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부민원② 류희림 위원장 동생 "형 후배가 민원 신청 부탁...직원도 동원"
뉴스타파는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 위원장이 자신의 가족과 지인들을 동원해 방송사 뉴스를 심의하는 민원을 신청하게 한, 이른바 '청부민원' 의혹을 취재했다. 이 의혹의 뼈대는 익명의 관계자가 국민권익위원회에 제출한 부패신고서(이하 신고서)에 담겨 있다. 뉴스타파는 신고서 전문을 입수해 일련의 내용이 사실인지 면밀하게 현장 검증했다.
뉴스타파는 인맥 데이터 분석을 통해 류 위원장의 아들, 동생, 조카, 처제, 동서 등이 지난 9월 방심위에 동시다발로 민원을 제출한 사실을 파악했다. 이들이 어떤 경위로 방송사 뉴스를 심의해달라고 신청했는지, 그 이유를 묻기 위해 류 위원장의 친동생을 찾아갔다.
동생 류모 씨는 대구에서 전통문화 관련 사설 수련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무엇을 물으러 왔는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수련원 내부에서 약 40분간 인터뷰를 진행했다.
류희림의 친동생 "형의 후배가 도와달라고 연락와서 민원 신청"
인터뷰에서 류 씨는 방심위에 민원을 넣은 사실을 인정했다. 신고서에 따르면 그는 지난 9월 5~6일 총 3건의 민원을 신청했다. 피신청인은 MBC와 JTBC였다. 두 방송사는 지난 대선 당시 뉴스타파의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보도(관련기사 : [김만배 음성파일]“박영수-윤석열 통해 부산저축은행 사건 해결”]를 인용하는 보도를 했다.
류 씨는 형의 후배로부터 연락을 받고 방심위에 민원을 내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민원 신청을) 형님이 부탁한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니 부탁은 아니고, 아는 지인이. 이름은 얘기 못 드리는데 이런 이런 게 있다. 돌고 있다. 니가 한번 도와주는 셈 치고 한번 해보는 것이 어떠냐. 뭐 그러지 이래 놓고. 소위 그(형) 정도 레벨이면 주변에 지인들이 많잖아요"라고 답했다.
이어 기자가 "그 지인 분이라는 분이 형님 쪽에서 같이 일하시는 분인가요"라고 묻자 "(형의) 후배인가 그럴 거예요"라고 답했다. 정리하면, 류희림 위원장의 후배가 도와달라고 연락을 해왔고, 그 요청에 본인이 응했다는 얘기다. 발언의 맥락을 보면, 형의 후배가 다름아닌 형을 도와달라고 류 씨에게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형의 후배가 사실은 형(류희림 위원장)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류 씨는 10여일 뒤 스스로 민원을 취하했다. 이유를 묻자 '형에게 누가 될까봐' 취하했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 또한 거짓일 가능성이 있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방심위 일부 직원들은 류희림 위원장과 이름이 두 글자가 같은 류 씨가 동생이란 사실을 알아채고, 내부 게시판에 문제를 제기했다. 이해충돌 문제가 불거지자 뒤늦게 민원을 취하한 걸로 보인다.
가족은 물론 부하 직원까지 총동원한 류희림 친동생 "강요가 아닌 부탁이었다"
뉴스타파는 류희림 위원장의 친동생 류 씨의 아내 이모 씨도 민원을 함께 신청한 사실을 파악했다. 뿐만 아니라 류희림 위원장의 아들, 조카, 처제, 동서 등 온가족이 총동원돼서 민원을 신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카인 채 모 씨는 류 위원장 누나의 딸이다. 누나는 대구에서 식당을 운영 중인데, 취재진이 류 씨를 만난 뒤 해당 식당을 방문했을 때 채 씨로 추정되는 인물을 만날 수 있었다. 이후 채 씨에게 어떻게 민원을 신청한 것인지 물으려하자, 돌연 어디론가 사라졌다.
류 씨가 취재진과 만난 사실을 형과 누나 등에게 급히 알렸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류희림 위원장은 지난 21일저녁부터 오늘(24일)까지 취재진의 연락을 받지 않고 있으며, 22일에는 갑자기 연차 휴가를 내고 출근하지 않았다.
민원에 동원된 인원은 더 있었다. 동생 류 씨는 자신이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는 수련원의 직원과 강사들도 민원 신청에 끌어들였다. 류 씨는 처음에는 직원에게 부탁한 사실이 없다고 발뺌하다, 결국엔 인정했다. 이어 부하 직원에 대한 갑질이 아닌 부탁이었다고 강조했다. 그의 부탁을 받고 민원을 제기한 것으로 보이는 수련원 관계자들은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총 4명이다.
