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금융]①법마저 눈 감는…'당연한 차별'
금융소비자보호법의 허술한 '차별금지 규정'
제재규정 두지 않아 조사·감독 실효성 떨어져
금융은 다수 주류의 산업입니다. 신용의 다른 말이 확률이라서죠. 냉정한 돈의 속성은 인간적인 배려를 기대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다른 분야보다 금융이라는 산업 안에서 더 그렇습니다. 정책은 보수적이고 판단에는 무엇보다 안정이 우선이죠.
그래서 금융의 사각(死角)은 더 어둡고 깊습니다. 이익과 위험을 가늠할 수 있는 범주에 들지 않으면 소비자로서도 발디딜 자리를 찾기 어렵죠. 장애인·고령층·이민자 등 이 사회의 마이너리티(소수자)는 변화무쌍하게 급속 발전하는 금융을 향유하기 힘듭니다. 금융소외가 더욱 넓고 깊게 생겨나는 배경이죠.
금융 서비스는 다수에게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디딤돌이 됩니다. 그래서 요즘 정치권에서 '공공재'라고까지 하죠. 하지만 특정 계층에는 오히려 기본적인 경제생활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는 게 현실입니다.
우리 사회의 다양한 '그들'에게 금융은 어떤 장애물일까요? 금융이 그들에게도 활용 가능한 경제생활의 인프라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할까요? 제도와 금융권의 영업 현황 등 다양한 측면에서 소외된 계층의 금융 실태를 짚어보고, 그 해결책과 대안을 <비즈워치>가 모색해보려 합니다. [편집자]
금융소비자보호법도 돌보지 않는 차별
금융소비자보호법은 재작년 3월 처음 시행됐습니다. 적용대상, 영업행위규제, 소비자권리 등을 규정하고 있는 이 법은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기본법이자, 금융상품판매업자 등에 대한 영업행위를 규제하는 규제법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소비자 보호를 위해 필수적인 규정들을 담아놓은 것이지만 국내 시행은 늦었습니다. 금융 안정이 지상과제인 국내 현실 속에 처음 발의돼 국회에 오른 것도 2011년에 와서였죠. 그 뒤로도 여러 쟁점으로 지연됐고요. 2019년말 파생결합상품 대규모 손실 사태를 계기로 2020년 3월에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하지만 이 법에서조차 금융 소비자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은 매우 느슨합니다. 소비자의 어떤 '요건'이 금융 소외를 야기할 수 있지만, 구멍이 법에서부터 뚫려있는 겁니다. 금융이 선택적인 '쌍무적 계약'에서 비롯한 서비스라는 전제에 기반하고 있어섭니다.
금융소비자보호법은 제15조에서 금융상품판매업자의 일반적인 영업행위 규제로서 '차별금지'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금융소비자가 공정하게 대우받을 기본적 권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금소법은 차별요소로 '성별·학력·장애·사회적 신분 등' 4가지 만을 열거해 규정하고 있는데요.
이는 국내법에서 헌법에 따라 가장 일반적인 차별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 20여개 요소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과 차이가 큽니다. 세부항목을 제외한 대분류만으로 그렇죠.
인권위법에는 차별 받지 않아야하는 요인을 이렇게 나열하고 있습니다. 출신 지역(출생지·등록기준지·성년이 되기 전 주된 거주지 등), 용모 등 신체 조건, 혼인 여부(기혼·미혼·별거·이혼·사별·재혼·사실혼 등),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인종, 피부색, 사상, 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前科), 성적(性的) 지향, 병력(病歷) 등이죠.
국회입법조사처는 2021년말 내놓은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이 금융시장에 미친 영향 및 입법적 개선과제'라는 용역보고서에서 이런 차별요소 규정에 대해 "예시적 열거인지 한정적 열거인지 명확하지 않다"면서 "국가인권위원회법상 차별요소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계약 조건'만이라는 한계
금소법에는 차별금지가 적용되는 범위가 '금융상품 또는 금융상품자문에 관한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로 한정돼 있기도 합니다. 법문상에서는 '계약을 체결하는 계약조건을 차별하는 것'만 금지하고 있는 거죠.
반면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는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뿐만 아니라 특정한 사람을 우대·배제·구별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를 포괄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특히 금소법에 차별금지에 관한 과태료 등의 제재규정이 없고, 규정의 내용상 계약을 거절하는 경우 등이 포함돼 있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보고서는 지적합니다. 감독기관의 조사 및 감독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낮다는 거죠.
이 보고서 책임자인 남궁주현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차별금지의 범위에 계약조건을 차별하는 것뿐만 아니라 계약체결을 거절하는 경우도 포함하는 방향으로 확대가 필요하다"며 "인권위와 관할 문제가 생길 수 있는 만큼 제재규정도 죄형법정주의 등의 원칙에 따라 법률에서 관련 규정을 명확하게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합니다.
금융의 사각지대는 이렇게 법의 구멍 위에 존재합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쉽게 사용하게 된 카카오뱅크, 케이뱅크 등의 인터넷전문은행은 외국인은 계좌 개설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여권 정보를 검증할 시스템이 마련되지 않아서란 게 이유죠. 또 배우자가 외국인이면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는 것도 실상입니다.
또 공동인증서 사용(전자 서명) 같은 경우도 다수가 쉽게 쓰지만 고령자나 장애인은 이용이 어렵습니다. 같은 편익을 누리려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이 역시 보안에 문제가 있죠. 정신과 진료기록이 있으면 보험 가입이 거절 당하기도 하고요. 이런 소외를 줄이려는 보완책을 만드는 데는 금융당국도, 금융기관들도 인색합니다.
너무나 지체된 '금융 평등'
국내 금융산업의 차별 해소에 대한 문제는 1980년대 민주화 이전에는 개발금융의 시급함 때문에 뒷전이었죠. 이후로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리먼브러더스발 금융위기 등을 거친 탓에 '규모의 경제 확보, 안정성 우선' 같은 논리에 줄곧 밀렸죠.
반면 서구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차별 없는 금융평등에 대한 논의가 법제화로 이어져왔습니다. 미국에선 1972년 평등신용기회법(Equal Credit Reporting Act)을 제정했는데요. 이는 민권법(1964), 연령차별금지법(1967), 장애인법(1990) 등과 함께 금융에서의 평등을 실현하는 제도적 장치입니다.
미국은 대공황 이후 '레드라이닝(Redlining)'이라는 이슈가 있었는데요. 주택금융 관련 기관이 비(非)백인 거주지역을 '빨간 선'으로 표시해 담보 고위험지역으로 분류해 차별한 걸 말하죠. 이 레드라인을 없애기 위한 고민과 노력이 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겁니다.
유럽연합(EU)에서도 기본적으로 인종·종교·성별 등 여러 영역에 '동등처우지침'을 두고 있는데요. 금융과 관련된 사항은 공통참조기준초안(Draft Common Frame of Reference, DCFR)에 명시해 두고 있습니다. 차별받지 않을 권리, 차별유형, 구제수단등에 관해 세세히 규정하고 있죠.
국내에서도 금융서비스 이용에서 실질적 평등이 구현될 수 있도록 법·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윤도진 (spoon504@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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