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랑캐] 정치 실패, 윤석열 문제인가? 대통령제 문제인가?
통상 대통령중심제(대통령제)의 문제점으로 몇 가지를 꼽는다. 먼저 대통령과 의회라는 두 개의 대의 권력으로 인해 정치의 교착이 나타난다. 네덜란드 출신의 미국 정치학자인 아렌트 레이프하르트는 책 <내각제 대 대통령제>(원제 <의회 정부 대 대통령 정부>)에서 이것을 대통령제의 세 가지 단점 중 첫째로 꼽았다. 이 문제는 대통령 소속 정당과 의회 다수당이 다를 때 특히 심각하게 나타난다. 대통령제에선 이런 정부를 ‘분점정부’라 부르고, 프랑스 같은 이원정부제(또는 준대통령제)에선 ‘동거 정부’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윤석열 정부에서 분점정부의 문제점은 법률안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에서 잘 나타났다. 민주당 다수의 국회는 2023년 4월 양곡관리법 개정안, 5월 간호법 제정안, 12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노란봉투법)과 방송 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 등을 통과시켰고 이를 행정부로 보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세 차례 걸쳐 이들 6개 법 제정안,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정치의 교착, 승자독식
얼핏 보면, 국회는 입법권을 가졌고 대통령은 법률안 거부권을 가졌으므로 각자의 권한을 정당하게 행사한 것 같다. 그러나 이는 국회가 입법하고 행정부가 집행한다는 권력분립 대원칙에 어긋난다.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은 합법적이지만, 극단적인 권한 행사다. 거부권은 예외적으로만 사용하는 것이 타당하다.
취임 1년7개월 만에 6개 법안에 재의요구권을 행사한 것은 과거 대통령들보다 많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대통령들의 거부권 행사 건수를 보면 노태우 대통령이 7건, 노무현 대통령이 6건으로 윤 대통령과 비슷하다. 그러나 두 대통령은 5년 동안 행사한 건수다. 또 박근혜·이명박 대통령은 각 2건과 1건이며,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은 거부권을 한 번도 행사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시절의 한 수석비서관은 “대통령은 행정부 수장으로서 행정권을 갖고 있다. 행정권을 행사할 때는 공적 절차를 거쳐야 한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그런 절차를 무시하고 그 권한을 사유화한다. 국회의 다수당인 야당을 무시하고 여당마저 마음대로 하려 한다”고 평가했다.
대통령제의 다른 문제점으로 ‘승자독식’을 꼽는다. 대통령제는 단 1표라도 더 많은 표를 얻은 후보가 정부의 행정권을 독점한다. 예를 들어 2022년 대통령선거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48.56%,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47.83%를 얻었다. 윤 후보가 불과 0.73%포인트 앞섰고 과반수도 얻지 못했으나, 윤 대통령은 정부의 행정권을 100% 독점한다.
그러나 의회중심제(의회제, 의원내각제나 내각책임제라고도 함)에서 다수인 대륙식(유럽식) 의회제에선 통상 ‘연합정부’(연정)를 구성한다. 대륙식은 국회의원을 주로 비례대표제로 뽑기 때문에 다당제가 된다. 따라서 1당이 다른 정당들과 연정을 이뤄야 집권하고 행정부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연정을 하는 나라에선 행정권을 여러 정당이 나눠 가지므로 ‘합의의 정치’가 보편적이다. 중요 사안에 대해 연정에 참여한 정당들이 합의하지 않으면 연정이 깨지고, 그 행정부가 무너진다. 연정에서 합의의 정치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이자 가장 중요한 정치 수단이다.
야당 협조가 가능하려면
의회제에서 1당이 집권하려면 반드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해야 한다. 일부 의회제 국가에선 ‘대연정’을 통해 과반수보다 훨씬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하기도 한다. 단순 과반수가 아니라 더 많은 정당과 지지자의 동의를 얻어 정치를 하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연정을 했던 독일의 쿠르트 게오르크 키징거 총리 내각과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1 차 , 3 차 내각은 각각 전체 의석의 90.3%, 73.0%, 79.9% 를 연정에 포함했다 . 대연정은 통상 1·2 당을 포함하는 주요 정당으로 이뤄지며 , 참여하는 정당 사이의 이념 차이도 크다 .
그러나 윤 대통령은 연정이나 합의의 정치는커녕 국회의 1당이자 과반수 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이재명 대표나 야당 지도부와 단 한 번도 따로 만나지 않았다. 이 대표는 면담을 여덟 차례나 요구했으나, 윤 대통령은 현재까지 전혀 응하지 않고 있다. 사람들은 윤 대통령이 대선 기간인 2021년 12월 토론에서 이재명 당시 민주당 후보를 “확정적 중범죄, 변명의 여지가 없는 후보”라고 말한 것을 그 이유로 본다.
이선우 전북대 교수(정치학)는 “대통령제는 승자독식이어서 한 자리를 놓고 사생결단을 벌인다. 특히 대통령제와 양당제가 결합하면서 이런 대결이 극단화됐다. 집권당이 실패해야 야당에 집권할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를 완화하려면 비례대표를 강화해 다당제로 가야 한다. 그래야 집권정부와 협력할 수 있는 야당이 나온다”고 말했다.
