본떴다...전세계 미녀들도 너도나도 [김기정의 와인클럽]

김기정 전문기자(kim.kijung@mk.co.kr) 2023. 12. 25.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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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정의 와인클럽 30- 샴페인의 잔과 병

넷플릭스 인기 시리즈 ‘에밀리 파리에 가다’에서 쿠프 잔을 든 에밀리가 양조장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화면캡쳐
“샴페인은 플루트(flute) 잔에 마시는 거 아니에요?”

“쿠프(coupe) 잔이 더 섹시해요. 마리 앙투아네트의 가슴을 본뜬 잔이거든요.”

에밀리는 샴페인 잔을 자신의 가슴에 맞춰보고, 양조장 남자의 손도 에밀리의 가슴을 향합니다. 넷플릭스 인기 시리즈 ‘에밀리 파리에 가다’의 한 장면입니다.

연말이라 모임에서 샴페인을 마실 일이 많습니다. 사발모양의 쿠프 샴페인 잔은 실제로 프랑스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가슴을 본뜬 것일까요? 수도사 돔 페리뇽은 어떻게 샴페인을 발명하게 되었을까요? 샴페인을 발명한 건 돔 페리뇽이 아닌 영국인이란 이야기도 있는데 어떤 것이 사실일까요? 이번주 김기정의 와인클럽은 샴페인과 관련한 ‘오해와 진실’을 다룹니다.

여성의 가슴을 본뜬 술잔
슈퍼모델 케이트 모스와 그녀의 왼쪽 가슴을 본뜬 쿠프 샴페인 잔. 영국 보그 매거진 사진 캡처
실제로 여성의 가슴을 본뜬 쿠프 샴페인 잔들이 있습니다. 유명 예술가들과 슈퍼모델들이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2014년 영국 조각가 제인 맥아담 프로이트(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증손녀)는 슈퍼모델 케이트 모스의 왼쪽 가슴 모양을 본뜬 쿠프 잔을 제작합니다. 이에 앞서, 독일 패션 디자이너 카를 라커펠트도 2007년 슈퍼모델 클라우디아 쉬퍼의 가슴으로 쿠프 잔을 만듭니다. 클라우디아 쉬퍼의 잔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잔으로 알려진 자트 테톤(jattes tetons·젖꼭지 그릇)을 떠올립니다.

여성의 가슴과 유두를 형상화한 잔은 고대 그리스에서 유래합니다. 그리스인들은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되는 헬렌의 가슴을 본떠 만든 마스토스(mastos)라는 잔을 사용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마스토스 잔
고대 그리스의 마스토스 잔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는 기원전 570~55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마스토스가 있습니다. 마스토스는 ‘가슴’이란 뜻입니다. 한쪽 가슴이 없는 여전사 아마존(Amazon)은 가슴(mazos)과 없다(without)라는 의미의 접두사(A)가 합쳐졌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물론 다른 해석도 많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가슴
마리 앙투아네트
여성 가슴모양의 술잔 이야기는 프랑스 루이 16세 때 다시 등장합니다. 당시 귀부인들 사이에선 ‘예쁜 가슴 경연대회’도 있었다고 합니다. 사실 여부를 떠나 프랑스 혁명을 촉발한 귀족사회의 분위기를 표현하는 이벤트로 표현됩니다.

루이 16세는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그녀의 가슴을 본뜬 도자기 그릇을 선물했다고 합니다. 또 마리 앙투아네트가 귀족 부인들에게 모유 수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프랑스의 도자기 회사 세브르에서 만든 자트 테톤(jattes tetons·젖꼭지 그릇)을 사용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당시 전통에 따라 자신의 가슴모양을 본뜬 그릇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자트 테톤(위)과 모델 클라우디아 쉬퍼의 쿠프 샴페인 잔이 비슷하지만 자트 테톤은 술잔이라기 보다는 우유그릇 용도일 가능성이 더 높아 보입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의 자트 테톤
모델 클라우디아 쉬퍼의 쿠프 잔. 돔 페리뇽
트로이 전쟁의 헬렌에서 시작돼 루이15세의 정부 마담 퐁파두르, 루이 16세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나폴레옹의 여인 조세핀 보나파르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여성들의 가슴이 샴페인 술잔과 연관돼 등장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남성들의 ‘판타지’ 용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입니다.

‘가슴의 역사’(A History of the Breast)의 저자인 메릴린 옐롬 스탠포드대 교수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누군가가 어느 시점에서 어떤 유명한 여성의 가슴을 모형으로 만들어 잔으로 사용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면서도 “마리 앙투아네트가 자신의 가슴을 잔 만드는 데에 빌려주었을 것이라는 증거는 전혀 없다”고 밝혔습니다.

