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명 중 네 명, 어른 되기 두렵다… 꼰대와 어른의 차이는?"

CBS 오뜨밀 2023. 12. 25.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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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부재의 시대' 외로움의 습격 시작돼
어른조차도 숫자와 성취로 평가되는 시대
정치인들도 책임 회피에 남탓, 누가 본받나
취직·결혼·출산이 어른 기준? 이젠 바뀌어야
<어른 김장하> 의 감동, 새로운 가치 담아내


■ 방송 : CBS 라디오 <오뜨밀 라이브> FM 98.1 (20:05~21:00)
■ 진행 : 채선아 아나운서
■ 대담 : 손희정 문화평론가, 김만권 정치철학자

◇ 채선아> 사회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들을 문화평론가와 정치철학자의 시각으로 풀어보는 시간입니다. 손희정 문화평론가, 김만권 정치철학자, 두 분 나오셨어요. 

◆ 손희정, 김만권> 안녕하세요. 

◇ 채선아> 2023년이 얼마 안 남았거든요. 올해 마지막 'TF 썰전' 시간이어서 두 분의 한 해가 어땠는지부터 듣고 싶어요.

◆ 손희정> 저는 사자성어 뽑는 거 되게 좋아하거든요. 제가 오늘 뽑은 사자성어는 혼용무도입니다.

◇ 채선아> 혼용무도 무슨 뜻인가요?

◆ 손희정> 2015년 올해의 사자성어였는데요.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의 잘못된 정치로 인해서 나라가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러운 상태가 '혼용무도'거든요. 그다음 해인 2016년에 촛불광장이 있었죠. 저는 큰 얘기를 하고 싶다기보다는 작은 것들을 좀 보고 싶은데요. 실제로 제가 일을 하고 다니는 곳들이 작은 도서관, 작은 책방, 작은 영화제들인데 내년 예산이 완전히 다 깎이고 굉장히 어려워질 상황인 거예요.

실제로 지금 정부가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곳들을 얼마나 파괴하고 있는가. 그래서 '작은'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굉장히 큰일이 만들어지는 장소들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이런 장소들이 내년에 무너질 것 같다는 두려움 같은 것들을 가지면서 혼용무도가 딱 맞다. 올해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 채선아> 김만권 선생님은 어떤 걸 말씀할지 궁금하네요.

◆ 김만권> 올해 교수님들이 뽑았던 사자성은 견리망의. 그러니까 이익을 보면 의를 잊는다는 뜻인데요. 많이 그랬던 한 해인 것 같습니다. 전체가 그랬던 한 해였던 것 같아서 좀 아쉬운 부분은 있고요.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뜻깊은 한 해였는데요. 제가 2019년 정도부터 잡고 있었던 중요한 연구 주제 하나를 마무리해서 이번에 <외로움의 습격>이라는 책으로 발간했고요. 그런데 이게 오늘 주제와도 연결이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외로움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 계기가 2018년 1월에 외로움 장관이 영국에서 임명됐는데 그때 저희 아이가 3살인가 그랬거든요. 그런데 밤에 잘 때 손을 이렇게 만지다가 보니까 제가 그걸 임명된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손을 만지다가 갑자기 제가 뭐라 그랬냐면 "너 정말 외롭겠구나" 제가 자는 아이에게 그렇게 말을 했었어요. 그날 너무 애가 외로워 보여서 이게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지 싶어서 외로움에 대한 통계나 이런 걸 뒤져보기 시작했는데 진짜 놀랐던 게 우리 시대에 가장 외로운 세대가 20대들이라는 통계들이 나와요.

 
◆ 김만권> 이 통계들을 보면서 '어쩌다가 이 시대에서 젊은 세대들이 이렇게 외로운 세대들이 되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결국은 젊은 세대들이 현재 나에게 도움이 없다고 느끼고 사회적 고립을 경험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고 그러면서 서로 연결되지 못하고 어떻게 보면 파편화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과정 속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너무 많은데요.

