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150만원 받아도 포기안해…‘1년에 천억’ 버는 사업가 됐죠 [남돈남산]

신수현 기자(soo1@mk.co.kr) 2023. 12. 2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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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이그니스’ 대표
29세 때 월세 30만원 사무실에서 시작
올해 매출액 1000억원 예상
박찬호 이그니스 대표가 이그니스가 판매하는 제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신수현 기자>
“거절, 또 거절. 거절의 연속이었죠. 자금력은 없었고, 생산 주문량도 적어서 저희 제품을 생산해주겠다는 공장이 없었어요. 전국 곳곳으로 공장만 100군데 넘게 찾아다닌 것 같아요.” < 박찬호 이그니스 대표(창업자) >

대기업이 장악한 음료 시장에 2014년 10월 후발주자로 뒤늦게 진출했지만 급속히 성장하고 있는 강소기업이 있다. 단백질 간편식 브랜드 ‘랩노쉬’를 갖고 있는 식품 기업 ‘이그니스’다. 이그니스는 2015년 10월 용기 안에 물, 우유 등을 부어서 먹으면 식사대용이 가능한 랩노쉬 첫 제품을 출시하며 음료 시장에 뛰어들어 기능성 식음료 강자로 부상했다.

매출액이 2019년 100억원을 돌파한 데 이어 지난해 502억원을 찍고, 올해 1000억원 이상 달성할 것으로 이그니스는 전망한다. 브랜드는 △랩노쉬(기능성 단백질 음료·쿠키·바 등) △한끼통살(닭가슴살) △그로서리서울(가정 간편식) △클룹(뚜껑을 열었다가 다시 닫을 수 있는 즉 재밀봉 가능한 캔 음료) 등 4가지가 있다.

대표 브랜드는 ‘랩노쉬’로, 랩노쉬는 체중을 감량하려는 여성들 사이에 ‘마시는 단백질’, ‘단백질 음료’로 잘 알려져 있다. ‘한끼통살’은 운동 마니아 사이에 맛있으면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닭가슴살로 유명하다.

올해 11월 기준 누적 판매량은 랩노쉬 약 1600만개, 클룹 약 1200만개, 한끼통살 약 4750만개에 달한다. 이그니스는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아 미래에셋캐피탈, 빌랑스인베스트먼트, 마그나인베스트먼트, 코오롱인베스트먼트 등으로부터 총 476억원을 투자받았다. 이그니스는 어떤 과정을 거쳐 성장해올 수 있었을까.

“대학생 때부터 사업을 하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습니다. 군복무를 마친 후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동기와 사업계획서도 써보는 등 여러 시도를 해보다가 사회 경험을 쌓기로 하고 2011년 취업했어요. 비슷한 시기에 동기도 직장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식사 대신 단백질 음료를 즐겨 먹는 미국 실리콘밸리 정보기술(IT) 관련 개발자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식사 대체용 기능성 음료를 개발하기로 결심하고 2014년 6월 사표를 던졌죠.”

박 대표는 당시 29살 청년이었기 때문에 사업자금이 거의 없었다. 사무실을 구할 돈이 없어서 박 대표가 살고 있던 오피스텔에서 대학교 동기(윤세영 이그니스 이사)와 창업을 준비했다. 회사 생활하면서 각자 모았던 돈 4000만원씩 총 8000만원으로 시작했다. 몇 달 후 월세 30만원짜리 쪽방 같은 공간을 얻었다.

“아이디어는 있었지만 기능성 단백질 음료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몰랐습니다. 여러 음식 가루를 구입해서 영양소를 연구하고, 서로 섞어보면서 실험해봤어요. 여러 가루를 조합한 후 일정 기간 동안 먹어보면서 제 몸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등을 머리카락·피 검사 등을 통해 정밀하게 분석했죠. 일종의 자체 임상시험이었어요. 개발에는 성공했지만 이번에는 양산해줄 공장을 찾는 게 문제였어요.”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구현하고, 제품을 다시 양산하는 데까지 꽤 긴 시간이 소요됐다. 발에 땀나게 뛰어다니며 투자자를 구했고, 2015년 7월 첫 투자를 받아 급한 불을 껐다. 100군데 넘는 공장을 찾아다닌 끝에 간신히 공장을 구했다. 그해 10월 랩노쉬 첫 제품이 나왔다.

