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비례연합정당’ 관심…위성정당·병립형 회귀 대안 될까
[22대 총선]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내년 4월 총선에서 현실론을 앞세워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포기까지 검토하는 가운데 ‘비례연합정당을 꾸리자’는 주장이 시민사회를 포함한 야권에서 힘을 얻고 있다. 각 정당 사이의 물밑 접촉도 빠르게 진행되는 모양새다.
선거법 개정 논의 과정을 잘 알고 있는 민주당 관계자는 지난 24일 한겨레에 “최근 당 지도부가 야권 비례연합정당 논의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다”며 “당내 의원들은 물론 재야 원로들과 김부겸 전 국무총리까지 나서서 준연동형 비례제 사수를 호소하면서 병립형 비례대표제 회귀에 일단 제동이 걸린 분위기”라고 전했다. 지난달 28일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 현실의 엄혹함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 이재명 대표의 발언을 계기로, 당내 현실론자들이 ‘병립형 비례제 회귀’를 공개 주장하고 나서자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짬짜미해 내년 총선에서 병립형 비례대표제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당 안팎에서 우려와 비판, 만류의 목소리가 쏟아지자 당 지도부가 제도 ‘개악’ 뒤 후폭풍을 의식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것이다.
4년 전 2020년 총선에서 처음 적용한 준연동형 비례제는 정당 득표율에 따라 각 당에 의석수를 배분하고, 지역구에서 얻은 의석수가 그보다 모자랄 경우 절반을 비례대표로 채워주기 때문에 민심을 어느 정도 의석수에 반영할 수 있는 제도다. 소수 정당들이 얻은 표가 사표화하는 걸 막아 다당제의 주춧돌 구실을 한다. 다만 지난 총선 당시처럼 거대 정당이 비례대표 후보를 내지 않고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을 만들면 되레 민심보다 많은 의석을 가져가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국민의힘은 병립형 비례제로 돌아가지 않을 경우 위성정당을 만들 수밖에 없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에 민주당 일부는 ‘여당이 위성정당을 만들면 우리도 별수 없다’며 ‘차라리 병립형 비례제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육책’으로 주목받는 카드가 야권 내 비례연합정당이다. 현재 정의당이 녹색당, 진보당 등과 진보연합신당을 추진 중이고, 기본소득당이 사회민주당·열린민주당,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과 개혁연합신당을 추진 중이다.
민주당 안에서도 범민주·진보 개혁 진영이 모두 참여하는 비례연합정당을 만들자는 주장이 나온다. 이재명 대표와 가까운 우원식 의원은 지난 19일 입장문을 내어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면서도 민주당이 이기는 길을 찾자”며 “현행 제도를 유지하는 전제하에 민주당이 ‘지역구 정당’으로 주력을 맡아 지역 출마를 하고, 제 정당이 합의 가능한 방법을 찾아 ‘비례연합정당’으로 힘을 모으자”고 주장했다. 지난 총선에서 민주당의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은 17석, ‘자매정당’인 열린민주당은 비례 3석, 정의당은 비례 5석을 차지했다. 비례대표 우선 순번 절반가량을 진보·개혁 성향 정당 후보로 배치하고, 후순위에 민주당 후보를 배치하잔 것이다.
그러나 비례연합정당 현실화까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당장 ‘위성정당’ 논란이 부담거리다. 진보·개혁 성향 정당이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하고, 이후 민주당과 합당하지 않더라도 당선을 최우선시한 위성정당이라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렵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 당시 위성정당 비판이 재연되는 걸 피하려 비례연합정당 논의에 직접 개입하는 건 자제하는 분위기다.
야권 내 상호 불신과 갈등도 큰 벽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진보정당들 안에 반윤석열 정서도 있지만, 그만큼 반민주당 정서도 큰데 어떻게 설득해 합의점을 찾아갈지 관건이다. 우리 당 지도부로선 진보당이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 함께하는 것도 부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의당의 한 지도부 관계자도 “당내에 여러 입장이 있지만, 민주당과 비례대표 후보 명부를 공유하는 건 어려울 것 같다. 자칫 어렵게 지켜온 당이 깨지는 수준의 갈등을 겪을 수 있다”고 전했다. ‘민주당 2중대’라는 낙인이 찍힐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시민사회와 여러 정당 관계자들은 최근 물밑 접촉을 분주히 하며 민주당까지 참여하는 비례연합정당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다음달 11일 총선 출마를 위한 공직자 사퇴 시한을 앞두고 비례대표 출마를 고려하는 공직자들이 민주당 지도부의 입장 정리를 촉구하고 있는 탓이다. 연말연시를 지나는 동안 민주당을 압박할 만한 최대치의 연합을 만들어내는 게 비례연합정당의 승부수가 될 걸로 보인다. 민주당의 한 다선 의원은 “진보정당들이 연합하고 연대해 판을 짜면 당 지도부도 (위성정당에 대한) 부담은 덜고 준연동형 비례제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은 커지지 않겠나. 야권에서 큰 판이 짜인다면 민주당이 좀 손해를 보더라도 명분을 얻고 가는 그림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열쇳말
■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정당득표율에 따라 각 당에 의석수를 배분한 뒤, 지역구에서 얻은 의석수가 그보다 모자랄 경우 그 절반을 비례대표로 채워주는 현행 방식. 2020년 총선 때 도입.
■ 병립형 비례대표제: 정당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단순 배분하는 방식. 2016년 총선까지 시행.
■ 위성정당: 연동형 또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서 비례대표 의석을 최대치로 얻으려고 각 정당이 별도로 만드는 정당.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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