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권 빌런 트리오 ‘광·용·상’…막말, 금배지 욕망, 기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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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자고자대’라는 소리 들어 보셨어요, 자고자대?”
11월8일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윤영덕 의원이 김용원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상임위원에게 물었다. 김 상임위원이 “모른다”고 답하자 윤 의원은 “나중에 찾아보라”고 한 뒤 이렇게 말했다. “아까 아주 정말 듣기 민망했던 답변이 있었는데 상임위원과 의견이 다른 분들, ‘위원장 쪽 몇몇 위원’ 이렇게 지칭을 하면서 ‘초등학생 정도’ 그런 표현을 쓰시는 답변을 보고 ‘이분은 자고자대하신 분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인권위에서 주요 의사결정을 위해 열리는 상임위원회나 전원위원회를 직접 방청해보면 국감에서 왜 이런 지적이 나왔는지 확인할 수 있다. ‘자고자대’(自高自大)란 “오직 나만 홀로 높다”는 뜻이다. 잘난체하고 교만한 자를 가리킨다. 인권위의 전원위와 상임위 회의는 언제부턴가 ‘자고자대’한 이들의 고성과 막말, 몽니로 얼룩지며 매회 파행을 겪고 있다. 이를 지켜보며 때로 한숨과 함께 진저리를 쳤던 인권위 직원들도 이제는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질 정도다.
“대한민국 인권분야에 ‘빌런 트리오’가 나타났다.”
인권단체에 몸담은 이들이 한목소리로 하는 말이다. 빌런이란 악당을 의미한다. 이 트리오 명단에 꼽히는 이들은 인권위 김용원 상임위원과 그의 파트너라 할 수 있는 이충상 상임위원, 그리고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김광동 위원장이다.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유족회 회원들은 지난 6월15일부터 7차례의 집회와 70회 이상의 1인시위를 통해 김광동 위원장 파면을 촉구해왔고, 인권·시민단체들은 10월부터 ‘국가인권위원회 이대로 좋은가’ 등의 토론회를 열며 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의 사퇴를 요구해왔다.
인권위가 현재 진행 중인 인권침해사건을 다룬다면, 진실화해위는 과거의 인권 사건을 다룬다. 결국 한국에서 인권문제를 책임지는 대표적인 두 국가기구의 장관급 또는 차관급 인물 3명이 ‘빌런’소리를 듣는 셈이다. 김광동·김용원 두 사람은 윤석열 대통령 지명을 받았고, 나머지 한 사람 이충상은 국민의힘 추천이다.
‘빌런’이라는 거친 명명에는 두 국가기구가 설립취지와는 거꾸로 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의 위기의식이 담겨있다. 2024년을 앞두고 걱정은 커진다. 진실화해위에서는 위원장의 조직장악 수준이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이고, 위원장이 9월에 바뀌는 인권위에서는 두 상임위원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건 물론이고 여야 구도가 완전히 뒤집힐 것이다. 두 상임위원이 다수파가 된다는 뜻이다. 어쩌면 두 사람 중에서 인권위원장이 나올 수도 있다. 세 사람의 2023년과 2024년에 관해 이야기해본다.
■김광동―조직장악 급물살, 내부는 계속 조용할까
먼저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이다. 그의 정체성은 한마디로 ‘뉴라이트’다. 올해의 키워드는 ‘차분한 막말’이다.
김 위원장은 최고 의사결정 회의인 전체위원회에서 고함을 치거나 날 선 단어와 표현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인권위의 김용원·이충상 상임위원과는 다른 스타일이다. 차분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 어쩌면 대단히 신사적이다. 그러면서도 역대급 막말을 해온 한 해였다.
“침략자에 맞서서 전쟁상태를 평화상태로 만들기 위해 군인과 경찰이 초래시킨 피해에 대해 (희생자) 1인당 1억3200만원의 보상을 해주고 있다. 이런 부정의는 대한민국에서 처음 봤다.”
“전시에는 즉결처분이 가능했다.”
전체위가 아닌 다른 강연 또는 미팅 자리에서 했던 말이다. 이 말은 그의 정체성인 ‘뉴라이트’와 ‘진실화해위 수장’이라는 현재 자리가 병립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건 뉴라이트 극우 인사의 발언으로서만 잘 어울린다. 발언이 보도돼도 흔들림이 없었다. “왜곡보도”라며 언론 책임으로 돌리거나 끝없이 거짓 변명으로 빠져나갈 뿐 성찰하는 모습을 보인 적은 없다. 진실화해위의 한 관계자는 “위원장이 구설수를 즐기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 치명적 발언들은 한국전쟁기 학살 희생자 중에서 부역자를 가리는 일로 현실화됐고, 검찰·경찰을 동원한 무리한 감사로 이어졌다. 11월 한 달간 벌인 감사를 통해 9명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는데, 부역자 문제로 인해 상부로부터 압력을 받았던 조사관이 징계대상자에 포함된 일이 우연처럼 보이지 않는다.
