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포르쉐 뽐냈는데 이런 X망신이”…차라리 車 버려, 후륜구동 굴욕 [세상만車]
눈길 약한 후륜구동, 더 조심해야
차를 알고 나를 알면 ‘가화만사성’
화두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내 탓이오”입니다. 네 탓이 아닙니다.
‘내 탓이오’는 천주교 주요 기도문에 나오는 ‘고백의 기도’ 중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생각과 말과 행위로 많은 죄를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했다”에서 기원했다고 합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지난 1989년 자신의 차량에 ‘내 탓이오’ 스티커를 붙이고 캠페인에 앞장섰습니다.
영화 ‘서울의 봄’으로 잘 알려진 전두환 정권이 물러나고 제6공화국 출범 이후 권력다툼에 혈안이 돼 서로 ‘네 탓’만 하는 정치권, 지역 갈등 등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시 개인용 자가용이 급속하게 보급되던 시대적 상황이 맞물리면서 스티커 40만장은 순식간에 동이 날 정도로 호응을 얻었습니다.
사실 내 탓이 아니라 남 탓이라고 여기는 것은 정치(또는 정치인) 전유물이 아닙니다.
2년 전 미국 뉴욕타임즈가 한국의 고유명사로 소개해 나라망신이 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멘스, 남이 하면 불륜)도 정치를 넘어 사회 곳곳에서 내 탓이 아닌 남 탓을 외쳤기 때문이죠.
학교폭력 문제에서 종종 들을 수 있는 “우리 아이는 착한데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한국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어쩌면 나약한 인간본성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가장 유명한 ‘리어왕’에도 나오는 유명한 대사입니다.
“사람들은 일이 잘못되면 해와 달과 별을 탓 한다”
겨울철 폭설이 내릴 때도 ‘네 탓’이 도로 곳곳에서 경적 소리보다 더 크게 울려 퍼집니다.
몰매를 맞는 주체는 후륜구동 차량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후륜구동 ‘탓’이 아닙니다.
올 겨울들어 퇴근길 대란을 일으키는 폭설이 교통지옥 서울에서는 아직 내리지 않아 새까맣게 까먹은 후륜구동 운전자들이 많지만 매년 한두번은 꼭 몰매를 맞습니다.
2021년 1월 6일 저녁 서울과 경기 일대에 기습적으로 내린 폭설에 교통 대란이 발생했습니다. 시내 곳곳에서 눈길에 미끄러진 차량들이 접촉사고를 일으켰죠.
눈 쌓인 언덕을 오르지 못하거나 제어를 못한 차량들로 교통 정체가 벌어졌습니다. 비탈길이 많은 서울 강남지역 도로가 마비 상태에 이르기도 했죠.
당시 폭설에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인 차량 상당수는 후륜구동을 채택했습니다. 서울 강남지역 도로가 폭설에 약한 까닭은 후륜구동 고급 세단이나 스포츠카 때문이라는 그럴듯한 주장도 나왔습니다.
운전자가 눈길을 감당하지 못해 평소에는 흠집이라도 날까 애지중지하던 억대 스포츠카를 도로에 버려뒀다는 목격담도 쏟아졌죠.
장점이 있으면 약점도 있는 법. 눈길에는 취약합니다. 조금만 가파른 언덕을 만나도 눈길에 미끄러집니다.
코너를 돌 때는 더 위험합니다. 앞바퀴는 움직이지만 뒷바퀴는 앞으로 진행해 차체를 운전자 의지대로 다루기 어렵습니다.
미끄러운 곳에서는 손수레를 앞에서 끌 때보다는 뒤에서 밀 때 제어하기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고 여기시면 됩니다.
평소 폼나는 차량 탄타도 뽐내던 일부 차주에 대한 미움 때문일까요. 후륜구동 차량은 민폐로 여겨지고 비웃음을 샀습니다.
후륜구동 차량에는 ‘제설용 삽’을 기본 옵션(사양)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죠.
벤츠, BMW와 함께 프리미엄 빅3 브랜드였지만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아우디가 ‘복수의 기회’를 잡은 것도 ‘눈길에서 눈길을 끈’ 게 한몫했습니다.