서울시가 조사한 결과를 따르면 2022년에 나온 은둔 고립 청년 실태조사를 보면 거의 61만 명의 젊은이들이 전국적으로 6개월 이상 정서적, 물리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걸 피했다고 나오고 있거든요. 어쩌다가 이런 사회가 됐을까 했을 때 저는 오늘 하는 질문, 어른이 없는 사회라서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채선아> 말씀해 주신 어른 얘기를 오늘 'TF 썰전'의 올해 마지막 주제로 저희가 꼽아봤거든요. 왜냐하면 한 여론조사 전문기관에서 올해의 트렌드를 분석하면서 뽑은 키워드 중에 하나가 '어른 부재의 시대'였더라고요. 그러니까 본받을 수 있는 어른이 없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조사였는데 두 분도 공감하시는 편인가요?

◆ 손희정> '어른 부재의 시대'와 함께 꼽은 키워드가 '피드백 부재의 시대'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말이 아닌 행동으로 피드백을 보여줄 수 있는 어른도 없고, 옆에서 조언을 건네줄 수 있는 친구도 없고 혹은 일의 의미를 느끼게 해주는 회사 동료도 없는 시대다. 이게 어른 부재의 시대와 연결되어 있는데요. 김만권 선생님이 조금 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그게 결국 우리들을 외롭게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좀 하게 되더라고요.

◆ 김만권> 실제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각자도생의 시대'라고 부르잖아요. 사실 각자도생의 시대라는 건 자신만을 생각한다는 뜻이고 문제는 뭐냐면 부모 세대들이 각자도생의 윤리를 아이들에게 아주 열심히 가르치고 있어요. 맨날 하는 말이 "네 인생 네가 책임지는 거야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아"라고 하는 그 말이고 어쨌든 아이들은 너만을 생각하라는 어른들을 보면서 크게 되는데 그런 말을 하시는 분이 우리 엄마 아빠면 '그래 나를 걱정했으니까'라고 이해는 가지만 그게 내 친구들의 엄마 아빠면 내 친구한테 너만 생각하라고 가르치는 건 나를 걱정하지 말라는 말이고

◇ 채선아> 조언을 구할 친구가 없어지네요.

◆ 김만권> 친구가 사라지는 그런 말들이죠. 또 한편으로는 자기 자식들에게 나를 이겨야 한다고 조언해 주는 적대적인 사람인 거예요. 그 사람을 생각해 보면 결국 어른들은 인생은 각자 다 책임져야 된다고 말하고 심하게는 최근엔 두 번째 기회에 성공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잖아요. 항상 첫 번째 기회에 잘돼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그것이 제대로 된 성공이라고 가르치고 있으니 어른다운 피드백이라고 할 만한 게 있을까. 그러니까 그런 분위기 속에서 '피드백의 부재'라고 말하는 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 손희정> 저는 김만권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 생각나는 게 제가 2022년에 그 해 제일 좋아했던 영화 중에 하나가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라는 영화였어요. 최민식 배우가 리학성이라는 북한 출신의 천재 수학자를 연기하는 영화거든요. 북한에서 수학이 무기를 만드는 데만 사용되는 게 너무 상처가 돼서 남한으로 내려온 거죠.

그런데 남한에서는 또 수학이 상품을 만드는 데만 사용되는 게 너무 속상해서 수학을 때려치우고 한 명문 고등학교에서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근데 이 고등학교에 또 다른 주인공인 고등학생이 있는데요. 이 친구는 사회적 배려 대상자로 명문 고등학교에 간 거죠. 딴 친구도 다 사교육 받는데 자기는 사교육을 받을 수 없으니까 수학 성적이 계속 떨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담임 선생님은 얘 때문에 반 성적이 떨어지니까 자꾸 전학 가라 그러고요.


◆ 김만권> 일반고로 전학 가라고 그래요.

◆ 손희정> 아무도 이 학생을 책임져주는 어른이 없이 점수로만 막 매기는 거죠. 결국 이 친구가 경비 아저씨가 수학 천재라는 걸 알고 수학을 배우게 되고 그러면서 둘 사이에 우정이 쌓이는 이야기예요.