크루아상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다. 우리에게 빵을 달라”며 폭동을 일으킨 시민들을 향해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해”라고 말한 마리 앙투아네트의 망언은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그러나 이 말도 마리 앙투아네트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예전부터 쓰던 표현을 당시 혁명세력이나 후세의 작가들이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미지에 ‘사치’를 부여하기 위한 ‘상징’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 영어로 번역된 ‘케이크’는 생일 케이크의 케이크가 아니고 왕비가 먹던 브리오슈 또는 크루아상으로 보기도 합니다. 브리오슈는 버터와 달걀이 듬뿍들어간 ‘사치품’이었고, 크루아상은 오스트리아에서 유래된 빵으로 오스트리아 출신 왕비에 대한 적개심을 부각시키기에 용이했습니다.

크루아상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의 황녀였던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에 시집오면서 함께 온 오스트리아 제빵사들에 의해 프랑스에 소개됐습니다. 크루아상은 초승달 모양을 하고 있는데 프랑스어로 초승달이 ‘croissant’ 입니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결국 38세 생일을 며칠 앞두고 단두대에서 목이 잘립니다.

다양한 종류의 샴페인 잔
다양한 종류의 샴페인 잔
샴페인을 마실 때는 어떤 잔을 써야 할까요?

쿠프 잔은 과거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고 ‘에밀리 파리에 가다’의 에밀리와 양조장 청년(극중에선 17세 소년으로 설정)처럼 로멘틱한 상상의 나래를 펼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쿠프는 칵테일 잔으로도 많이 사용됩니다.

가늘고 기다란 플루트 잔은 샴페인의 기포가 올라오는 모습을 즐기는 데 적합합니다. 샴페인은 눈으로 마시는 와인이란 평가와 어울립니다.

플루트 잔은 잔의 입구가 좁아 기포를 잘 가둬두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샴페인에서 퍼지는 향을 제대로 맡을 수 없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코를 막고 샴페인을 마시는 것과 같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요즘은 화이트 와인잔과 플루트의 중간형태인 튤립 모양의 잔도 샴페인 잔으로 많이 사용됩니다.

플루트 샴페인 잔
레스토랑에서 코르크 차지(Cork Charge)를 와인 ‘병’ 대신 ‘잔’으로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샴페인, 화이트, 레드, 디저트 와인 순으로 여러 번 잔을 바꾸다 보면 비용이 많이 나오는데 복합미가 풍부한 샴페인은 일반 화이트 잔에 마셔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스파클링은 매춘부나 마시는 술
샴페인을 마시기 위한 쿠프 글래스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시대보다 100년 앞선 1663년 영국서 만들어 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샴페인의 종주국 프랑스가 아닌 영국에서 샴페인 잔이 만들어졌을까요?

프랑스 샹파뉴 지방에서 생산되는 샴페인이 지금과 같이 아름다운 기포를 담게 된 건 불과 300년 전 정도로 보는 게 타당할 것 같습니다. 그 전에는요? 샹파뉴 지역에도 와인이 생산됐습니다. 적포도 품종인 피노 누아로 만든 일반 스틸(still) 레드 와인인데 색이 다소 연했다고 합니다.

당시 샹파뉴에서 생산된 레드 와인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봄에 생기는 ‘버블’이었습니다. 효모는 포도의 당을 알코올과 이산화탄소(버블)로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는데요. 샹파뉴는 다른 지역보다 추워서 겨울에는 효모가 활동을 중단하고 발효도 함께 중단됐습니다.

와인 생산자들은 그런 사실을 모른 채 와인을 병에 옮겨 담았고 봄이 되어 효모가 겨울잠에서 깨어 다시 활동을 시작하면 병에 버블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프랑스 와인병은 너무나도 약해서 버블로 병의 내부 압력이 높아지면 종종 ‘펑펑’ 소리를 내며 병이 박살 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와인창고에 들어가려면 철가면을 써서 얼굴을 보호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샴페인 저장고에선 와인병이 ‘펑’하고 터지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장고에 들어가려면 유리병 파편으로 부터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했습니다. alamy
샴페인 저장고에선 와인병이 ‘펑’하고 터지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장고에 들어가려면 유리병 파편으로 부터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했습니다.
당연히 와인에서 나오는 ‘버블’은 결함으로 간주하고 스파클링 샴페인은 ‘악마의 와인’으로 불렀습니다. 당시 프랑스 사람들은 스파클링 샴페인을 마시는 것을 품위 없는 행동으로 생각했습니다. 스파클링은 ‘사고’로 만들어진 와인이었으니까요. 심지어 스파클링은 ‘매춘부’를 위한 술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습니다.
샴페인 발명은 돔 페리뇽이 아닌 영국인
크리스토퍼 메렛
1660년대 영국에선 프랑스 샹파뉴의 와인이 인기였습니다. 스파클링이 아닌 일반 레드 와인이었는데요. 겨울철 런던 부두로 옮겨진 샹파뉴의 레드 와인은 봄만 되면 탄산 버블이 생겨 스파클링 와인으로 변해있었습니다. 프랑스인과 달리 영국인은 스파클링 와인을 좋아했으며 왜 와인에 버블이 생기는지 궁금해했습니다.

