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경제 민낯’ 드러낸 타다 기사 노동자성 인정 판결[설명할경향]
서울고등법원 행정7부(재판장 김대웅)는 지난 21일 ‘타다’ 운영사 VCNC의 모회사였던 쏘카가 “부당해고 구제 재심판정을 취소하라”며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1심을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전직 타다 운전기사 A씨는 프리랜서가 아니라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이고, A씨 사용자는 쏘카라는 겁니다.
한때 ‘공유경제’ 아이콘으로 떠올랐던 타다의 ‘혁신’ 뒤에는 노동관계법 회피가 있었다는 점을 확인시켜준 판결입니다. 한국에서 플랫폼 노동 종사자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은 판결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무엇을 근거로 이런 판단을 했는지, 이 판결이 앞으로 플랫폼 노동 종사자 보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등을 하나씩 짚어보겠습니다.
프리랜서 계약 뒤 ‘해고’된 타다 기사
타다 기사는 타다가 파견회사로부터 파견받은 기사, 타다에 인력을 공급하는 용역업체와 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한 프리랜서 기사 등 두 종류로 나뉩니다. 모두 타다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일감을 받아 일하지만 ‘타다’와 근로계약을 체결하진 않습니다. 배달의민족 앱에서 일감을 받아 음식배달을 하는 라이더가 배달의민족과 근로계약을 맺지 않는 것과 유사합니다.
타다 기사 대부분은 용역업체와 프리랜서 계약을 맺었습니다. 2020년 3월 기준 타다 기사 1만1444명 중 파견 기사는 1368명이고, 프리랜서 기사는 1만76명이었습니다. A씨 역시 프리랜서 기사였습니다.
A씨와 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한 용역업체 ‘헤럴드HR’은 2019년 7월 기사들이 모여 있는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근무조 개편 및 차량 대수 조정에 따른 인원 감축 공지를 했습니다. A씨는 그해 10월 인원 감축 통보가 “부당해고”라며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용역업체·VCNC·쏘카를 상대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습니다.
핵심 쟁점은 타다 기사의 노동자성
노동위가 A씨 부당해고 여부를 따지려면 A씨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여야 합니다. 서울지노위는 A씨가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각하했습니다. 중노위 판단은 달랐습니다. 중노위는 2020년 5월 A씨가 노동자이며 A씨 사용자는 VCNC의 모회사인 쏘카라고 판단했습니다.
중노위 판단은 2년 2개월 만에 뒤집혔습니다. 쏘카가 중노위 판단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에서 1심 재판부는 지난해 7월 중노위 판정을 취소하라고 판결했습니다. 1심 재판부도 타다 앱을 통해 기사들에 대한 노무관리가 일정 부분 이뤄졌다는 점은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는 “플랫폼에 기반한 타다 서비스의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타다 손을 들어줬습니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 마지막에 이런 언급도 덧붙였습니다. “플랫폼 노동 종사자에 대한 보호 필요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근로기준법상의 사용종속관계가 인정되지 않음에도 근로기준법상 해고의 제한 법리를 적용하는 것은 종속적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근로기준법의 입법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 한편 공유경제 질서의 출현에 따른 다양한 형태의 사적 계약관계를 존중할 필요성도 있다.”
1심 재판부 판단과 달리 ‘공유경제’를 표방하는 플랫폼 기업이 노동법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꼼수’를 부리고 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습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알렉산드리아 J. 래브넬 조교수는 저서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에서 “공유경제는 혁신이란 미명하에 지난 수세대 동안 쌓아올린 노동자 보호장치를 파괴하며 노동자 착취가 만연했던 과거로 시간을 되돌리고 있다”고 짚었습니다.
중노위 판정을 지지한 항소심
항소심 재판부는 1심 판결을 뒤집고 중노위 판정이 타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인지를 판단할 때 계약 형식보다는 A씨가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했는지가 중요합니다. 종속적 관계의 판단 요소는 업무 과정에서 사용자가 지휘·감독을 했는지, 노동자가 사용자가 정한 근무시간·장소에 구속을 받는지, 노무제공자가 스스로 작업도구를 소유하거나 제3자를 고용해 업무를 대행하게 하는 등 독립해 사업을 할 수 있는지, 보수의 성격이 근로 자체의 대상적 성격인지, 근로제공관계의 계속성과 사용자에 대한 전속성의 유무와 정도 등입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가 업무 방식·근태·복장·고객 응대·근무실적 평가 등 대부분 사항에서 타다 앱을 통한 지휘·감독을 받았고, 근무시간·장소를 정하는 최종 권한도 타다 서비스 운영자에게 있다고 봤습니다. 타다는 2019년 7월부터 기사가 휴게시간을 일정 시간 이내로 써야 추가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해 휴게시간 사용을 통제했습니다. 배차를 수락하지 않으면 인사상 불이익이 받을 수 있어 기사가 배차수락 여부도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쏘카는 A씨가 운행시간 외에는 개인적 용무를 보거나 겸업을 할 수 있는 등 전속적 관계가 아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A씨가 프리랜서 기사로 일하는 동안 겸업한 사실은 있으나, 겸업이 가능하다는 점은 근로기준법상 단시간 근로자에게도 흔히 나타나는 특성이므로 A씨의 근로자성을 부정할 사정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인 파견 기사와 프리랜서 기사는 업무내용에서 본질적 차이가 없다고 봤습니다.
타다 기사가 노동자라면 사용자는 누구?
A씨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라는 판단이 나왔기 때문에 다음 쟁점은 ‘쏘카·VCNC·용역업체 중 A씨 사용자는 누구인가’입니다.
우선 용역업체의 경우 인력공급업체에 불과할 뿐 A씨를 포함한 기사들의 노동조건을 독자적으로 결정할 권한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후보’는 쏘카와 VCNC입니다. 쏘카가 타다 서비스 운영을 위해 인수한 VCNC는 타다 앱을 개발·운영한 곳입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타다 서비스의 실질적 운영주체는 쏘카이고, VCNC는 쏘카로부터 타다 서비스 사업을 위한 일부 업무를 위탁받아 수행한 것에 불과해 A씨의 실질적 사용자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다시 말해 A씨 사용자는 쏘카라는 겁니다.
항소심 판결은 플랫폼 종사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려는 세계적 추세에 부합합니다. 대법원에서도 원심 판단이 유지되면 플랫폼 종사자 보호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힘을 받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민주노총은 지난 22일 논평에서 “고용노동부와 국회는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과 노동기본권 확대를 위한 입법 등 제도적 논의에 착수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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