류 씨에게 평소에도 방송사 뉴스에 대한 심의 신청을 했는지도 물었다. 류 씨는 이전까지는 민원 신청을 해본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일련의 상황을 종합하면, 류희림 위원장 측에서 동생 류 씨에게 민원 청탁을 하고, 류 씨는 다시 직원을 포함한 지인들에게 똑같은 민원을 내달라고 줄줄이 청탁한 것으로 추정된다.
자신이 신청한 민원 내용도 잘 모르는 류 씨 "방심위 홈페이지와 인터넷 보고 했다"
뉴스타파 취재를 종합하면, 류 씨는 MBC 뉴스데스크 2022년 3월 7일자 보도와 JTBC 뉴스룸 2022년 2월 21일과 28일 보도를 심의해달라고 요청하면서 이들 뉴스들이 '윤석열 후보와 관련된 가짜뉴스를 사실인 것처럼 보도했다'고 적었다. 이에 기자는 류 씨에게 어떤 방송사에 어떤 뉴스를 방심위에 심의해달라고 한 건지 물었다. 그런데 류 씨는 자신이 신청한 민원의 내용을 잘 모르는 듯했다.
기자가 "JTBC의 보도를 보셨어요? 그러면 그 문제 되는 보도가 뭔지를? 어떤 부분이 가짜라고 생각했냐?"고 묻자, 류 씨는 "인터넷 들어가 몇몇 방송들이 (JTBC) 방송에 대한 거를 다 거짓. 거기에 동의를 하더라고요. 또 뉴스타파 말고 뭐지? 심의를 한다고 보도가 많이 나오잖아요. 그래 갖고 심의위원회 들어가니까 자료들이 또 있더라고요. 뉴스라든지 뭐 이렇게 한다 뭐 이런 식으로 나와서 관심이 있으니까, 그때는. 인터넷에 내가 보니까 거의 내용들이 비슷비슷하더라고"라며 두루뭉술하게만 답변했다.
결과적으로 류 씨는 JTBC와 MBC의 보도를 자신이 직접 보고 무엇이 어떻게 문제인지 파악했다기보다, 누군가의 청탁을 받으며 그저 불러주는 대로 민원을 신청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류 씨가 "심의위원회에 들어가니까 자료들이 또 있더라고요"라고 말한 대목도 의미심장하다. 류 씨가 민원을 신청한 9월 5일에는 방심위 홈페이지에 해당 보도와 관련된 자료들은 없었다.
정상적 민원을 가장한 '심의 사주' 의혹...이해충돌방지법 위반 및 업무 방해 혐의
이번 사건은 '청부 민원', '셀프 심의', '심의 사주' 등의 용어로 설명할 수 있다. ▲'청부'는 자신의 가족과 지인을 민원 신청에 동원했단 점에서 ▲'셀프'는 이해충돌 당사자인 류희림 위원장이 심의에 직접 참여했다는 점에서 ▲'사주'는 민원을 넣게 해서 억지로 심의를 진행한 뒤 방송사를 징계했단 점에서 그러하다.
국민권익위원회에 제출된 부패신고서에는 이와 같은 행동을 범죄로 볼 수 있는 이유가 자세히 적혀 있다. 관련 법령은 이해충돌방지법 제5조, 이해충돌방지규칙 제4조 등이다. 이와 별개로 방심위의 공정한 심의 업무를 방해했다면 형법상 '업무 방해' 혐의도 적용될 수 있다.
익명의 제보자를 대리해 부패신고서를 작성해 제출한 박은선 변호사는 "언론의 공정성을 수호해야 할 방심위의 수장이 현 정권을 위해 스스로 징계의 정당성 근거를 조작한 것이 사실로 확인되면, 그는 더는 방심위 위원장 자리에 있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보내왔다.
뉴스타파는 류희림 위원장의 반론 및 해명을 듣기 위해 지난 21일부터 위원회를 두 차례 방문했지만 그를 만날 수 없었다. 이튿날인 22일엔 이번 사건에 대한 질문이 담긴 질의서를 방심위 홍보팀을 통해 위원장에게 전달했다. 이와 동시에 류 위원장의 휴대전화로도 수차례 연락하고 문자메시지를 보냈으나 아직까지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뉴스타파 봉지욱 bong@newstapa.org
Copyright © 뉴스타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