◆ 김만권> B-103 호라는 아주 작은 교실에서. 거기가 이상한 나라인 거예요.

◆ 손희정> 수학을 배우는 거죠.

◆ 김만권> 거기서는 리학성이라고 하는 수학자가 아이에게 말하는 내용이 되게 다른 거예요. '문제를 잘 풀어라' 이런 것들이 아니라 원리를 생각해 보고 더 나아가서 "야 오늘 못 푸는 거 걱정하지 말고 오늘 못 풀면 내일 아침에 와서 여유 있게 다시 한번 도전해 보면 돼"라고 이야기해요.

◆ 손희정> 이런 태도를 수학적 용기라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안 풀리는 걸 갖고 객기 부리는 게 아니라 오늘 덮어뒀다가 내일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마음이 수학적 용기다. 아까 김만권 선생님이 얘기하신 것처럼 한국은 오늘 안 되면 덮어놓고 내일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두 번째 기회가 사실 허용되지 않는다고 가르치는 사회이다 보니까 모두가 각자 도생 안에서 지금 한 번 실패하면 끝이라는 두려움 속에 악을 부릴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죠.

제가 이 영화에서 정말로 좋아했었던 게 파이송이라는 노래가 나오는데요. 수학의 파이 3.14 어쩌고저쩌고잖아요. 이게 다 숫자라고 생각하면 모든 걸 수치화하는 우리 사회랑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파이에 나오는 숫자를 가지고 피아노로 연주해서 음악을 만들어요. 그래서 숫자가 누구의 가치를 매기는 데 쓰이는 게 아니라 진리를 담은 아름다운 음악이 될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B-103 호 공간인 거죠. 모든 게 수치화된 사회에서는 어른도 숫자로 여겨지기 때문에 어른이 없다고 느껴지는 거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 채선아> 그런데 '어른 부재의 시대'라는 키워드는 내년 키워드이기도 하지만 사실 몇 년째 계속 내려오던 말이긴 했어요. 한국 사회에 본받을 만한 어른이 사라졌다는 얘기는 계속 있었는데 그 원인이 궁금해요.

◆ 김만권>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아까 각자도생의 세계가 도래했다고 이야기했고 어떤 어른도 남을 도우라고 가르치지 않는다고 했는데 사실 공적으로 타인을 돕고 뭔가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역할이 정치거든요.

모든 걸 정치로 환원할 필요는 없지만 저는 어른의 본질은 뭔가 협력해서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해 주는 능력이라고 생각하는데 어려움에 대해서 그런 것들이 없는 거죠. 오히려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느냐.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책임을 안 지고 자꾸 회피하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항상 남 탓하고 이런 모습들을 자꾸 정치가 보여주고 있으니 본받을 만한 사례들이 아무것도 없는 거죠. 지금 정치의 모습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그 모양인데 어른들로부터 뭔가를 배울 수 있다? 그게 가능한 일일까라고 의심하게 되는 부분이에요.

◆ 손희정> 정치도 정치이고 또 한편으로는 어른이어야 하는 성인들. 어느 나이 이상의 사람들도 참 너무 힘든 삶을 살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계속해서 자기의 쓸모를 증명해야 하고 인생 이모작 해라 삼모작 해라 사모작해라 이런 걸 강요받고 있기 때문에 계속 젊음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걸 자기한테 내면화시켜야 했던 거죠.

그러니까 이 시대정신 안에서 젊음을 계속 유지해야 하고 그래야만 가치 있는 인간으로 여겨지다 보니까 내가 갖고 있는 걸 남과 나눌 수 없는 상태로 내몰렸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젊음이 요즘에는 마인드라고 계속 얘기하지만 사실은 내가 뭘 소비하는가 내 취향이 뭔가 이런 걸로 증명되기 때문에 이런 상황 안에서 젊은이와 어른들이 노동시장 안에서도 서로 경쟁자이고요. 소비시장 안에서도 경쟁자인 거예요. 정책적으로도 마치 젊은이의 일자리를 어른들이 뺏어가고 있는 것처럼 갈라치기를 계속 하잖아요.

