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간첩 있어?" 무관심에 특진도 없이 찬밥…안보경찰 누가 하나요

이강준 기자, 정세진 기자, 박상혁 기자 2023. 12. 2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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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간첩신고는 112(上)
[편집자주] 내년부터 간첩 수사는 국가정보원이 아닌 경찰이 전담한다. 대공수사권을 이관하는 법이 통과되고 3년의 유예기간이 있었지만 준비는 여전히 미진해 자칫 안보 공백이 이뤄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방첩에 사용되는 안보예산 조정권한이 국정원에 있어 기관간 협조가 필수적인데 수사에 있어 기관간 권한의 경계는 아직 명확하지 않은 상태다. 아울러 '안보경찰'은 경찰 내 대표적인 비인기 보직이어서 우수 수사 인력 확보도 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진도 안 되고, 노는 거 아니야? 안 해요"…'안보경찰' 왜 찬밥 됐나
(제주=뉴스1) 오현지 기자 = 국가정보원과 경찰 관계자들이 14일 오전 제주 연동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제주지부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압수수색 후 이동하고 있다. 2023.6.14/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내년부터 간첩신고는 112. 국가정보원(국정원)은 해외 대공 정보 수집에 집중하고 대공수사는 경찰이 전담한다. 2020년12월 대공수사권 이관을 담은 국정원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3년의 준비기간이 있었지만 경찰은 우수 수사인력 확보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건마다 수사기간이 최소 5년은 넘어 송치 등 가시적 성과를 내는데 시간이 오래걸리는 특성을 경찰 내부에서 고려해주지 않아 대공수사를 전담하는 '안보경찰'이 찬밥신세이기 때문이다.

20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 수시특진 대상자에 안보수사국 직원은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상 국수본은 매달 4~5명씩 경감 특진자를 선정한다. 경감과 바로 아래 직급인 경위는 국수본 내에서 가장 많은 실무를 담당한다.

경찰 근무의 꽃은 특진이다. 호봉·연차를 뛰어넘는 특진을 받기 위해 많은 경찰이 수사에 성과를 내려고 뛰어든다. 경찰 내부적으로는 특진 제도가 책임감있는 경찰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보상이다.

그러나 이 특진은 대공수사를 담당하는 경찰청 안보수사국, 시도청 안보수사 경찰에게는 먼 얘기다. 보통 사건을 종결한 후 검찰에 넘겨야 성과를 평가할 수 있는데 대공사건은 타 사건들과 달리 적어도 5년 이상 수사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경찰 평균 사건 처리 기간이 60일 내외인 걸 고려하면 30배 이상 긴 시간이 필요한 셈이다.

경찰 단독으로 피의자들을 검거한 2013년 '6·15소풍 사건', 2015년 '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 코리아연대(코리아연대) 사건' 등도 10년 이상 내사·수사기간이 필요했다. 경찰은 소풍 사건에 약 9년, 코리아연대 사건 해결에 약 11년이 걸렸다.

대공수사 사건 수사기간이 유독 긴 이유는 반국가·이적단체 조직원을 피의자로 전환시키기 위해서 증거를 수집하기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한 단체가 이적단체가 되려면 △단체성 △이적목적성 △위험성을 충족시켜야 한다. 이 세가지를 충족하기 위해 국가반란목적으로 반국가단체를 찬양·고무했다거나 국내에서 선전·선동 활동을 했다는 걸 입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내부문건, 강령, 규약, 결정적 증언 등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적단체들은 이 문서들을 절대 대외적으로 공표하지 않는다. 경찰은 내사·수사 시작 단계에서부터 집회현장 채증, 단체내 협조자 섭외 등부터 시작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검찰에 피의자를 넘기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다보니 안보경찰은 특진 혜택을 잘 누리지 못하는 건 물론 같은 조직 내에서 '노는 경찰'로 낙인찍히기도 한다.

(서울=뉴스1) 송원영 기자 = 윤희근 경찰청장이 16일 오전 서울 중부경찰서에서 열린 유공 특진 임용식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연관 없음.


= 이석기 옛 통합진보당 전 의원이 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사기 등 항소심 1회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17.11.27/뉴스1


안보경찰 기피 현상은 지휘부부터 일선 수사관까지 만연하다. 경찰청 안보수사국장은 그간 퇴임전 마지막으로 거쳐가는 한직으로 평가받았고 이곳에서 국장급인 치안감에서 치안정감으로 승진된 사례는 전무했다.

