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거주 의무' 존폐 갈림길…혹한 속 혼돈의 주택시장
수분양자들 '전입하거나 포기하거나' 선택해야
전세시장 위축 우려도…"문제는 불안심리 증폭"
'한다, 안 한다, 한다, 안 한다…….'
실거주 의무 폐지가 또 물 건너갔다. 국회에서 관련 소위를 한 차례 더 열기로 하면서 불씨가 완전히 꺼지진 않았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이 계속해서 기대감만 높이는 가운데 법안 통과가 불투명해지자 시장의 혼란만 커지는 모습이다.
마냥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수분양자들은 위장 전입 등의 편법을 알아보는 등 움직임이 바빠졌다. 아울러 실거주 의무가 유지되면 전세 공급이 부족해질 거라는 우려가 시장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이번엔 통과할 줄 알았는데…'일단 전입?'
지난 21일 분양가 상한제 주택의 실거주 의무 폐지를 담은 주택법 개정안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의 문턱을 또다시 넘지 못했다.
이번에는 여야가 절충점을 찾을 것으로 전망됐었다. 실거주 의무를 유지하되 주택을 처분하기 전까지만 의무를 다하게 하는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 발의안을 중심으로 해서다.
그동안 반대 입장을 밝히던 야당이 소위 안건에 올리자고 먼저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데다, 사실상 마지막 소위라 통과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그러나 야당 국토위원들 간 이견으로 법안 처리가 보류됐다.
기대감이 높았던 시장의 실망감도 커졌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현재 실거주 의무를 적용받는 단지는 전국 72곳, 4만7595가구에 달한다.
당장 내년부터 입주 시점이 돌아오는 △강동구 '강동헤리티지자이'(1299가구)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1만2032가구) △성북구 '장위자이레디언트'(2840가구) △경기 광명 '철산자이헤리티지'(3804가구) 등이다.
실거주 의무가 유지된다면 이 단지들은 분양권을 팔더라도 직접 거주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생긴다.
현행법상 2021년 2월19일 이후 분양된 수도권 분양가상한제 아파트 일반분양 청약에 당첨된 경우 최초 입주일로부터 2~5년간 실거주 해야 한다. 그전에 전세를 놓아 잔금을 치르거나 집을 파는 경우 최대 징역 1년 혹은 1000만원 벌금 처분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올해 1·3대책 이후 집을 분양받은 사람들 중에는 실거주 의무가 폐지될 거라고 기대하고 부족한 잔금은 전세를 통해 충당하려는 사례가 다수 포착된다.
이들은 법안이 좀처럼 통과되지 않자 '차라리 위법'을 검토하기도 했다. 그러나 벌금 처분을 받으면 집도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환매해야 하는 규정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한 방법이다.▷관련기사: [집잇슈]'실거주 의무' 살아남으면…수분양자 선택은?(2023년12월12일)
결국 자금 여력이 안 되는 이들은 추가 대출을 알아보거나 잔금 유예에 따른 이자 상환 등을 계산해 보는 분위기다. 이자를 내며 버티다가 정 안 되면 계약을 취소하겠다는 이들도 있다.
현금 여력이 있는 수분양자들은 '위장 전입' 편법을 공유하기도 한다. 잔금은 치를 수 있지만 자녀 학업 등의 문제로 실거주가 어려운 경우 일단 전입 신고만 해놓겠다는 것이다.
부동산 커뮤니티 등에는 "일단 전입 신고를 한 뒤 가끔 가서 전기나 가스 사용 기록을 남겨서 증빙 자료를 만들어놓고 2년 기다린 뒤 팔면 된다"는 글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둔촌주공 살리기 실패? "진짜 문제는 불안 심리"
무엇보다 1만2000여 가구에 달하는 서울 강동구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재건축) 수분양자들의 선택에 주목되고 있다.
실거주 의무 폐지를 약속한 1·3대책은 사실상 '둔촌주공 살리기' 대책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대책을 발표한 올해 1월3일은 미분양이 대거 발생할 위기에 놓였던 이 아파트의 계약일이었다.
당시 전국적으로 미분양 우려가 컸기 때문에 주택 시장 영향력이 높은 둔촌주공의 분양권 및 전월세 거래를 풀어준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패키지 정책'인 전매제한만 풀리고 실거주 의무가 유지되자 둔촌주공의 매매 및 전세 매물이 묶였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해당 단지는 지난달 29일 전용 84㎡의 입주권이 18억원(29층)에 매매된 이후 현재까지 거래 신고가 없다.
분양권 거래는 둔촌주공뿐만 아니라 서울 전역에서 뜸해지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 들어 3월까지만 해도 서울 아파트 분양권 월별 거래량은 한 자릿수였으나, 1·3대책에 따라 4월부터 전매제한이 완화되면서 분양권 거래가 40건으로 크게 늘었다. 이후 서서히 줄기 시작해 10월(4건), 11월(5건), 12월(5건)엔 다시 급감했다.
특히 시장에서 우려하는 건 전세 공급 위축이다. 전세 수요 증가, 서울 입주 물량 감소 등으로 전세 공급 부족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실거주 의무까지 유지되면 '전세난'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우려다.
다만 실거주 의무가 유지된다고 해도 당장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란 분석이 나온다. 적용 대상은 4만7000여가구지만 그중 실거주가 불가능한 가구는 일부일 것이라는 예측에 기반한 것이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은 "실거주 의무는 2021년 2월19일부터 시작됐는데 당시 규제 강화의 연장선상이었기 때문에 시장에서 받아들였었다"며 "올해 1·3대책을 믿고 분양받은 분들이 문제인데 그 규모가 시장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둔촌주공의 경우도 단지 규모가 워낙 큰 데다 일반분양 물건만큼 조합원 물건도 많기 때문에 전세로 풀리는 매물이 꽤 있을 것"이라며 "아울러 2025년 입주 때는 강남 입주 단지가 꽤 나와서 전세난이 있을 것 같지 않다"고 전망했다.
문제는 불안 심리를 자극한다는 것이다. 실거주 의무 폐지 기대감만 올려놓고 번번이 불발되자 그에 따른 불안 심리가 커지면서 '전세대란' 등 극단적인 우려가 나오고 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입주 물량도 줄고 전셋값이 오르는데 공급을 더 줄이는 역할을 할 수 있다"며 "하지만 4만7000여가구 중 일부만 실거주가 불가능한 거고 그에 따른 영향도 한꺼번에 나타나는 게 아닌데 불안 심리를 자극하면서 시장 혼란이 커지는 듯하다"고 말했다.
국토위는 소위를 한 차례 더 열어 실거주 의무 폐지를 심사하는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임시 국회에서 법안 통과가 안 되면 논의는 내년 4월 총선 이후로 밀린다.
채신화 (csh@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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