◇ 채선아> 세대 대립이 심해요.

◆ 손희정> 네 그래서 그런 것도 좀 질문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 김만권> 분명히 그런 부분이 강력한 것 같고요. 어른이라고 했을 때 어른들의 이미지라는 것들이 분명히 있는데 현재 어른들은 확실히 꼰대 이미지로 바뀐 것 같아요. 어른이라는 건 선입관을 가지는 사람들, 편견을 가지는 사람들 그리고 그 편견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기가 과거에 아는 것에 집착하고 세대가 바뀌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가 오랜 시절 가지고 있던 그것들을 새로운 세대에게 강요하는 사람들.

일자리로 오면 여전히 회식 자리에 가서 술 먹어야 회사 생활을 잘한다고 생각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어 있는 거죠. 어떻게 보면 지금의 청년들이 어른들을 볼 때 '내가 어른이 되기 싫은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 채선아> 그래서 궁금한 게 "꼰대가 되지 않아야겠다"라는 말들도 어른 중에 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꼰대의 나이가 됐지만 난 되지 않겠다고 했을 때 꼰대랑 어른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 손희정> 저는 그게 너무 어려워서 '피드백 부재의 시대'가 왔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가진 노하우나 지혜 같은 것들을 나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나보다 젊은 사람들, 어린 사람들한테 조언하는 게 너무 어려운 거예요. 그러니까 피드백을 하고 싶어도 꼰대가 될까 봐 못하고 행동으로 보여주면 제일 좋겠지만 사실 말로 해줄 수 있는 조언이라는 것도 있거든요. 그런 것들이 참 쉽지 않다. 꼰대가 뭘까요?

◆ 김만권> 꼰대는 남의 말을 들으면서 내 생각이 이미 정해져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답이 이미 다 정해져 있는 사람들이고 그래서 저는 기본적으로 어른이 된다는 건 남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이 된다는 것 같고요. 더 나아가서 그냥 내가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어른이고 꼰대와의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 채선아> ** 님은 어른과 꼰대의 차이를 이렇게 구분해 주셨어요. "어른은 회식에서 직원들이 2차를 같이 가기를 원하는 사람, 꼰대는 2차를 같이 가기 싫어하는 사람" 이거 누구한테 물어봐야 하나요? (웃음)

◆ 손희정> 어렵습니다. 사실 이런 식으로 기준을 정하기도 하더라고요. 꼰대는 묻지 않은 조언을 하는 사람, 어른은 청하는 조언을 적재적소에 해주는 사람 그러니까 참 어려운 일인 것 같기는 해요. 진짜 어려운 일이 노력해야 되는데 또 노력해야 되는 게 쉽지 않아요.

◇ 채선아> 어른이라는 기준이 진짜 어렵구나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이게 바로 어른입니다"라는 기준을 딱 세워주면 내가 어른이구나, 아니구나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기준이 도대체 뭔지 관련해서 여론조사 결과가 하나 나와서 같이 보려고 하는데요.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에서 올해 7월 6일부터 7월 9일까지 전국 만 19세~59세 성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띄워드립니다. 스스로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20대와 30대는 30% 초반 정도밖에 안 되거든요. 그런데 40대도 49.2%, 50대에 가서야 60% 정도가 '나는 어른이다'라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어떻게 보셨나요? 어른이라는 게 대체 뭘까요?


