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국제 인물] ‘안보맨’의 추락…중동 화약고 중심에 선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정치적 회생 가능성 제로에 가깝다”…전쟁 후 퇴임 전망 우세
(시사저널=이동진 프랑스 통신원)
신(新)냉전. 요즘 국제 정세는 이렇게 표현된다. 과장된 말이 아니다. 미·중 간 치열한 패권경쟁은 물론 21세기에 세계 곳곳에서 총알과 미사일마저 빗발치고 있다. 특히 지난해부터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 올 하반기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전쟁까지 벌어지면서 국제사회의 긴장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시사저널 '올해의 국제 인물' 선정에도 이러한 국제 정세가 그대로 반영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엔 러시아 침공에 맞서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지휘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선정됐다. 올해는 중동 화약고의 중심에 서있는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주인공이다. 두 지도자 모두 상대방의 공격에 의해 전쟁에 나섰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그 후 국제 여론은 현저히 다르다는 차이점도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과 달리 네타냐후 총리는 점점 더 공공의 적이 되는 모습이다.
'Mr. Security(안보맨)'가 별명인 그는 현지시간 10월7일 하마스의 기습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해 체면을 구긴 후 보복적으로 가자지구 진압에 나섰고, 현재까지 파괴적으로 공세를 펼치고 있다. 양측의 군인은 물론 가자지구 민간인들도 희생되고 있는 상황. 전쟁은 이스라엘의 승리로 흘러가는 모양새지만 국제사회의 시선은 냉랭하며 국내 정치적으로도 네타냐후 총리는 벼랑 끝에 서있다.
극우 강성 정치인 네타냐후의 탄생
정치인 네타냐후는 형 요니 네타냐후 중령의 죽음으로 탄생했다. 1976년 6월27일 이스라엘을 떠나 프랑스 파리로 향하던 에어프랑스 항공기가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에 의해 납치되어 우간다 엔테베공항에 착륙하는 인질극이 벌어진다. 이에 이스라엘 정부는 자국민 구출을 위해 대테러부대를 출동시켜 군사적 대성공을 거두지만 당시 부대장을 맡았던 요니 네타냐후 중령이 전사하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 하버드대 정치학 박사과정을 밟은 후 이스라엘 외교관으로 활동하던 젊은 베냐민 네타냐후가 정계에 입문하게 된다. 네타냐후는 테러를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팔레스타인에 대한 강경책을 주장하는 강성 정치인으로 거듭난다.
2001년 9·11 테러를 기점으로 중동 정세 불안과 2000년부터 시작된 2차 인티파다(팔레스타인의 이스라엘 저항운동), 거기에 더해 이스라엘 온건파 정치인들의 안보 실패와 이란의 핵 위협까지 겹치며 네타냐후의 강경 정책은 오랜 기간 각광받았다. '미스터 시큐리티' 이미지는 1996년부터 1999년까지, 또 2009년부터 현재까지 총리직을 지킬 수 있던 네타냐후의 비결이다.
그는 2019년 5번째 재임 당시 이스라엘 역대 총리 최장 재임 기록을 경신해 2019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뽑히기도 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자국에서 태어난 최초의 지도자' '최연소 총리' 등의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는 21세기 초반, 이스라엘 정치와 중동 정세에 큰 영향력을 미친 인물이라고 당시 타임 시사주간지는 평가했다.
너무 안이했던 탓일까. 안보만큼은 꼭 책임지겠다던 네타냐후 총리는 유대교 안식일이던 10월7일 벌어진 가자지구 통치기구 하마스의 공격을 전혀 예측하지 못하면서 1400명이 넘는 희생자와 240명 납치라는 최악의 안보 실패를 경험했다. 거기에 더해 그가 하마스를 향한 보복 전쟁을 강경하게 밀어붙이면서 국내외적으로 비판이 점점 거세지고 있다. 12월19일 기준 팔레스타인인 사망자만 2만 명에 육박한다. 12월16일에는 이스라엘군이 백기를 들고 있던 인질 3명을 실수로 사살하는 비극마저 벌어져 이스라엘 여론이 들끓고 있다.
