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집권, 군부 출신 대통령…그 나라에 드리운 먹구름[이세형의 더 가까이 중동]

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2023. 12. 2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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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 이집트 대통령, 3선 성공해 2030년까지 집권 가능
철권통치와 세속주의 강조가 3선 성공 비결
경제난과 가자지구 전쟁 등 불안 요소 산적
멀게 느껴지지만 우리와 뗄 수 없는 중동.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정치, 경제, 자원, 종교, 역사, 문화가 얽혀 있는 갈등과 변화의 ‘핫스팟’ 중동의 모습을 쉽고, 재미있게 또 인사이트를 담아 알려 드리겠습니다.

카이로 특파원, 국제부 차장, 카타르의 싱크탱크 아랍조사정책연구원(ACRPS)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중동을 취재했습니다. 단행본 <중동 라이벌리즘>과 <있는 그대로 카타르>를 펴냈습니다.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 2014년부터 이집트 대통령으로 재임 중이며 최근 3선에 성공한 시시 대통령은 2030년까지 이집트를 이끌 예정이다. AP 뉴시스
압둘팟타흐 시시(69).

이집트 대통령이다. 10~12일(현지 시간) 치러진 이집트 대통령 선거에서 89.6%의 득표율로 승리했다. 2014년부터 집권 중이며, 이번 선거로 3선에 성공했다. 2030년까지 집권 가능하다.
시시 대통령은 이집트 육군사관학교를 나온 군인 출신이다.

그는 2010년 12월 이웃나라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 민주화 운동으로 이집트에서 30년(1981년 10월~2011년 2월) 간 철권통치를 펼쳤던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1928년 5월~2020년 2월)이 2011년 2월 권좌에서 쫓겨난 뒤 권력을 장악했다.

정확히는, 당시 이집트에도 잠시나마 ‘카이로의 봄’이 있었다. 무바라크 대통령이 물러난 뒤 민선 지도자인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1951년 8월~2019년 6월)이 2012년 6월 대선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슬람 근본주의를 추종했던 무르시 전 대통령은 보수 이슬람 사상이 담긴 정책을 강조하며 이집트의 뿌리 깊은 세속주의에 반대되는 행보를 보였다. 당연히 국민들의 불만은 커졌다. 부정부패와 무능한 국정운영도 국민들의 불만을 키웠다.

결국 무르시 전 대통령은 1년 1개월 뒤인 2013년 7월 시시 대통령이 중심이 된 군부에 의해 축출됐다. 사실상 시시 대통령이 무바라크 전 대통령의 절대 권력을 이어받은 인물인 것. 시시 대통령을 ‘21세기의 파라오’, ‘이집트의 스트롱맨’으로 부르는 이유다.

● 더 이상 ‘아랍의 맹주’가 아닌 이집트

지난달 이집트 카이로 도심의 한 건물에 압둘팟타흐 시시 대통령의 대형 선거 홍보물이 걸려 있다. 야당 정치인들의 선거 홍보물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이집트의 국가 위상이나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 줄어들며 이집트 대선은 국제적으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동아일보 DB
국내‧외 언론에서 이번 이집트 대선은 별다른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당선된 5월 튀르키예 대선과 지난해 12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1년반 만에 다시 총리로 돌아왔을 때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중동, 나아가 국제사회에서 이집트가 차지하는 비중이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뜻이다.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이 이집트를 이끌던 1950~1960년대 이집트는 아랍의 중심이었다. ‘아랍판 유엔’으로도 불리는 아랍연맹(AL·1945년 설립) 본부도 카이로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이제 아랍의 중심지는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왕정 산유국들의 정치경제 협의체인 걸프협력회의(GCC‧사우디,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쿠웨이트, 오만, 바레인) 국가들이다.

중동의 패권 경쟁 국가에서도 사우디, 이란, 튀르키예를 주로 언급한다. 이집트를 패권 국가로 분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 ‘중병’에 걸려 있는 이집트 경제

카이로의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이집트 사람들. 현재 이집트는 심각한 물가 상승률과 이집트파운두화 가치 하락 등으로 국민들의 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동아일보 DB
3선에 성공했지만 시시 대통령과 이집트를 둘러싼 환경은 그리 녹록치 않다. 무엇보다 이집트의 경제 사정은 최악을 향해 가고 있다.

만성적인 경제난과 이로 인한 국민들의 주머니 사정은 심각하다. 이집트파운드화의 가치는 계속 떨어지고 있고, 물가 상승률도 30~40%에 이른다. 외국계 회사에 다니거나, 외국인으로부터 임금을 받는 이집트인들은 “월급을 달러로 달라”고 강조한다.

10월과 지난달에는 세계 3대 신용평가 기관인 무디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피치 모두 이집트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다. 현재 이집트의 신용등급은 ‘투자 부적격’ 상태. 세계은행에 따르면 시시 대통령이 부임한 직후인 2015년 27.8%였던 빈곤율은 2020년 31.9%로 올랐다.
지난해 12월에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추가 구제금융 지원도 받기로 했다. 총 30억 달러(약 3조9000억 원) 규모다. 하지만 IMF가 요구하는 긴축 재정과 변동환율제 도입 같은 경제구조 개혁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IMF는 이집트를 지원하는 데 소극적이다.