◆ 손희정> 그러니까 이게 너무 힘든 건데 저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국 사회에는 '무엇이 어른인가?'를 규정하는 기준이 너무 통과의례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취직 이런 거예요. 대학 가면 졸업. 또 남성들 같은 경우에는 군대 가고 졸업하고 난 다음에 취직, 취직하면 결혼, 결혼하면 아이, 아이 낳으면 교육 이런 식으로 계속 과업이 떨어지는데 그 과업을 달성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이 한국사회에서 점점 길어지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노동력 재생산 비용이 너무 많아지는 사회에서 사실 어른이 될 수 있는 통과의례들이 계속 밀리고 있는 와중에 또 한편으로는 그 통과 의례의 기준은 무너졌는데 새로운 기준들을 우리가 못 만들고 있는 어떤 가치관 혼란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어른이라는 목표는 점점 더 멀리 떠밀려 내려가고 있는 거 아닌가. 사실 저 같은 경우에는 김밥 체인점에 가서 메뉴 2개 시키는 순간 스스로 제가 어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지금 돌이켜보면 경제력을 어른의 기준으로 삼았었구나. 그런데 그건 충분한 기준이 아니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 김만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제가 어른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었어요. 항상 철없는 종류의 사람이고요. 학자 분들이 화내시겠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학자 분들이 다 이기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집안 식구들 다 어려운데 그거 다 팽개치고 공부 끝까지 할 수 있으면 이기적인 마음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어쨌든 자기 스스로를 어떻게 책임져야 될까라고 했을 때 자기 스스로를 책임지는 시기들이 다 각자 있을 거고 그 시기들은 다 다르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런데 제가 자기를 책임질 수 있다는 게 경제적인 것뿐만이 아니라 자기가 한 말 행동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시기인 거 같아요. 그런 것들이 각자 다른 시기에 오고 그래서 각자 다른 시기에 내가 어른이라고 느끼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

◇ 채선아> 이 설문조사를 제가 꼭 말씀드리고 싶었는데 '나는 어른이 되는 것이 두렵다'는 질문에 20대의 40%가 '그렇다', 30대의 36.4%가 '그렇다'고 답했거든요. 그러니까 성인이에요. 20~30대면. 그런데 왜 어른이 되기가 두렵다고 답했을까요?


◆ 손희정> 그러게요. 그러니까 너무 많은 책임을 져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지금 내 몸 하나 챙기기가 너무 힘든 상황이기 때문에 아마 두려울 수밖에 없을 것 같고 아까 말씀드린 통과의례들을 다 해나가기에도 너무 버거운 상황이니까 그렇지 않을까.

◆ 김만권> 31세가 우리나라의 대학 졸업자들의 첫 취직 연령이거든요. 그러면 20대를 홀딱 다 취준 생활로 보내고 있고 계속 타인 의존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 시기가 상대적으로 엄청나게 많이 늘어나고 있는데다가 지금 사회가 어떻게 보면 너무 경쟁이 치열한 사회잖아요. 어른이 된다는 건 그 지독한 경쟁 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거고 또 이상한 게 우리나라에서 어른이 된다는 건 내가 싫은 일을 하게 해야 되는 단계에 완전히 들어가는 거거든요. 싫어도 해야만 하는 뭔가에 들어가는 단계처럼 여겨지는 일들이 많아서 그런 것도 있고 그리고 더 나아가서 현재 어른들이 청년 세대들에게 좋은 본보기는 못 되고 있다.

◆ 손희정> 한편으로는 세대가 섞이는 공간들이 사라지면서 면대 면으로 어르신들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을 보는 기회는 점점 줄어드는데 SNS 같은 디지털 공간 혹은 미디어에서 그리는 어른의 모습이라고 하는 건 너무 엉망진창인 부분만 강조가 되거나 혹은 SNS를 보면 내가 저 어르신의 속마음을 몰랐으면 좋았을 텐데 이런 생각이 드는 어떤 모습들을 보게 되면서 좋은 모델을 찾는 게 어렵기 때문에 좀 두려운 게 아닐까. 지난 몇 년간 제가 계속 굉장히 집중해서 봤었던 게 채현국, 윤여정, 오영수로 이어지던 어른 찾기의 여정들이 있었어요. 그분들이 어떤 사람인지와는 무관하게 우리가 대중문화 아이콘으로 어른을 찾고 있다는 게 중요한 현상인 것 같고요.