1662년 영국의 과학자 크리스토퍼 메렛(Christopher Merret)은 와인 속 당분이 버블을 만든다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그리고 설탕(당분)을 넣으면 어떤 와인이건 스파클링 와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샴페인 양조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2차발효’의 이론적 근거가 됩니다.

영국 상인들은 기존 스틸(still) 샴페인과 구분지어 버블이 있는 ‘스파클링(sparkling) 샴페인’을 팔기 시작하는데 스파클링 샴페인은 영국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영국인들이 샴페인을 포함한 스파클링 와인의 발명자는 영국인이라고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터지지 않는 삼페인 병의 탄생
제임스 1세
와인에서 버블이 생기는 원리를 알아낸 크리스토퍼 메렛은 와인 전문가가 아닌 유리병 전문가였습니다. 제임스 1세가 뜻하지 않게 영국을 유리병 제조강국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선 제임스 1세가 ‘킹 제임스 성경’으로 유명합니다. 제임스 1세는 국민들에게 성경을 보급할 생각으로 영어판 성경을 편찬할 것 지시하는데 ‘킹 제임스 성경’은 그의 주요업적으로 기록됩니다.

제임스 1세는 1621년 장작을 사용한 화로의 사용을 금지시킵니다. 영국 해군의 전선을 만들 나무를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유리병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던 나무대신 석탄으로 유리병을 만듭니다. 높은 온도에서 석탄불로 만든 유리 와인병은 나무장작을 때서 만든 프랑스의 유리 와인병보다 더 튼튼했습니다. 영국에서 만든 와인 병은 샴페인 발효과정에서 나오는 탄산가스의 높은 압력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펑펑’ 터지는 위험이 없어지면서 샴페인은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게 됩니다.

영국이 석탄으로 튼튼한 유리 와인병을 만들지 않았으면 프랑스의 샴페인이 지금처럼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돔 페리뇽 신화의 붕괴
돔 페리뇽
오랜기간 샴페인 소비자들은 프랑스 수도사 돔 페리뇽이 1697년 샴페인을 ‘발명’했다고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돔 페리뇽은 와인의 거품을 증폭시키기보다는 거품을 만드는 2차 발효를 멈추게 해 스틸와인이 ‘악마의 와인’인 스파클링 와인으로 변하는 것을 막는 일에 좀 더 집중한 것으로 보입니다.

돔 페리뇽의 샴페인 신화는 1821년 오빌레 수도원에 부임한 돔 그로사르가 만든 이야기에 기인한 것으로 보입니다. “별을 마신다”는 표현이나 돔 페리뇽이 눈이 안 보여서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한다는 얘기도 각색돼 전해졌습니다. 돔 페리뇽이 촛불을 들고 와인 저장고에 내려가는 삽화도 함께 그려져 있는데 시각장애인이면 촛불이 필요없었겠지요. 이러한 여러 가지 돔 페리뇽 신화는 1950년대 뉴욕 맨해튼의 광고대행사가 만든 ‘스토리텔링’에서 시작됐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와인의 ‘결함’으로 생각됐던 ‘버블’
샴페인 쿠프 잔
당연한 얘기겠지만 프랑스 사람들은 영국인이 샴페인의 발명자라는 주장을 탐탁지 않게 생각합니다. 프랑스에선 남부 랑그독의 와인산지 ‘리무(Limoux)’의 수녀들이 이미 1531년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했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

샹파뉴의 한 유명 와인생산자는 프랑스 신문 르 피가로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영국인은 자신이 샴페인의 발명자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샴페인이 아닌 ‘샴페인 소비’의 발명자입니다. 그들이 와인의 반짝임(스파클링)을 먼저 감상한 공로는 인정합니다.”

사실상 스파클링 와인의 발명자는 ‘자연(Nature)’이라는 분석이 타당할 것 같습니다. 물론 돔 페리뇽이 헌신적인 노력을 통해 지금의 샴페인 양조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연말입니다. 샴페인을 마실 때 쿠프 잔을 함께 주문해 마리 앙투아네트와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보세요. 처음에는 결함으로 인식되었던 샴페인의 거품이 지금은 전 세계 술꾼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지 않나요? 다름을 결점이 아닌 다름으로 인정하고 즐겨야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새해에는 각자의 반짝이는 개성을 단점으로 보지 않고 멋진 장점으로 담아줄 튼튼한 샴페인 병과 같은 사람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

김기정 매일경제신문 컨슈머전문기자가 와인과 관련해 소비자들이 궁금해하는 내용들을 풀어드립니다. 김 기자는 매일경제신문 유통팀장, 식품팀장을 역임했고 레스토랑 와인 어워즈(RWA), 아시아와인트로피 , 한국와인대상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기자페이지에서 ‘구독’을 누르면 쉽고 빠르게 와인과 관련한 소식을 접할 수 있습니다. 질문은 kim.kijung@mk.co.kr로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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