안보수사 실무 경험을 쌓아도 타 기능에 비해 승진이 늦어 지휘부로 발탁되기도 어렵다. 신임 수사관들은 사회적으로 주목을 잘 받고 특진도 많은 시도청 금융범죄수사대, 반부패·공공범죄수사 등을 희망한다. 경찰은 대공수사권 이관을 앞두고 대규모로 인력을 늘렸지만 이들이 사건에 매진할만한 동기가 부족하다는 얘기다.

경찰청 안보수사국은 이 같은 경찰 내외부의 지적을 받아들여 특진 관련 평가 기준을 손보는 중이다. 단순히 사건 검찰 송치만 성과로 볼 것이 아니라 증거 수집 위한 채증 노력 등 입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직원도 특진 대상자가 될 수 있도록 국수본에 협의하겠다는 것이다.

경찰청 안보수사국 관계자는 "수시특진자 선정 기준을 안보수사의 특수성에 맞게 개정하고 이에 걸맞게 내부 직원 교육 등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I am 신뢰" 밈까지 나온 전청조 사건…나라 망칠 간첩엔 '무관심'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사진제공=경찰청

"연예인 마약 스캔들, 전청조 사건 보다 더 위험하고 중요하면서 어려운 게 대공수사입니다. 그런데 국민들은 관심이 별로 없죠."

경찰청 안보수사국의 한 대공수사 전문 수사관이 털어놓은 말이다. 그는 "대공수사의 중요성에도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건 물론 간첩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오해도 여전하다"고 했다.

대공사건은 일반 형사사건에 비해 우리 사회에 끼치는 위험도가 훨씬 높지만 대중의 관심에서 멀다. 반국가·이적단체의 최종 목표는 적화통일, 국가 전복인 만큼 방첩에 실패할 경우 한 지역사회가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라고 경찰은 지적한다.

= 코리아연대 압수수색에 반대하는 공안탄압저지시민사회대책위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코리아연대에 대한 공안 탄압을 중단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은 "코리아연대가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을 한다는 이유로 공안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며 "코리아연대에 대한 공안 탄압을 중단하고 즉각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2015.7.15/뉴스1

일각에서 경찰로 대공수사권이 넘어갈 경우 수사력이 약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지만 이미 경찰 단독으로 사건을 수사해 종북단체 구성원을 잡아들인 사례도 많다.

2013년 '6·15소풍 적발 사건', 2015년 '자주통일과민주주의를위한 코리아연대(코리아연대) 조직원 검거' 등이다. 두 사건 모두 대법원에서 '이적단체' 판결을 받았다. 최근에도 빈번하게 일어나는 북한발 사이버공격을 적발한 사례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욱 늘어난다.

경찰은 2015년 8월 코리아연대 공동대표를 지낸 이모씨 등 3명을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구속해 검찰해 넘겼다. 코리아연대는 북한의 대남혁명론을 추종했고 북한식 사회주의 실현을 최종 목표로 활동했던 이적단체다.

이 조직은 유럽문화 탐방 여행사 등을 운영하며 수억원대의 자금을 마련했다. 조직원들은 현지 여행사 직원·가이드 등 평범한 직업으로 위장해 활동했고 이들이 벌어들인 자금은 유럽에서 열린 종북행사, 국내 북한 찬양·한미연합군사훈련 반대 등 반정부 투쟁 이적활동에 쓰였다. 2013년엔 독일에서 북한 통일전선부 소속 공작원과 접촉·회합을 하기도 했다.

코리아연대가 운영하던 언론매체 21세기민족일보 홈페이지/사진제공=홈페이지 캡처

또 이곳 공동대표 황모씨는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하자 밀입북해 조문하고, 평양에서 열린 김정일 추도대회 등에 직접 참석하기도 했다. 당시 황씨는 조의록에 "민족의 화해와 단합,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헌신하신 김정일 국방위원장님의 명복을 삼가 비옵니다"고 적었다.

이들은 국내 각종 언론매체를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고 주한미국대사관 진입을 시도하는 등 한국에서도 당당히 활동했다. 많은 경찰들이 "간첩은 절대 사라지지 않았고 여전히 왕성히 활동 중"이라고 단언하는 배경이다.

전문가들은 정치적 입장에 따라 태도가 바뀌었던 국정원 시기와 달리 앞으로 '정치중립적'인 대공수사를 노력이 필요하다고 경찰에 주문한다. 김상원 동의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정치적 입장에 영향을 많이 받았던 국정원 특징 때문에 경찰에 대공수사권이 넘어간 측면도 있다"며 "(이런 배경을 아는) 경찰이 중립적인 자세로 대공수사를 할 것이란 기대도 할만하다"고 말했다.

이강준 기자 Gjlee1013@mt.co.kr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박상혁 기자 rafand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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