◇ 채선아> 진짜 어른을 보지 못한 청년 세대가 어른 되기를 두려워하는 게 아닌가. 그 모델 자체를 보지 못했으니까. 그래서 제가 지금 말씀드리고 싶은 게 <어른 김장하>라는 영화거든요.


◆ 손희정> 작년 MBC 경남에서 김현지 PD가 TV 다큐로 만들어서 2부작을 유튜브에 공개했었고 그래서 전국적으로 굉장히 큰 화제가 됐었어요. 1시간 50분 정도 되는 극장용 다큐로 다시 편집해서 올해 말에 개봉한 거죠.

◇ 채선아> 김장하라는 이름 앞에 어른이라는 두 글자를 붙이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한 사람인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 손희정> 어른 열풍을 이어가고 있는 이름이었다고 생각했는데 김현지 PD 님한테 여쭤봤어요. 김장하 선생에 대한 작품을 만든다고 생각할 때부터 그냥 머리에 있었던 제목이었다고 해요. 어른이라고 하는 것은

◇ 채선아> 이 분을 보고 우리가 어른의 기준을 잡을 수도 있겠네요.

◆ 손희정> 그런데 사실 '어른 김장하'라기보다는 저는 '성인 김장하'에 가까워요. 이 분이 진주에서 60년 동안 한약방을 운영하신 한약사예요. 그분의 삶과 행적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인데요. 19살, 20살 정도에 한약사를 시작하셨어요. 좋은 약재를 쓰는 데다 값이 싸고 먹으면 낫는 거예요. 진짜 인산인해를 이뤘고 정말 떼돈을 버신 거죠. 그런데 그 돈으로 혼자 잘 먹고 잘 살았던 게 아니라 교육 운동을 비롯해서 언론, 계급, 문화, 여성 운동 등 각 사회 분야를 지원하셨고요.

◆ 김만권> 젊었을 때 형평 운동을 하셨어요.

◆ 손희정> 형평 운동이 진짜 근사한 건데 20세기 초 진주 지역에서 벌어졌던 백정들의 신분제 해방 운동이었거든요. 그래서 모두가 평등해야 한다는 운동의 정신을 기리는 걸 김장하 선생님이 계속 지원하셨고요. 형평운동의 정신 안에서 호주제 폐지 운동을 지원하시고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을 지원하는 사업도 하시거든요.

◆ 김만권> 모든 사람은 진짜 다 똑같다, 다 평등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인 것 같고요. 말씀도 너무 멋있게 하세요. 실제로 한약방에서 떼돈을 버셨다고 했잖아요.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내가 번 돈이 아프고 고통스러운 사람들한테 온 돈이지 않냐 그래서 그 돈은 함부로 쓰면 안 되는 돈이었다"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래서 학교를 짓고 교육 사업을 하고 학교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국가에 아예 기증을 해버리거든요. 그 과정 속에서도 하시는 말씀이 너무 감동적이었던 게 나처럼 가난하다고 공부하는 데 힘든 사람이 나오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교육 사업을 했다라고 이야기를 하거든요. 자신의 어려운 시절을 생각해 보고 너도 그 시절을 똑같이 어렵게 지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러니까 그들이 덜 힘들도록 도와주는 사람이 된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사람이 저한테는 '어른'인 거예요.


◇ 채선아> "그러니까 너네 지금 먹고살기 좋은 줄 알아", "나 때는 말이야" 이게 아닌 거죠.

◆ 손희정> 흥미로운 건 진주에서는 너무 유명한 사람이라서 길 가는 사람 붙들고 물어보면 알아요. 사실 진주 밖에 있는 우리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잖아요. 왜 그러냐면 절대로 인터뷰를 안 하시는 분이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한 번도 인터뷰 기사라거나 다큐멘터리나 이런 게 나온 적이 없는데 김현지 PD가 담고 싶었었던 거고요. 다큐 자체가 얼마나 재미있냐면 어떻게든지 인터뷰를 따려는 김주완이라는 베테랑 기자와 어떻게든지 인터뷰를 안 하려 김장하라는 어르신 사이에 밀당을 굉장히 잘 그리고 있거든요.

