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 잡기 '머니게임'인데…"돈 없는 한국경찰 뻔하다" 왜?
[편집자주] 내년부터 간첩 수사는 국가정보원이 아닌 경찰이 전담한다. 대공수사권을 이관하는 법이 통과되고 3년의 유예기간이 있었지만 준비는 여전히 미진해 자칫 안보 공백이 이뤄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방첩에 사용되는 안보예산 조정권한이 국정원에 있어 기관간 협조가 필수적인데 수사에 있어 기관간 권한의 경계는 아직 명확하지 않은 상태다. 아울러 '안보경찰'은 경찰 내 대표적인 비인기 보직이어서 우수 수사 인력 확보도 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간첩 잡는 정보전은 머니게임입니다. 북한 간첩이나 공작 관련 핵심정보를 가진 인물은 한국 정보당국만 노리는 게 아니거든요.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은 가만히 있겠어요?"
내년부터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넘어오지만 관련 정보예산 편성권은 여전히 국가정보원(국정원)에 있다. 대공수사는 '협조자'에 대가를 제공하고 간첩활동 등 정보를 얻는 것이 핵심인데 자칫 기관간 불협화음이 생길 경우 예산부족으로 이어져 곧 수사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전망이 경찰 내부에서는 나온다.
내년 1월부터 경찰청 본청과 18개 시도청 소속 대공 수사관 700여명이 간첩수사를 전담한다. 대공수사권을 넘겨받기에 앞서 경찰은 지난 6월 기준 462명이었던 대공수사인력을 내년 1월 두배 가까이 늘리는 등 조직과 인력을 확보하며 준비했다. 경제안보·테러·방첩·첨단안보 등 안보수사 인력을 포함하면 내년부턴 1000여명의 경찰 수사관이 대공수사를 포함한 안보수사 분야를 담당한다.
인력·조직 같은 '양'은 갖췄지만 예산이라는 '질'은 필요한 만큼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경찰 대공수사에 필요한 예산은 크게 정보예산과 일반예산으로 구분한다. 일반예산은 사무실 인테리어 등 업무환경조성에 쓰는 비용이다. 종북단체 내부에서 경찰을 돕는 협조자에게 지원하는 협조자비 등 대공수사비는 모두 정보예산에서 지출한다.
일반예산은 경찰청이 국회 정보위원회를 통해 기획재정부에 예산안을 제출해 마련한다. 하지만 정보예산의 조정 권한은 국정원에 있다. 경찰뿐 아니라 국방부와 통일부 등 다양한 정부기관이 국내 방첩활동을 함께 수행하면서 정보예산을 나눠 쓴다. 이때 사용하는 정보예산을 어느 기관이 얼마나 쓸지 분배하는 조정권한이 국정원에 있는 것이다.
이에 경찰 내부에선 정보예산 조정권한을 가진 국정원이 가진 데 대한 불만도 나온다. 내년부터 대공수사는 전부 경찰이 담당하는데도 국정원은 수사규모보다 부족한 수준의 정보예산만을 경찰에 배분했다는 것이다.
대공수사는 특성상 예산규모가 수사 결과와 직결된다. 대공수사 협조과정에서 협조자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지거나 생명과 신체의 위협을 받기도 한다. 북한 또는 외국 정부의 지령을 받아 간첩활동이나 공작을 진행하는 사건의 특성상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선 협조자비 등 정보예산 지출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2015년 대법원에서 내란선동·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사건'의 경우 국정원이 협조자비를 적극 활용해 수사한 사례로 꼽힌다. 협조자가 확보한 증거는 대법원 판결의 핵심 증거로 채택됐다.
국정원은 수사 과정에서 협조자에게 자택을 구매해주고 매달 생활비를 지급하면서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해외여행을 명목으로 출국시키기도 했다. 사건수사가 끝난 이후에도 협조자가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식당이나 가게를 차려주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협조자가 북한 요원의 암살 위협속에서도 국정원을 신뢰하고 대공수사 증거를 확보하는 등 공작에 적극 동참하는 이유다.
