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무생 "'노량: 죽음의 바다' 합류, 뛸 듯이 기뻤죠"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이순신 장군의 북소리가 심장 소리처럼 들렸어요. '너 이러고 살면 되겠니?'라고 묻는 듯 기분 좋은 텐션을 주더라고요. 더 부지런히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감동적이었어요."
우렁찬 북소리가 진한 여운을 남기는 '노량: 죽음의 바다'가 지난 20일 개봉 후 4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연말 극장가를 달구고 있다. 이 영화는 '명량', '한산: 용의 출현'을 잇는 세 번째 작품으로, 1598년 노량 해협의 겨울 바다에서 벌어진 조선과 왜의 난전 그리고 이순신의 마지막을 그렸다. 개봉을 앞둔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고니시를 연기한 배우 이무생을 만났다.
"이순신 장군의 팬으로서 김한민 감독님의 3부작 대미를 장식하는 작품에 출연하면 얼마나 좋을까 막연히 생각만 했는데 '출연해 줄 수 있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정말 뛸 듯이 기뻤어요.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부담도 느꼈지만 이순신 장군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그 마음을 이겼어요. 일단 저질러보자 했죠."
고니시는 임진왜란의 중심에 있던 왜군 장수다. 퇴각이 어려운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왜의 승리를 위해 이순신 장군을 제거하기 위한 전략을 펼친다. 서늘한 눈빛으로 영화의 오프닝을 연 그는 러닝타임 내내 날카로운 존재감으로 이순신과 대치했다.
"실제로 가톨릭 신자였다고 해요. 상인의 자식이었고 계산에 밝은 인물로 알려져 있고요. 감독님께서 고니시가 나오는 책을 선물해 주셔서 많이 참고했어요. 경거망동하지 않고 이성적인 인물로 그리는 게 목표였죠. 특히 필요 이상으로 나쁜 놈처럼 보일 필요 없다고 하셨던 게 기억에 남아요. 왜군이고 적군이지만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쫓기는 입장에서 조선에 안 좋은 감정이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감독님 말씀 덕분에 악역처럼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을 내려놓을 수 있었죠."
'노량: 죽음의 바다'의 사실적이고 웅장한 영상미 뒤에는 베테랑 제작진의 노고가 숨어 있다. 특히 임진왜란 상황을 직접 보여줄 수 있는 의상, 분장은 철저한 준비가 필수였다. 전쟁 막바지라는 시대적 배경과 각 진영의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제작진은 실제 장수의 가문과 역사서에 남아 있는 기록에 창작 요소를 더해 의상을 디자인했다. 이무생 역시 30kg에 달하는 갑옷을 입고 일본식 변발을 소화했다.
"처음 거울 보고 저조차도 '어 누구지?' 했을 만큼 새로웠어요. 분장팀에 감사했죠. 매번 분장만 3시간 넘게 걸렸거든요. 눈썹은 하나하나 연장하고 얼굴에 음영도 많이 넣었고요, 점점 달라지는 제 모습을 보는 것도 재밌었어요. 일본어는 툭 치면 튀어나올 정도로 외웠어요. 대학교 때 교양 수업으로 접한 게 전부라서 잘 모르기도 하고, 심지어 요즘 쓰는 말이 아닌 고어라 더 쉽지 않았죠. 당시 코로나19 기간이라 '줌'으로 수업을 받았어요. 최대한 자연스러운 느낌을 살리려고 밤낮 없이 입에 달고 살았던 것 같아요."
특히 약 100분간 이어지는 해전 장면은 압도적인 규모감을 자랑하는 덕에 '노량: 죽음의 바다'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평창 동계올림픽 때 사용된 강릉 아이스링크에서 진행된 해전 촬영엔 이순신 3부작을 이어온 김한민 감독의 노하우가 모두 담겼다. 이에 세트장 내 실제 판옥선 크기를 그대로 재현하면서도 물 한 방울 없이, 겨울 바다 전투의 긴박감을 스크린에 담아낼 수 있었다.
"세트가 실제로 봐도 굉장히 광활했어요. 평창 동계올림픽 실내 경기장이 어마어마하게 크더라고요. 그 안에서 기계로 움직이는 배를 설치하고, 저희는 거대한 그린스크린을 보면서 연기했어요. 배는 흔들리지만 눈 앞엔 그린스크린만 보이는 거예요. 처음엔 아무것도 없어서 막막했는데 감독님이 준비해주신 레퍼런스 영상이 도움이 됐어요. 카메라 워킹의 도움도 많이 받았고요. 결과물이 진짜 멋있던데요. 촬영의 승리인 것 같아요."
이번 작품에서 이순신 장군을 연기한 배우 김윤석은 '명량'의 최민식, '한산: 용의 출현'의 박해일과는 또 다른 카리스마로 감동을 선사한다. 이무생은 "김윤석 선배님과 2009년 '거북이 달린다' 이후 오랜만에 만났다"며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촬영 중엔 많이 못 만나서 아쉬웠지만 늘 함께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같이 한 작품에 나오는 건 진짜 오랜만이에요. 예전에 '거북이 달린다'에서 제가 신참 형사로 나왔거든요. 선배님은 그때도 이미 최고셨지만 이번엔 이순신 장군으로 빙의하셨더라고요. 선배님이 '비워내고 또 비워내야 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정말 '비워낸 연기'의 극치를 보여주셨다고 생각해요. 이순신 장군을 맞이하는 배우의 숭고함이 느껴지더라고요. 멋지고 어마어마했죠."
고니시로 '노량: 죽음의 바다' 한가운데에서 존재감을 과시한 이무생은 최근 40대 또래 배우 중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특유의 젠틀한 매력으로 '이무생로랑'이란 수식어를 얻은 2020년 JTBC '부부의 세계' 이후 절절한 로맨스 연기를 선보인 JTBC '서른, 아홉', 사이코패스 역을 맡은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 등으로 매번 다른 얼굴을 보여줬다. 현재 방영 중인 tvN '마에스트라'에서는 치명적인 매력의 '직진남'으로 여심을 흔들고 있다.
"운이 좋았죠. 멋진 캐릭터들을 만났고 대본의 힘이 컸어요. 단호히 말씀드리지만 제가 한 건 없어요. '노량: 죽음의 바다'만 해도 갑옷과 의상, 분장이 다 한 것이죠. 또 함께 한 배우들이 만들어준 것이고요. 이번 작품도 그렇고 저는 작품을 고를 때 제 기준을 잡지 않는 편이에요. 세상을 볼 때 '좋다', '싫다'가 아닌 '아 그냥 그렇구나' 하는 자세가 연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삶에도 마찬가지고요. 호불호가 크게 없는 성격이 선역과 악역을 오가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그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겠죠. 앞으로도 늘 줄타기하는 마음으로, 중심을 잘 잡고 연기하고 싶어요."
스포츠한국 조은애 기자 eun@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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