◆ 김만권> 너무 대답을 안 해서 결국은 김장하 어르신이 도와준 주변 사람들의 말을 통해서 김장하 어르신이 뭘 하는지 알게 되는 거거든요.

◇ 채선아> 본인이 말을 안 하셔서

◆ 손희정> 중요한 건 어떤 사람이든, 위인이라고 해도 그 사람에 대해서 인터뷰하고 이야기를 구성하려고 하면 분명히 깎아내리려는 사람이 등장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요. 이 사람들이 너무 김장하 선생을 알리고 싶어서 알음알음 네트워크가 점점 넓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수백 명을 만나셨다고 하더라고요.

작년에 <어른 김장하>가 나왔을 때 그런 평가들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아직 다큐 안 보셨던 분들이 "결국 또 100억 대 부자가 돼야 어른이라는 거냐" 이런 식의 얘기가 나오기도 했는데요. 정말로 인상적인 건 이 어르신이 장학금을 엄청나게 줘서 세계적 석학도 나오고 대법관도 나오고 그래요.

그런데 이 장학금을 받은 사람 중에는 실패한 사람도 있고 성공하지 못한 사람도 있는 거죠. 그 사람들은 안 찾아오는 거예요. 그러다 다큐에 어르신이 한약사 은퇴하는 날의 광경이 잡히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인사를 조심스럽게 하고 간 거죠. 그분 얼굴은 안 나와요. 그런데 옆에 있던 사람이 물어봐요. "선생님 저 사람이 자기가 실패해서, 성공하지 못해서 이때까지 인사를 못 드렸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냐" 이렇게 물어보니까 김장하 선생님 뭐라고 얘기하냐면 "세상은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는 거야. 뭐가 되라고 돈을 그렇게 한 게 아니지." 김장하가 그냥 김장하가 아니고 지역 유지 부자 김장하가 아니고 어른 김장하인 건 사실 이것 때문인 거죠.

◆ 김만권> 또 다큐멘터리에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저는 가슴을 쳤는데 돈이라는 게 똥하고 같아서 모아놓으면 악취가 나는데 골고루 뿌려놓으면 거름이 된다고 말씀하세요.

◆ 손희정> <어른 김장하>로 오늘의 이야기를 마무리를 해도 좋겠지만 꼭 덧붙이고 싶은 건 우리가 어른이라고 하는 기준을 <어른 김장하>로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는 우리 주변에 좋은 어른들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종류의 가치를 안 가지신 것뿐일 수도 있거든요.

얼마 전에 어떤 다큐에서 본 장면인데 손녀를 위해서 고구마를 삶으면서 고구마 끝을 정성스럽게 따는 할머니의 모습에서도 어른의 면모를 배울 수 있고 가치를 얻을 수 있다. 우리가 너무 어느 정도의 부, 어느 정도의 통과의례 이런 것들만 기준으로 삼았을 때 더 어른을 찾기 힘든 시대가 된다고 생각해요.


◇ 채선아> 그 기준을 높게 삼을 필요도 없고 주변에서 어른의 기준이 될 수 있는 장면 장면을 모으는 것도 참 소중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말에 어른 얘기를 해봤는데 오늘이 올해 마지막 'TF 썰전'이니까 끝으로 연말 인사 나누면서 마무리해볼까요?

◆ 김만권> 올해 누가 어른일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끝나는데요. 내년에는 저도 어른이 되도록 열심히 노력해 보겠습니다.

◆ 손희정> 내년은 또 조금 더 추울 것 같아요. "Winter is coming"인데요. 세상을 받치는 평범한 사람들끼리 손을 잡을 수 있는 내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 편안한 연말 되시고요. 내년에 또 뵐게요.

◇ 채선아> 여기까지 마무리하겠습니다. 함께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 손희정, 김만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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