현재 2개월 이상 지속되고 있는 이-팔 전쟁은 전 세계적으로도 파장을 가져오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의 강경 대응으로 인해 중동전쟁으로의 확전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하는 상황이며,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 전쟁을 두고 여론이 분열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10월부터 이-팔 전쟁이 프랑스 사회의 분열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프랑스에는 유럽에서 가장 많은 유대인 디아스포라가 거주하고 있고, 또한 이슬람 아랍계 인구가 500만 명 넘게 살고 있다. 10월13일 프랑스 북동부 도시 아라스의 한 학교에서 교사를 칼로 살해한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테러 동기 또한 이-팔 전쟁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이-팔 전쟁이 조 바이든 대통령의 정치생명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모양새다. 11월4일 워싱턴DC에서 열린 친팔레스타인 시위에 30만 명 넘게 모여 이스라엘을 전폭 지원하는 바이든 대통령을 '인종학살 조'라고 부르며 비판했다. 미국 언론들은 이-팔 전쟁이 젊은 유권자들 특히 아랍계 미국인들을 민주당으로부터 멀어지게 했다며 다가오는 2024년 대선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미시간, 위스콘신이나 애리조나 같은 미국 대선 경합주들의 무슬림 지도자들은 바이든 낙선 운동 '#바이든을버리자(#AbandonBiden)'에 나서고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흑백논리로 접근 불가능
하마스의 선제공격이 비난받아 마땅함에도 이번 전쟁을 두고 여론이 갈리는 이유는 뭘까. 글로벌 G-제로(국제사회를 이끄는 강력한 국가나 그룹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 시대를 주장하는 미국의 유명 정치외교 논객인 이안 브레머는 "이-팔 전쟁은 흑백논리 접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마스나 이스라엘 모두에게 과실치사가 적용된다는 의미다.
이스라엘의 과실치사는 네타냐후 총리의 대팔레스타인 강경 정책과 연관이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국제법을 무시하고 팔레스타인 자치구역 내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을 밀어붙여 왔고, 약 16년간 가자지구 봉쇄 정책을 펴왔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네타냐후 총리가 하마스를 이용해 오랜 기간 팔레스타인 민족운동이 단합하지 못하게 막아왔다"고 지적했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심지어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의 분열을 유지하기 위해 카타르 자금을 가자지구로 흘러가게 네타냐후 총리가 도와줬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정치 전문가들은 네타냐후의 회생 가능성을 거의 제로에 가깝게 보고 있다. 이스라엘과 중동 정치사에 한 획을 그은 네타냐후의 시대가 텔아비브 지중해 수평선 너머로 저무는 석양처럼 서서히 그 빛을 잃어가고 있는 셈이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중동정책센터 나탄 삭스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전쟁 이후 네타냐후 총리가 물러나게 될 것이며 이스라엘의 중도 정당이 권력을 잡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법의 심판대 앞에 서있기도 하다. 네타냐후 총리는 뇌물수수와 배임 및 사기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스라엘 법무부는 '국가적 위급 상황'이 끝났다고 판단해 10월7일부터 중단됐던 사건 심리를 최근 재개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늦어도 내년 봄에 법정에 소환될 것이란 보도가 나온다.
■ 필자 이동진은...
필자 이동진 프랑스 통신원은 파리 이날코대학에서 아랍·국제관계학을 전공했고 현재 파리 팡테온 소르본1대학에서 국제관계학 석사에 재학하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지역 등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교환학생으로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에서 수학했다.
시사저널 선정 '올해의 인물' 1989년 창간 이후 35회째…'대한민국의 역사'로 기록
손흥민, 스포츠 인물로는 역대 두 번째 '올해의 인물'로 선정…정치 한동훈·경제 정의선 등도 두각
시사저널이 선정한 2023 올해의 인물은 손흥민이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의 주장이자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주장인 손흥민은 '영원한 캡틴'으로 기억되고 있다. 정쟁만 거듭하는 정치, 고물가·고금리에 시름하는 경제, 팬데믹과 인구절벽으로 우울해진 사회 분위기 속에 폭풍 질주로 골네트를 시원하게 가르는 손흥민의 활약은 그나마 통쾌함을 선사하는 위안이었다.
스포츠 인물이 올해의 인물로 선정된 것은 1997년 차범근 축구 국가대표 감독 이후 두 번째다. 당시 차 감독은 대한민국을 4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로 이끌면서 크게 각광받았다. 시사저널은 1989년 창간 이후 매년 12월 송년호에 올해의 인물을 선정해 발표해 오고 있다. 올해도 역시 시사저널 편집국 기자들의 투표와 정기독자들에 대한 설문조사 등을 토대로 올해의 인물을 비롯한 총 9개 분야에 걸쳐 한 해 동안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우리 사회에 미친 영향력이 가장 컸던 인물들을 선정했다.
손흥민을 비롯해 각 분야별로는 정치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 경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사회 신준호 안산지청 차장, 국제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문화 한강 작가, IT·의·과학 고규영 KAIST 특훈교수, 연예 임영웅 가수, 스포츠 페이커 등이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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