다양한 기간 사업을 군인 출신들이 독식하는 ‘군부 중심 경제구조’도 좀처럼 개선될 기미가 안 보인다. 이집트에선 오래전부터 건설, 물류, 호텔 등 다양한 부문에서 군인 출신들이 요직을 차지한 기업들이 영향력을 발휘한다. 많은 경우 실력이 아닌 특혜 속에서 성장해 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펜데믹도 이집트 경제에 악영향을 줬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밀 수입 의존도가 높았던 이집트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피라미드로 상징되는 고대 유적지와 홍해의 빼어난 자연경관을 앞세워 성장해온 관광 산업을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압둘팟타흐 시시 대통령이 2015년부터 야심차게 진행 중인 신행정수도 건설 프로젝트는 재정 부족으로 여전히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다. 신행정수도 내 상업지구의 ‘아이코닉 타워’(오른쪽에서 두 번째). 신행정수도 건설에는 중국 자본이 대거 투입돼 이집트 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높아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동아일보DB
카이로 동쪽으로 약 45km 떨어진 지역에 개발 중인 ‘신행정수도(NAC‧New Administrative Capital) 건설 프로젝트’도 마무리되지 않았다. 2015년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서울보다 큰 도시를 사막 한가운데 만들어 정부부처, 공공기관, 이집트 주재 외교공관 등을 모두 옮기는 게 목표다. 현지에서는 시시 대통령의 핵심 국책 사업으로 여겨진다. 일부는 ‘수에즈 운하’ 개발과 비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집트 정부의 재정 부족으로 신행정수도 건설 프로젝트는 진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집트 정부는 당초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 등으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 것을 희망했다. 하지만 사우디와 UAE의 투자가 이뤄지지 않자 경제 종속의 우려 속에서 중국 자본을 대거 유치했다.

● 국경 맞대고 있는 이웃국가들은 전쟁 중

지난달 13일(현지시각) 가자지구 라파에서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음식 배급소 앞에서 음식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자지구=AP 뉴시스
안보 상황도 안 좋다.

가자지구 전쟁, 리비아 내전, 수단 내전 등으로 불안 요소가 산적해 있다. 이집트는 가자지구(북동쪽), 리비아(서쪽), 수단(남쪽)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특히 10월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기습 공격으로 ‘생지옥’이 된 가자지구는 이집트에게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약고’나 다름없다.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대규모 공습이 이어지고 있고, 이집트 국경과 인접한 가자지구 남쪽에는 약 200만 명(이중 피란민은 약 100만 명으로 추정)의 팔레스타인인들이 머물고 있다.
그동안 시시 대통령은 ‘가자지구 난민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가자지구에선 이미 2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또 식량, 물, 연료 부족도 심각하다. 휴전 움직임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가자지구 내 인도주의적 위기 사태는 얼마든지 매우 빠르고, 심각하게 ‘최악의 상황’으로 번질 수 있는 것.

10월21일 이집트 국경에서 구호 물품을 실은 트럭들이 가자지구로 진입하고 있다. 압둘팟타흐 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가자지구 난민을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혀왔다. 가자지구 전쟁은 시시 대통령과 이집트 정부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라파=신화 뉴시스
한 외교 소식통은 “가뜩이나 경제 사정이 안 좋은 이집트로선 가자지구 난민 수용은 최대한 피하려 할 것”이라면서도 “다만 국제사회의 압박이 커지고, 동시에 난민 수용에 따른 경제적 지원을 적극적으로 하겠다는 움직임이 나타나면 현재 방침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철권통치와 세속주의 강조하며 영향력 키워

이런 위기 상황에서 시시 대통령이 버틸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일단은 강압적인 리더십이다. 시시 대통령의 철권통치와 군부의 견제로 이집트에서 야당 정치인의 활동은 매우 제한돼 있다. 이번 대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은 이번 대선에서 야당 정치인들의 선거운동이 원활하지 않았고, 국민들도 자유롭게 야당을 지지하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이집트에서는 시위도 사실상 전면 금지하고 있다. 한때 아랍 민주화 운동의 성지로 꼽혔던 카이로 도심의 타흐리르 광장 주변에는 평소에도 경찰(사복 경찰 포함)이 많이 배치돼 있다. 2019년 9월20~21일 중 전국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동시에 발생했을 땐 약 3주간 타흐리르 광장을 전면 봉쇄했다. 또 이집트 정부에 비판적인 BBC와 미들이스트아이(MEE) 같은 언론의 인터넷 사이트도 차단했다. 인터넷과 통신 기능도 떨어뜨려 소셜미디어 이용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집트의 뿌리 깊은 세속주의를 흔들지 않고 있다는 점은 시시 대통령의 장점으로 꼽힌다. 무르시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여성들의 옷차림, 교육, 취업 등을 제한하려고 했었다. 반면 시시 대통령은 여성들의 사회활동에 제약을 두지 않는다.
압둘팟타흐 시시 대통령(사진 오른쪽)은 철권통치를 하고 있지만 종교의 자유 등 세속주의적 가치도 강조한다. 그는 신행정수도에도 대형 콥트 기독교 성당 설립을 허용했다. 2019년 1월 신행정수도 내 콥트 기독교 성당에서 연설 중인 시시 대통령. 사진 출처 아랍뉴스
이집트 전체 인구(약 1억1000만 명)의 약 10~15%를 차지하는 콥트 기독교(중동에 기반을 둔 고대 기독교 종파) 신자들에 대해서도 포용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신행정수도에는 대규모 콥트 기독교 성당도 자리 잡고 있고, 시시 대통령은 이곳을 방문했다. 이슬람이 아닌 종교에 부정적이었던 무르시 전 대통령과는 역시 다른 모습이다.

이세형 기자·전 카이로 특파원 turt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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