한 시도경찰청 안보수사 관계자는 "미국 CIA(중앙정보국)가 왜 정보력이 뛰어나겠냐"며 "탈북자 중에서도 고위장성, 당관계자 등 핵심정보를 가지고 있거나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정보를 최대한 비싼값에 팔려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일본·미국 등 정보당국이 제공하는 돈보다 적게 주면 굳이 한국 경찰과 협조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우선 내년도 안보수사 일반예산을 기존 61억800만원에서 69.5% 늘린 103억5700만원으로 책정해 국회 정보위에 제출했다. 현재 여야 의원들의 이견이 없어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경찰은 일반 예산으로 수사장비 등을 구입해 대공수사 업무환경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국가정보원의 2024년1월1일 이후에도 제한적으로 대공수사에 참여할 수 있다. 합동 수사기구 참여 등을 위한 시행령인 '안보침해 범죄 및 활동 등에 관한 대응업무규정(시행령)'을 통해서다. 일각에서는 국정원 시행령이 대공수사권 부활의 포석이라는 주장을 제기하지만 국정원은 "직무 수행 관련 내용을 구체화한 것일 뿐 경찰 수사권 침해를 비롯해 법률에서 위임한 범위를 넘어 직무를 행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선을 긋고 있다.
■'시행령 통치' 논란 부른 업무규정…국정원 '수사권 침해 가능성' 반박·논란의 조항은 삭제
내년 1월 시행되는 국정원법 체계상 국정원은 직접 대공수사가 불가능하고 국가안보에 반하는 행위자와 관련한 정보를 경찰에 넘길 수 있다. 다만 국정원장은 경찰, 검찰 등 안보침해 범죄를 다루는 유관기관의 수사에 국정원 직원을 참여시킬 수 있다. 해당 시행령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이관 뒤 유관 수사 기관 등 과의 업무 협력 방식 등을 규정하고 있다.
시행령에 따르면 국가정보원은 국가안보와 국익에 반하는 활동을 하는 이들에 대한 추적활동과 정보분석 등의 활동을 할 수 있고 출국정지도 요청할 수 있다. 또 불가피한 경우에는 민감한 개인정보와 고유식별정보, 고정형 영상정보처리기기에 촬영된 개인정보, 이동형 영상정보처리기기에 촬영된 개인정보 등을 처리할 수 있고, 국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개인 등에 개인정보를 요청할 수 있다.
입법 예고 당시엔 경찰청,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은 제정안에서 국정원으로부터 수사·재판 기록 열람과 복사 요청을 받은 국가기관은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요청에 따라야 한다는 내용의 조항이 실려 있었다. 이에 대해 경찰청과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등은 증거 수집 적법성·개인정보 보호 등의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국정원이 이를 수용했다. 이를 반영해 수정된 시행령 개정안이 지난 19일 제정돼 내년 1월1일 시행된다.
앞서 참여연대는 지난 9월 '시행령 통치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부활'이라는 명칭의 토론회를 열고 안보침해 범죄 및 활동 등에 관한 대응업무규정을 겨냥해 "경찰의 대공수사에 개입할 여지를 둔 것"이라고 민감한 반응을 내놓기도 했다.
■"글로벌 간첩 잡기 어렵다" 학계서 우려도
학계 일각에선 방첩기관이 대공수사권을 경찰에 넘기는 것이 안보 공백이라는 중차대한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 과거 군부독재 시기 인권 탄압 등의 명목으로 대공수사가 악용된 전례는 많지만 대공수사권 이관의 부작용에도 주의해야 한다는 논리다.
일례로 CIA(미국 중앙정보국)을 비롯한 타국 주요 정보기관들과 경찰 간 소통이 국정원이 대공수사를 맡던 때 만큼 원할할 수 있겠느냐는 주장도 나온다.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을 역임한 남성욱 고려대학교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요즘 간첩은 글로벌 간첩이라서 옛날처럼 국내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제3국에 가서 미션을 받는 것"이라며 "경찰 영사는 일부 대사관에만 있고 국제 공조가 되지 않는데다 정보기관은 정보기관들끼리 네트워크를 하기 마련인데 그런 협업이 잘 안될테니 내년 1월부터는 시행착오가 많을 것"이라고 했다.
국정원은 "대공수사권 폐지 이후 안보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국가정보원법에 규정된 안보침해 범죄 등 관련 정보 수집과 확인·견제·차단이라는 대응 조치에 주력할 방침"이라고 했다.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이강준 기자 Gjlee1013@mt.co.kr 김지훈 기자 lhsh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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