아우디 차량은 후륜은 물론 전륜을 채택한 경쟁차종들보다 눈길에 강했습니다.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 눈길에서 덜 미끄러지는 4륜구동 시스템 ‘콰트로’ 덕분이죠..
이후 후륜구동을 주력으로 내세웠던 수입차 브랜드들도 4륜구동을 잇달아 선보였습니다.
폭설이 자주 내리고 한파도 잦으며 벤츠와 BMW 차량이 많이 판매되는 유럽에서 후륜구동 때문에 교통지옥으로 변했다는 소식은 그다지 들리지 않습니다.
제설 작업이 비교적 원활히 이뤄지기 때문이죠. 운전자들도 겨울이 오면 겨울용 타이어(스노타이어)나 스노체인을 장착하는 데 익숙합니다.
구동방식에 맞게 운전하는 방법도 압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 백번 이긴다”는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딱 맞습니다.
차를 운전하지만 차 특성은 모르는 운전자의 방심까지 결합돼 후륜구동 차량은 ‘대역죄인’ 누명을 쓰게 됐습니다.
차는 후륜이든 전륜이든 4륜이든 구동방식에 상관없이 관리를 소홀히 하는 운전자에게 고장이나 사고로 보복합니다.
후륜구동 운전자는 차량 특성상 겨울에 보복당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을 뿐이죠.
후륜구동 차량도 겨울용 타이어나 스노체인만 있으면 눈길에서 눈길을 끌 수 있습니다.
스노 타이어로도 알려진 겨울용 타이어는 사계절용 타이어보다 천연고무와 실리카 사용 비율이 높습니다.
타이어가 더 부드럽고 말랑말랑합니다. 이유가 있죠. 고무가 부드러울수록 타이어가 노면을 움켜잡는 효과가 커집니다.
빙판길 테스트(시속 20㎞에서 제동)에서도 겨울용 타이어는 사계절 타이어보다 제동거리가 14% 짧았습니다.
브리지스톤코리아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빙판길 제동거리는 겨울용 타이어가 사계절 타이어보다 30~40% 짧았습니다.
겨울용 타이어는 눈 올 때만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아닙니다. 눈이 있건 없건 영하의 날씨로 접지력이 떨어질 때도 사계절용 타이어보다 안전합니다.
스노체인도 비상용으로 구비해두는 게 낫습니다. 스노체인은 평소엔 트렁크만 차지하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지만 갑작스럽게 눈이 내릴 땐 보물단지 대접을 받습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보물단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주 쓰는 용품이 아니기에 막상 사놓고도 사용법을 몰라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될 수도 있죠.
제품별로 장착법도 다릅니다. 미리 사용법을 익혀둬야 제때 제대로 쓸 수 있다는 뜻이죠.
스노체인 역할을 하는 스프레이 체인도 있습니다. 눈길에서 타이어가 공회전할 때 임시방편으로 사용하면 효과적입니다. 1만원 안팎이면 살 수 있죠.
현대차·기아는 관련 특허를 한국과 미국에 각각 출원했으며, 기술 개발 고도화 및 내구성·성능 테스트를 거쳐 양산 여부를 검토할 계획입니다.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차가 알아서 스노체인을 장착·해제해줍니다. 물론 이 기술이 일상화되려면 몇 번의 힘든 겨울을 더 보내야 할 겁니다.
그때까지는 겨울용 타이어와 스노체인을 사용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겠죠.
후륜구동은 물론 전륜·4륜구동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눈길에서는 약합니다. ‘네 탓’이라고 비웃기 보다는 ‘내 탓’으로 여기고 조심 또 조심해야 합니다.
내 탓은 자기비하가 아니라 자기반성으로, 자기반성은 자기성찰로 이어집니다.
불교 화엄경에 나오는 “모든 것은 내 마음이 만들었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업보(業報), 테스형(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도 모두 같은 맥락일 겁니다.
남들 탓하기 전에 운전할 때마다 안전운전과 방어운전으로 차를 알고 자신도 아는 ‘지차지기’(知車知己) 하면 원치 않는 사고로 패가망신, 폐차망신은 당하지 않을 겁니다.
차도 지키고 돈도 지키고 생명까지 지키면 그게 바로 새해 ‘소원성취’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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