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과의 대화·전세사기·편의점 알바···2024 경향신문 신춘문예 응모작 살펴보니

임지선 기자 2023. 12. 2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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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산문화·소설은 ‘살아가는 일의 고됨’
평론은 기후위기·전쟁 등 ‘총체적인 망함의 감각’
내년 1·2일자 지면에 당선작·심사평 게재
‘2024 경향신문 신춘문예’의 소설부문 정지아, 김미월, 김인숙, 강지희, 전성태 심사위원(왼쪽부터) 이 지난 20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회의실에서 최종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2024 경향신문 신춘문예는 양과 질 전반적으로 풍성해졌다. 소설의 주제는 개인의 내면에서부터 사회적 고된 현실을 말하는 작품까지 다양했다. 시는 길이가 길어지는 경향이 더 짙어졌다. 소설과 시 모두 반려동물을 소재로 한 내용이 많았고 전세사기, 택배 노동 등 사회적인 소재도 많이 거론됐다. 평론은 예년에 비해 작품 수는 줄었지만 밀도 있는 다채로운 글들이 나왔다.

올해의 응모작은 최근 2~3년 흐름과 비교해 상당히 늘어난 편이었다. 응모편수는 시 3250편(642명), 소설 621편(603명)이었다. 소설은 지난해보다 100여편, 시는 500여편 응모작이 많았다. 지원자 숫자로는 시·소설 모두 지난해보다 100여명이 많았다. 평론은 16편(16명)으로 지난해보다 지원자가 줄었다. 지원자는 1980~1990년대생이 주를 이뤘다. 소설과 시 모두 2008~2009년생인 10대 지원자를 비롯해 80대 지원자도 나왔다. 미국, 스위스, 아르헨티나 등 멀리 떨어진 곳에서 국제우편으로 원고를 보낸 이들도 있었다.

올해도 시·소설·문학평론 전 부문을 예·본심 통합으로 진행했다. 인적사항이 적힌 별지를 떼어 보관하고, 작품 본문 원고만 심사위원단에 전달했다.

소설의 경우 김미월·김인숙·전성태·정지아 소설가(이하 가나다 순), 강지희 평론가가 응모작을 나눠 읽고 각각 1~2편씩 추천했다. 총 9편의 후보작을 두고 지난 20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치열한 심사를 마쳤다.

시 부문 심사는 송경동·진은영·황인숙 시인과 이경수 평론가가 맡아 19일 예심과 본심을 통합해 심사했다. 문학평론 부문은 양윤의·차미령 평론가가 지난 22일 심사했다.

소재는 기후위기, 젠더 등 다양했지만 시와 소설 모두 ‘반려동물’에 관한 소재가 도드라졌다. 전성태 소설가는 “반려 동물들에 관한 소재의 소설이 올해 유난히 많아 인상적이었다”며 “동물 자체가 화자가 되어 서술된 소설도 있었다”고 말했다. 진은영 시인은 “반려견과 대화하는 시가 많았는데, 대화의 상황이 사적인 공간에 머무는 느낌도 있었다. 사회상을 반영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경수 평론가는 “반려동물이 등장하는 시를 비롯해 포스트 휴먼 시대에 대한 감각을 드러내는 시들이 눈에 띄었다”며 “작년에 이어 기후위기에 관한 문제 의식을 드러낸 작품, 전세사기나 택배 노동, 청년문제, 젠더 감수성을 드러내는 시들도 보였다”고 했다.

시의 경우 산문화 경향이 더 강해졌다. 진은영 시인은 “작년에도 그랬지만 시의 산문화 경향이 심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젊은 세대 시인들이 시적 긴장을 유지하는 전통적 문법에 비해 훨씬 더 부드럽고 산문적 어조로 다정하고 친절하게 이야기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경수 평론가는 길어진 시를 두고 “하고 싶은 말이 많아진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된다”며 “시에 대한 열망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심사하면서 그 열정을 느낄 수 있어서 설레었다”고 말했다. 황인숙 시인은 “언어 실험적 작품은 거의 없었다”면서 “개인의 일상 정조를 다루는 시들이 많았다”고 했다.

‘2024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부문 송경동, 진은영, 이경수, 황인숙 심사위원들(왼쪽부터)지난 19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회의실에서 응모작들을 심사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시에선 청년들의 사회적 불안과 고통도 배어났다. 진은영 시인은 “시를 쓰는 분들이 살기가 많이 힘들어졌다는 생각, 고립감을 느끼거나 어려운 상황을 서술하는 시도 많아졌다”고 했다. 송경동 시인도 “많은 젊은 시들이 여전히 사회적 소외와 불안 속에서 고립된 자아의 출구 찾기에 고투하고 있는 것이 보여 측은지심의 연대감이 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소설 부문은 삶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작품들이 많아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김인숙 소설가는 “예년과 달리 응모자들의 관심이 다양하게 펼쳐져 있었다”며 “자신의 삶과 가까운 주제를 선택한 소설들이 많았는데 살아가는 일의 고됨을 들여다보는 깊이가 깊었다”고 평가했다. 정지아 소설가는 “개인의 내적 서사를 다룬 소설들이 많았지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이 명료하게 보였다”며 “구체적인 노동문제를 이야기하거나 조금 더 거대담론으로 사회와 개인의 관계를 다루는 소설들이 작년에 비해 늘었다”고 말했다. 김미월 소설가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 및 불안정한 주거 상황 등 현재 청년 세대가 겪고 있는 가장 흔하면서도 절박한 문제들을 소재로 취한 작품이 다수 눈에 띄었다”고 했다.

소설의 실험성이 돋보였다는 평가도 나왔다. 강지희 평론가는 “서사적으로 실험적 탐구를 시도하는 작품이 늘었다”며 “인물의 일상적 시간을 세밀하게 파고드는 내면 탐색과 다르게 시간에 대한 물리적 사유를 경유하는 소설들이 눈에 띄었다”고 말했다.

‘2024 경향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 차미령(왼쪽), 양윤의 심사위원이 지난 22일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회의실에서 출품작을 살펴보며 심사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문학평론 부문에서는 주목받는 작가 또는 고전 중심으로 쏠리는 경향이 강했던 예년과 달리 지원작 16편의 평론 대상 작품이 하나도 겹치지 않았다. 차미령 평론가는 “첫 책을 낸 작가라든지 최근 5년간 주목받기 시작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원고가 많았다”며 “기후 위기와 저 멀리의 전쟁까지 ‘총체적인 망함의 감각’ 아래에서 이태원 참사 등 한국의 사회적 사건까지 연결되는 방식이었다”고 설명했다. 양윤의 평론가는 “코로나 이후 어떤 폐허가 된 지구에서 (한국을 뛰어넘는) 행성적 감각이 보인다”며 “굉장히 디스토피아적이지만 또 어떤 의미에서는 대안적이고 희망적인 상상력이 생성되고 있다”고 평했다.

당선작은 심사평과 함께 내년 1월1·2일자 지면에 게재된다.

임지선 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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