한 조사관은 “김 위원장이 감사를 마무리한 뒤 조사 시스템 개선까지 명분으로 내세워 내년 초부터 대폭적인 조직개편을 추진할 게 분명하다”고 예상했다. 이를 토대로 김 위원장은 2024년 자신의 이념과 철학을 더욱 강력하게 투영하여 진실화해위를 끌고 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여기에 저항하는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다. 진실화해위 내부 통신망에는 지난 3월 김 위원장의 5·18 왜곡 발언과 관련해 한 직원이 올린 글에 수십 개의 댓글이 달린 뒤 9개월간 아무런 비판 글이 올라온 적 없다. 한 조사관은 “김광동 위원장이 워낙 직원들에게 밥을 잘사는 편이라 평가가 아주 나쁘지 않은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김광동 위원장이 새해에는 또 어떠한 무리한 말과 행동을 보여줄지, 조사관을 비롯한 내부 직원들은 길고 고요한 침묵을 계속 유지할지 궁금하다.
■김용원―인권위냐 금배지냐
두 번째 김용원 상임위원. 그의 정체성은 ‘형제복지원 수사 검사’이며 올해의 키워드는 ‘반전과 오만’이다.
올해 초 대통령 지명 상임위원 후보가 두 명으로 좁혀지고 그중 한 명이 김용원이라는 걸 알게 된 인권위 직원들은 자못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고 한다. 보수적인 대통령의 지명이지만 근사한 선택이라고 보았다. 그가 바로 1987년 1월 부산 형제복지원의 추악한 비리를 세상에 알리고 정권의 비호를 받던 박인근 원장을 구속한 수사검사였기 때문이다. 당시 부산지검 울산지청의 젊은 검사 김용원에겐 정의로운 기개가 있었다.
과거 인권위원 출신으로 그와 고등학교 동창의 연을 맺고 있는 한 인사는 “부산에서 김용원에 대한 평이 나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용원 상임위원은 인권위 입성 직후 세계일보·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도 인권위원과 군 인권보호관으로서 제대로 일할 것 같은 냄새를 풍겼다.
그러나 반전이었다. 이미 여러 당을 옮겨가며 선거에 출마해 ‘정치적 반전’을 보여주었지만 이렇게까지 다른 모습을 보여줄 줄은 몰랐다는 게 인권위 내부의 평가다. 해병대 채아무개 상병 순직 사건 직후 국방부의 부당한 수사 외압을 강하게 비판했던 그가 8월 중순 태도를 바꾼 일은 신호탄이었다. 인권위 안팎에서는 채아무개 상병 순직과 관련해 사단장 수사에 격노했던 윤 대통령의 의중이 이때 김 상임위원에게 전달되지 않았는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다.
그리고 오만. 김 상임위원은 “우스꽝스럽다”, “허황한 소리”, “잠꼬대 같다”는 표현을 남에게 잘 쓴다. 전원위와 상임위 회의에서 부산 사투리가 섞인 앙칼진 음성으로 자신의 입장을 공격적으로 펼친다. 윤영덕 의원이 국감에서 지적한 ‘자고자대’는 이러한 오만한 태도를 지적한 것이다. 11월 초 군사망자유가족 등 10여명을 불법건조물침입 등의 혐의로 경찰에 수사의뢰한 것도 그 태도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최근에는 송두환 위원장이 위원회를 사유화하고 “박진 사무총장 회의장 퇴장” 등 자신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다며 상임위와 전원위 참석을 일체 보이코트했다. 인권위 직원들은 “인권위 20년 역사에서 이런 대책 없는 몽니는 처음”이라고 한탄하고 있다.