국외자의 등장, 임기 보장 단임제
대통령제의 셋째 문제점은 국회의원 등 정치 경험이 없는 ‘국외자’가 갑자기 떠올라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다는 점이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책 <대통령제, 내각제와 이원정부제>에서 “정치적 불신이나 기존 정당에 대한 불만이 높은 곳에서는 (…) 국외자의 출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경우는 전형적인 ‘국외자’의 당선이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 출마 이전에 한 번도 선출직에 출마한 일이 없었고, 정당에서 활동한 일도 없었다. 정치권에 나오자마자 바로 대통령직에 도전했다. 물론 과거 대선에서도 정주영이나 문국현, 안철수 등 정치 신인이 도전한 일이 있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 이전엔 아무도 당선되지 못했다.
이렇게 정치 경험이 없는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면 지금 우리가 보듯 정부 운영에 많은 문제가 생긴다. 현재 정부의 경제나 외교의 실패, 준비되지 않고 예측할 수 없는 언행은 대부분 윤 대통령의 정치 무경험에서 나왔다. 또 정치에 무지하고 기존 정치권과의 연계가 약하기 때문에, 기존 정치인들을 불신하고 자신의 친구나 선후배들을 중책에 임명한다. 이런 인사는 정치 실패나 부정부패의 원인이 된다.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은 서울대 교수(헌법학) 시절인 2012년 논문 ‘한국에서의 대통령제 정부와 지속가능성’에서 “유권자가 인물을 제대로 평가하고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통령을) 선출하고, 그 이후에 (대통령이) 유권자가 예측할 수 없었던 행동으로 국정을 운영하게 될 때는 국가 운영에 있어 심각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경고했다.
의회제의 경우, 정치 리더십과 경험을 가진 현직 의원들이 총리와 장관을 맡기 때문에 윤 대통령 같은 정치 신인이 총리나 장관이 될 가능성은 전혀 없다. 특히 의회제에선 총리가 정부 운영의 핵심 분야인 경제(재무)와 외교 분야 장관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독일의 올라프 숄츠 현직 총리는 부총리와 재무장관을 거쳤고, 영국의 리시 수낵 현직 총리도 재무장관과 재무 부장관을 거쳤다.
대통령제의 넷째 문제점은 통상 4~5년인 임기를 강하게 보장한다는 점이다. 한국의 대통령은 5년 단임이고, 미국은 4년 중임, 프랑스는 5년 중임이다. 따라서 대통령이 정부 운영에 실패해도 그 책임을 묻기 어렵다. 탄핵이나 시민혁명, 군사쿠데타가 아니면 대통령을 중도에 물러나게 할 수 없다.
반면 의회제는 총리가 중요 정책에 실패하거나 개인적 잘못이 드러나면 물러나는 경우가 많다. 2022년 영국의 보리스 존슨은 개인 잘못으로, 리즈 트러스는 정책 실패로 총리를 그만뒀다. 총리가 물러나도 정부 내 부총리나 장관 등 주요 정치인들이 바로 그 자리를 대체한다. 이렇듯 대통령제는 임기에 매우 경직적이고, 의회제는 매우 탄력적이다.
대통령을 통제할 수 없는 대통령제
현재 대한민국은 △의회-행정부의 교착 △승자의 행정권 독점 △국외자의 대통령 당선 △임기의 경직적 보장이라는 대통령제의 문제점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현재 심각한 정치 교착의 갈림길은 2024년 4월 총선이 될 것이다. 야당이 크게 이긴다면 윤 대통령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빠질 것이고, 여당이 크게 이긴다면 윤 대통령의 독주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여야가 비슷한 의석을 얻는다면 교착상태는 지속될 것이다.
대통령제의 문제점은 윤 대통령의 등장으로 극대화됐지만, 이전 대통령들도 이런 문제점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 사회는 윤 대통령 이후 개헌이나 정치 개혁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아직 그 방향을 예단할 수 없지만, 대통령 권한을 대폭 축소하는 일이 핵심이 돼야 할 것이다. 사실 개헌을 통한 정치체제의 개혁은 2017년 촛불 혁명 뒤가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나 집권을 우선시했던 민주당의 잘못된 판단에 따라 이뤄지지 못했다. 2017년의 실패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정치체제 개혁과 관련해선 의견이 갈린다. 먼저 개헌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 이상돈 전 국회의원(중앙대 명예교수·법학)은 “현재 윤석열 정부는 사람도 문제지만, 제도 문제가 더 크다. 이제까지 한국에서 성공한 대통령이 있었는가. 대통령제를 고쳐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의회제는 잘못된 정부를 끝낼 수 있지만, 대통령제는 대통령을 통제할 수 없다. 국회에 대한 불신이 크지만, 큰 틀에서 의회제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개헌하기보다 대통령제를 고쳐 쓰자는 의견도 있다. 문재인 청와대의 한 수석비서관은 “어느 제도나 장단점이 있고, 한국의 대통령제도 사람에 따라 차이가 컸다. 개헌으로 대통령제를 하루아침에 바꾸면 그에 따른 어려움도 커진다. 현행 대통령제에서도 국회의 입법권을 온전히 보장하고 총리를 국회에서 선출하는 식으로 바꾸면 대통령도 달라질 것이다. 또 국회의원선거에서 비례대표를 늘려 다당제로 가면 정치가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시사 오랑캐: 오랑캐처럼 자유로운 외부자의 눈으로 세상사를 봅니다. 4주에 한 번 연재.
Copyright © 한겨레2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