“우리나라 크라우드 펀딩 1위 기업 ‘와디즈’를 통해 랩노쉬 첫 제품을 출시했어요. ‘리워드형’으로 1000만원을 모집했는데 1억3000만원 모였어요. 이 자금을 받아서 첫 생산에 돌입해 첫 제품이 나왔습니다. 첫 제품은 용기 안에 들어있는 분말에 물 혹은 우유 등을 넣어 섞어 먹는 형태였습니다.”

리워드형은 크라우드 펀딩 유형 중 하나로,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한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받은 기업이 그 대가로 자사 제품 혹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형이다. 이그니스의 랩노쉬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는 지금도 와디즈의 대표적인 펀딩 성공 사례로 꼽힌다.

랩노쉬는 이후 분말형태에서 음료 형태로 한 단계 진화해 지금은 기능성 단백질 음료 ‘프로틴 드링크’로 판매된다. 제품군도 꾸준히 넓혀 이그니스는 현재 ‘랩노쉬’, ‘한끼통살(닭가슴살)’, ‘그로서리서울’, ‘클룹’ 등 총 4개의 브랜드가 있다.

사명 이그니스는 불꽃을 뜻하는 라틴어 ‘이그니스(ignis)’에서 따온 이름으로 열정을 불태우면서 회사를 키워보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인류가 불을 발견한 덕분에 음식을 익혀 먹기 시작했고, 이는 인류 역사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쳤죠. 인간의 수명도 늘렸고요. 이그니스도 인류가 건강하게 진화하는 데 앞장서고 싶다는 의미까지 담아 사명을 지었습니다.”

이그니스가 꽃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난관도 있었다.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의 여파로 매출액이 정체돼 2019~2020년까지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 신사업 등을 위해 자금이 필요했지만 벤처투자 시장이 위축되면서 투자 유치에도 난항을 겪었다.

“창업하고 거의 6년 동안 월급 실수령액이 150만~160만원 정도에 그쳤던 것 같아요. 부모님께 회사 그만두고 창업한다고 말씀드리면 반대하실 것 같아서 말씀도 못 드렸어요. 회사 설립 3년 후 제 기사를 보신 부모님 지인이 저희 부모님께 제가 창업했다는 사실을 알려주셨어요. 그제야 제가 창업했다는 것을 알게 되셨죠.”

이그니스는 지난해 하반기 재밀봉 가능한 캔 음료 ‘클룹’의 뚜껑을 구하지 못해서 또 한 번 위기를 겪었다.

“일반적으로 캔 음료를 개봉하면 내용물을 다 마시거나 남은 음료를 보관하는 게 어려운데,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어요. 캔 음료에 장착해서 열고 닫을 수 있는 특수한 뚜껑을 제조하는 독일 회사 ‘엑솔루션’이 있다는 것을 2021년 여름쯤 알게 됐어요. 그해 가을 무작정 엑솔루션을 방문해서 뚜껑을 공급해달라고 부탁했죠. 엑솔루션한테 뚜껑을 받아서 2022년 3월 재밀봉 가능한 음료 ‘클룹’을 야심차게 출시했는데, 경영난에 시달리던 엑솔루션이 그해 가을 부도났어요. 클룹 생산 중단 위기에 처한거죠.”

박 대표는 고심 끝에 엑솔루션을 인수했고, 올해 상반기 엑솔루션을 이그니스의 자회사로 편입했다. 엑솔루션 공장은 독일에 있다. 엑솔루션이 생산하는 재밀봉 가능한 뚜껑은 세계적인 음료 회사들에게 러브콜을 받고 있다.

“엑솔루션이 한 달 생산 가능한 뚜껑이 약 1000만개입니다. 수요가 많아서 생산 설비를 확장하고 있어요. 내년 상반기까지는 생산 가능 능력을 5배가량 높일 계획입니다. 엑솔루션을 필두로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도 개척할 겁니다.”

이그니스는 새로운 성장 동력 마련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내년 상반기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사업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기능성 단백질 음료로 시작해 다른 식품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어요. 소비재 분야에서 100년 넘게 소비자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브랜드를 많이 만들고 키우는 게 이그니스의 지향점입니다.”

신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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