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든 데스’ 위기를 돌파한 CEO들…2024년 더 높이 비상한다 [2023 올해의 CEO]
[2023 올해의 CEO]
고금리·고물가·저성장의 복합위기에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덮친 2023년이었다. 경제 버팀목이었던 반도체, 석유화학 등 수출 주력품목 부진으로 한국 경제는 도약의 시험대에 올랐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이어 유럽에서도 무역 장벽이 확산하며 잘나가던 2차전지와 자동차산업도 도전에 직면했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다. 수출, 물가, 소비, 생산 등 주요 경제지표들이 모두 극심한 부진을 겪었다. 경영환경은 나빠지고 실적이 악화했지만, 최고경영자(CEO)들은 솟아날 구멍을 찾았다. 한경비즈니스가 선정한 25인의 CEO는 ‘혁신하지 않으면 향후 10년 내 기업 생존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과감하게 대응 전략을 실행해 생존과 성장의 기회를 확보했다. [편집자주]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은 1%대에 그칠 것이 확실시된다. 2024년 전망도 좋지 않다. 국내외 주요 기관은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 초반대로 보고 있다. 2021~2022년 한국 경제성장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낮았다. 이대로라면 3년 연속 OECD 평균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저성장을 넘어 무(無)성장 경고음도 계속 울리고 있다. 한국은행은 ‘한국 경제 80년(1970~2050) 및 미래 성장전략’ 보고서에서 생산성 하락과 인구 감소가 겹치면서 10년 뒤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0%대로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 경제가 인구 감소 환경 속에서 낮은 생산성을 극복하지 못하면 2040년대부터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설 수 있다는 분석이다.
불확실성·변동성·복잡성이 뒤엉킨 복합위기 속에서도 전략적 민첩성을 발휘해 당면한 도전과제를 해결하고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한 최고경영자(CEO)들이 있었다.
갑진년 ‘청룡의 해’를 앞두고 한경비즈니스가 올해를 마무리하며 ‘2023년의 CEO’ 25명을 선정했다. 이들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리더십으로 미래 비즈니스를 발굴해 새로운 성장을 이끌었다. 미래 먹거리 발굴, 신사업 추진 성과, 경영 실적,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성과, 위기 리더십 역량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했다.
글로벌 영토 확장
정의선·김동관·박현주
정의선 회장이 이끄는 현대차그룹은 올해 2년 연속으로 글로벌 자동차 판매 ‘톱3’가 유력하다. 현대차·기아는 글로벌 경기침체에도 연간 수출액이 사상 최대인 70조원을 넘어섰다. 수출 주력 품목인 반도체가 부진하고 지난 5월까지 무역수지가 15개월 연속 적자를 내는 상황에서 현대차그룹은 내연기관차는 물론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등 친환경차 시장에서의 꾸준한 성장세를 바탕으로 수출 최전선을 지켰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올해 통합 방산기업으로 발돋움하며 ‘글로벌 톱10 방산기업’ 목표에 한걸음 더 다가섰다. 지난 5월 출범한 한화오션의 경영정상화와 글로벌 시장 확장을 진두지휘하며 12개 분기 만에 적자 고리를 끊었다. 김 부회장이 전략부문 대표를 맡고 있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최근 폴란드 K9 자주포 2차 실행 계약, 호주 ‘랜드400’ 구매계약 등 해외 수주에 잇달아 성공하며 연말까지 수주잔고가 26조원 규모에 이르고 있다.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은 2018년 4월 글로벌투자전략고문(GISO)으로 취임한 이후 해외사업에 집중하며 4년여 만에 금융 수출로 1조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최근 인도 9위 증권사 쉐어칸증권을 약 4800억원에 인수하며 ‘포스트 차이나’로 투자금이 몰리는 인도시장 공략에 나섰다.
혹한기에 더욱 빛난 리더십
조주완·노태문·김정수·강한승
LG전자는 올해 2개 분기 연속 영업이익에서 삼성전자를 추월했다. 3분기 연결 영업이익이 996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3.5% 증가했다. 특히 미래 먹거리인 전장(자동차 전기·전자 장비) 사업이 3분기 매출 2조5035억원, 영업이익 1349억원을 기록해 호실적을 견인했다. 조주완 LG전자 사장이 주도하는 워룸(War Room) 전략이 글로벌 경기침체 속에서 각 사업 부문별 실적을 견인했다는 평가다.
