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이 죽음 불렀다…5년간 공공임대주택 고독사·자살 413명
한부모 청년 78% “자살 심각하게 고려”
지난 11월 초, 서울 성북구의 한 공공임대주택에서 혼자 거주하던 70대 남성이 숨진 지 약 열흘만에 발견됐다. 배달된 요구르트가 문 앞에 며칠째 그대로 있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이웃주민이 주민센터에 이를 알리면서 주민의 죽음을 확인하게 됐다. 남성은 2014년까지 건설 현장에서 일용노동자로 일하다 일을 하기 어려워지면서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것으로 파악됐다.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지내다 홀로 죽음을 맞이한 전형적인 고독사에 해당한다.
최근 5년간 공공임대주택 입주자 413명이 자살이나 고독사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대부분 사회·경제적 취약 계층인데 임대주택이 공간적으로 고립되면서 우울감과 자살충동을 키웠을 것으로 분석됐다.
25일 국토연구원이 발표한 ‘영구임대주택 입주자의 사회적 고립과 자살 예방을 위한 지원 방향’ 보고서를 보면 2018∼2022년 공공임대주택 입주자 중 자살은 220건, 고독사는 193건에 달했다.
특히 공공임대주택 중에서도 생계·의료급여 수급자 등 취약계층이 주로 입주하는 영구임대주택에서 자살 및 고독사가 많이 나왔다. 2020년 기준으로, 전체 자살 사건의 87.8%(29건), 고독사의 92.9%(39건)가 영구임대주택에서 발생했다. 보고서는 “영구임대아파트 입주자의 사회적 관계망은 제한적인 경우가 많고 공간 구조 또한 이웃과 교류를 어렵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가구원 수를 기준으로 보면 1인 가구의 자살 위험이 크게 높았다. 지난해 공공임대주택에서 총 48건의 자살 사건이 발생했는데 이중 절반 이상(56%)인 27건이 1인 가구였다. 연령별로는 전체 자살 사건 중 6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58%(28건)에 달했다.
국토연구원이 한국복지패널의 표본조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영구임대주택 입주자를 대상으로 ‘지난 1년 동안 자살을 심각하게 고려한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있다’고 답한 고령층은 10.52%에 달했다. 이는 청년층의 자살 생각 비율보다 2배 이상 높다. 가구 형태별로는 배우자 없이 자녀를 홀로 양육하는 한부모 가정(단독자녀가구)의 자살생각 비율이 78.26%로 매우 높았다.
선행연구에 따르면 영구임대주택은 빈곤 세대의 집단주거지로 분류되어 부정적 이미지가 강하다. 입주민들의 음주, 부족한 이웃관계, 불결한 주변 환경 등이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이러한 부정적 환경 요소들은 자살문제를 더 심화시키는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주택은 가구의 경제적 여건에 기반한 고가의 재화여서 환경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보다 주어진 것으로 살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이러한 측면에서 열악한 주거환경은 학습된 무력감의 전제 조건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최근 국내 영구임대주택에도 자살 예방 등을 위해 주거복지사를 배치하고 있지만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올해 기준 주거복지사 1명이 1285명을 관리하고 있어, 입주민의 정신 건강을 면밀히 살피기 현실적으로 어렵다. 박기덕 국토연 부연구위원은 “영구임대주택 입주자의 정신건강 증진을 위해 단지 내에 설치된 지역사회복지관에 정신건강 사회복지사를 확대 배치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물리적 환경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서는 제언했다. 박 연구위원은 이웃간 교류를 높일 수 있는 주거 환경 개선 작업이 적극적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을정원, 치유놀이터 조성 등 단지 커뮤니티 강화와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사업들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노후 영구임대주택의 환경 개선을 위한 재건축 관련 제도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지원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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