그러나 또 하나의 ‘반전’ 여부가 관전 포인트다. 지난 추석 자신의 고향인 부산 영도구에 현수막을 내걸었던 그가 과연 내년 4월 총선에 도전할 지다. 출마를 결심한다면 내년 총선일인 4월10일로부터 90일 전인 1월11일까지 공직에서 사퇴해야 한다. 당선은 둘째치고 당내 경선 통과 여부도 불투명하지만, 그가 1월11일 과감히 인권위를 등지고 총선 출마를 준비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68살이라는 생물학적 나이를 고려할 때 이번이 마지막 출마 기회일 수 있거니와, 채 상병 순직 사건 때 박정훈 대령 긴급구제 건을 기각한 것도 정권 상층부를 향해 보낸 일종의 신호라는 해석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권위 내부 직원 중엔 그의 출마를 간절히 바란다는 이들도 있다.
공직사퇴 시한은 보름가량 남았다. 그는 과연 새해 벽두에 인권위를 선택할까, 금배지 도전을 선택할까.
■이충상―또 어떤 기괴한 발언? 꿈은 이뤄지나
마지막으로 이충상 상임위원이다. 그의 정체성은 ‘부장판사’이며 올해의 키워드는 ‘기괴함과 야망’이다.
2006년 2월13일자 내일신문은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어 내부 징계를 당한 법관들이 잇따라 사표를 제출했다”며 그중에서 이충상 부장판사의 이름을 거명했다. 이 부장판사가 2005년 9월 후배 판사에게 특정 사건과 관련해 ‘사실상 압력’을 행사했다가 법원장으로부터 구두경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20년간의 판사생활을 이때 마무리하고 변호사로 변신했던 이충상 상임위원은 2019년에는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임용된다.
이 상임위원은 판사생활을 오래 했다는, 특히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냈다는 자부심이 커 보인다. 논쟁할 때도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낼 때 자신의 검토보고서와 의견서가 다수의견으로 채택되었다”는 식의 예를 드는 경우가 많다. 그가 유능한 법관이었는지는 모르나, 부장판사까지 지낸 이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상상하지 못했던 내용이기에 그만큼 경악과 충격의 정도가 더 심한 것 같다.
“그러면 게이(남성 동성애자) 중 여성 역할을 하는 사람이 동거남에게 항문성교를 허용함으로써 항문이 파열되어 대변을 자주 흘리기 때문에 기저귀를 차고 살면서도 스스로 좋아서 그렇게 사는 경우에 과연 그 게이는 인권침해를 당하면서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며 인권위원회가 그것을 인식시켜줘야 하는가? 아니다.”(군 두발규제 관련 교육안건 결정문 초안에서)
“노조사무실의 출입이 자유이기 때문에 진정인들이 자기 집에 가서 샤워도 하고 잠도 자고 다시 와서 농성하고 있는 터에 수도를 더는 공급하지 않는 구미시가 인권침해자가 아님이 너무 명백합니다.”(한국옵티칼하이테크 노동자들의 단수조치 긴급구제 진정과 관련)
이 말들은 언론에 의해 ‘혐오 발언’으로 분류되고 있지만 ‘혐오’보다는 ‘기괴’, 즉 기이하고 괴상한 말에 더 가깝다. 혐오든 기괴든, 이 말들은 화자의 취약한 공감능력을 보여준다. 인권위원으로서 자격이 있냐는 의문을 품게 한다. 그러나 그에겐 야망이 있다고 한다. 인권위를 출입하는 기자들 사이에선 “이충상 상임위원이 인권위원장을 꿈꾼다. 경북대에서 나오기 직전 ‘인권위원장으로 돌아오겠다’는 인사를 했다”는 설이 파다하다. 그는 실제로 기자들과 문자메시지로 대화 중에 “인권위원장이 바뀐 후”라는 가정법을 쓰는 경우가 꽤 있다. 송두환 현 위원장 후임에 대해선 내년 7~8월 후보추천위 구성과 인사청문이 예상된다
이충상 상임위원은 또 새해에 어떤 기괴한 발언을 할까. 그의 어떤 야망이 실재한다면 이뤄질 수 있을까.
■“본격 역주행시 무관심이 가장 두렵다”
“이젠 인권운동도 세대교체가 되다보니 본격 역주행 돌입 시 비판 수준이 아니라 무관심 단계로 넘어가지 않을까 싶은 불안감이 든다. 이것이 가장 두렵다.”
인권위 관계자의 이 말은 인권위뿐 아니라 진실화해위에도 똑같이 해당할 것이다. 진실화해위에서는 위원장의 편파적인 운영으로, 인권위에서는 두 상임위원의 격렬한 언사와 몽니로 인해 내부 조사관과 직원들이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 무력감이 장기화하면 무관심으로 바뀔 수 있다는 우려다.
2024년 진실화해위와 인권위는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내부의 지혜와 용기, 외부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고경태 기자 k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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