삼성 노태문 사장의 리더십도 어느 때보다 빛났다. 노 사장이 이끄는 삼성전자 MX사업부는 올해 반도체 업황 부진에도 전사 실적 방어에 구원투수 역할을 했다. 올해 3분기 반도체(DS) 부문은 3조원대 중반 영업손실을 기록했지만, MX사업부는 3조3000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3분기까지 누적 영업이익은 10조2800억원에 달한다. 지난 7월 출시된 플래그십 신모델 Z플립5와 Z폴드5가 인기를 끌며 3분기 실적을 끌어올렸다.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은 매출 1조원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다. 김 부회장은 불닭볶음면을 개발해 삼양식품을 연 매출 1조원 규모의 수출기업으로 키운 주인공이다. 해외시장에서 불닭 브랜드의 인기에 힘입어 전체 매출에서 해외 매출 비중이 70%에 이른다. 김 부회장은 수출 제품 생산기지인 밀양 신공장을 앞세워 글로벌 라면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쿠팡은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3분기 처음으로 역대 최대 규모인 매출 8조원을 돌파했다. 영업이익도 5개 분기 연속 흑자를 이어갔다. 쿠팡의 활성 고객 수는 2000만명을 넘어섰고 올해 첫 연 단위 흑자도 확실시된다.
지난 3년간 쿠팡의 고성장을 이끌어온 강한승 사장은 경쟁사 대표가 실적 부진으로 교체되는 상황에서도 탁월한 경영 성과를 인정받아 지난 11월 연임에 성공했다. 2021년 뉴욕증시 상장 이후 유치한 대규모 자금으로 국내 물류망 투자 확대와 ‘쿠세권(쿠팡 로켓배송 가능 지역)’ 확장이 그의 대표 업적으로 꼽힌다.
미래 준비 새판 짜기
최태원·구광모·정기선
최태원 SK 회장은 ‘서든데스’(돌연사) 우려를 7년 만에 다시 꺼내 들었다. 글로벌 불확실성 속에 빠르게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경고다. 최 회장은 연말 정기 인사에서 주요 그룹 중 가장 큰 폭의 인사를 단행하며 위기 돌파를 위한 새 진용을 짰다. 부회장단 2선 퇴진과 세대교체, 사촌동생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을 그룹 2인자 자리인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에 선임했다.
구광모 LG그룹 회장도 복합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연말 정기 인사에서 과감한 용인술을 펼쳤다. 고(故) 구본무 선대회장 시절 임명된 부회장단이 물러난 자리에 50대 리더들을 전진배치해 젊은 피로 진용을 구성했다.
구 회장은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 중인 ‘A·B·C(AI·바이오·클린테크)’ 분야를 이끌어갈 인재 발굴과 육성에 각별히 공을 들였다. 2018년 ‘외부영입 1호’인 3M 출신의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을 시작으로 지난 5년간 외부에서 영입한 임원급 인재만 102명에 달하며, 새로운 리더십을 펼칠 수 있는 여성 임원도 두 배 이상 늘렸다.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은 올해 그룹의 새로운 50년을 향한 성장 발판을 마련하는 데 앞장섰다. 조선, 정유, 건설기계 등 주요 사업 경쟁력 확보와 수소, 인공지능(AI), 로봇, 자율운항, 전동화 기술 등 미래 성장동력 발굴에도 적극 나섰다. 올해는 해외 사업을 진두지휘하며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사업협력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보여줬다.
판을 엎은 역전의 승부사
여승주·함영주
여승주 한화생명 부회장은 뛰어난 위기 대응능력을 인정받아 지난 9월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글로벌 전략이 빛을 발했다. 한화생명 베트남법인은 진출 15년 만에 누적 흑자를 달성했으며, 인도네시아, 중국 등에서도 안정적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2022년 법인보험대리점(GA) 피플라이프 인수를 통해 영업력을 대폭 끌어올리며 올해 상반기 신계약 보험계약마진(CSM)에서 과거 삼성생명과 한화생명, 교보생명 등 ‘3대 생보사’가 중심이었던 업계의 판도를 삼성과 한화의 ‘양강 경쟁’ 구도로 재편했다.
하나금융그룹은 함영주 회장의 ‘영업 제일주의’ 리더십에 힘입어 올해 출범 이후 최대 실적을 달성했다. 조직 재정비를 통해 영업력을 끌어올린 결과 핵심 계열사인 하나은행은 3분기 기준 순이익 2조766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3.3% 성장하며 신한은행을 제치고 2위에 올랐다. KB국민은행(2조9960억원) 다음 자리를 차지하며 리딩뱅크 타이틀을 놓고 경쟁하게 됐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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