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하는 의사들] 침 속 스트레스 호르몬은 알고 있었네...누가 얼마나 우울한지

이정아 기자 2023. 12. 25.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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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정호 마인즈에이아이 대표
침으로 우울증 정도를 분류하는 ‘마인즈내비’ 개발
어릴 적 트라우마와 회복 탄력성까지 고려한 검사 척도 개발
회복 탄력성 높이는 기술 교육하는 VR ‘치유 포레스트’ 개발
내년 확증 임상 거쳐 의료기기 승인 계획
석정호 마인즈에이아이 대표(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강남세브란스병원

지난 2주간 지속적으로 우울한 기분에 빠져 있다. 대부분의 일상생활에서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고 단기간에 살이 빠지거나 급격히 쪘다. 잠을 잘 못자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잠이 많아졌다. 무기력이 일상 생활에 영향을 미쳐서 일상적인 활동에 어려움을 겪는다.

미국정신의학협회(APA)가 발행한 정신질환 진단과 통계 메뉴얼(DSM-5)에 나온 주요우을장애, 즉 우울증의 증상들이다. 환자가 검사지에 나타난 증상을 보고 자기 증상을 표시하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이 기준에 따라 환자가 우울증인지 아닌지, 만에 하나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 진단을 내리고 약물을 처방한다.

내과에서는 혈당을 재 당뇨병을, 또는 혈압을 재 고혈압을 진단한다. 정형외과에서는 엑스선 촬영을 해 뼈가 골절됐는지 진단한다. 반면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환자에게 증상을 듣고, 환자가 문항이 500개가 넘는 검사지를 표시한 결과를 종합해 우울증이나 양극성 정동장애(조울증), 조현병 등을 진단한다.

지난 19일 서울 강남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석정호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내과, 외과 등 다른 진료과와 달리 기존에 바이오마커를 기반으로 진단하지 않았다”며 “어떤 바이오마커가 우울증, 조울증을 나타내는 데 유효한지 알면 정신건강의학과에서도 내과에서처럼 간단히 진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석 교수는 2019년 마인즈에이아이를 창업하고 바이오마커를 기반으로 우울증을 진단하고 고위험군을 분류하는 키트 ‘마인즈내비’를 개발했다. 현재 탐색임상을 끝내고 내년 확증임상을 시작할 계획이다. 다음은 석정호 교수와의 일문일답.

- 현재 정신건강의학과에서는 우울증을 어떻게 검사하고 진단하는가. 검사지와 환자의 증상을 듣는 것만으로 진단을 내린 결과가 신뢰할 만한가.

“미국정신의학협회에서 만든 DSM-5에 나와 있는 기준을 토대로 환자의 증상을 보고 우울증 진단을 내린다. 가장 대표적인 증상은 2주 이상 이어진 우울감이고, 호르몬 이상이나 뇌를 다쳤거나 내과적 질환 없이 우울 증상이 나타날 때, 사회직업적인 심각한 손상이 발생될 때 등이다. 오랫동안 수많은 전문가들이 개발해 완성한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신뢰할 만 하다.

하지만 내과나 외과에서와 달리 바이오마커를 이용한 신체적인 평가를 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우울증을 대표하는 정확한 바이오마커를 아직까지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울증 환자 중 20~30%는 호르몬 검사에서 정상 수치가 나온다. 중증 우울증을 겪는 환자 중에서도 50%만이 만성 스트레스로 인해 부신피질 기능이 떨어져 있다.

모든 당뇨병 환자들이 혈당이 높은 것처럼 만약 모든 우울증 환자에게 호르몬 문제가 있다면 당연히 바이오마커를 이용한 진단검사가 일찌감치 상용화됐을 것이다.”

- 먼저 기존 임상에서 사용하는 우울증 검사지와는 다른, 독창적인 검사방법 ‘프루브 평가척도’를 개발했다고 들었다. 기존 검사지와 어떤 항목이 다른가.

“기존 검사지는 우울증상과 자살사고 그 자체에 초점을 주로 맞춰 우울증을 진단하도록 만들어졌다. 우울증 뿐만 아니라 중독, 성격장애 등 모든 정신질환을 아우르는 평가도구를 개발하려다보니 문항 개수도 588개나 된다. 반면 ‘프루브 평가척도’는 어린시절부터 그 사람에게 잠재돼 있는 취약성과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까지도 고려해 만들어졌다. 문항도 총 150개로 훨씬 적다. 이에 대한 연구 성과가 2021년 ‘대한신경정신의학회지’에 실렸다.

인터넷 등에서 우울증 자가 진단을 해보면 대개 ‘몇 점 이상은 우울증’으로 결과를 알려준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우울증의 단면을 측정하고 결과가 나오는 것이라 부족하다.

임상에서 사용하려면 우울증에 대한 증상과 자살 위험성도 평가하지만, 잠재된 취약 요인에 대해서도 고려해야 한다. 어린 시절 신체적인 학대나 정서적인 비난, 가정 폭력, 집단 괴롭힘 등 성장기 트라우마 등이다. 또한 부모와 애착이 불안정하게 형성된 사람이나 자기 마음을 건강하게 돌아보지 못하는 사람도 우울증이 잘 낫지 않는다. 이런 스트레스를 오래 겪은 사람은 우울증이 와도 심하게 오고 약물 치료를 해도 잘 반응하지 않고 자살 위험성도 크다.

반면 어떤 사람은 우울증이 잘 생기지 않고, 우울증이 생기더라도 잘 극복할 수 있다. 그것은 우울증에 대한 보호인자, 즉 ‘회복 탄력성’을 가졌기 때문이다. 회복 탄력성이 강한 사람은 특정한 이벤트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도 비교적 회복 경과가 빠르다.

우리 연구진은 그래서 우울증을 판단할 때 우울증상과 자살 위험성 자체뿐 아니라 이런 트라우마나 회복 탄력성도 함께 보기 위해 새로운 진단검사지를 만들었다. ‘우울증’과 ‘자살 위험성’, ‘트라우마’, ‘애착형성’, ‘마음 헤아리기’, ‘회복 탄력성’ 등 6가지 사항을 설문사항으로 만들어서 논문을 냈다.

마인즈에이아이가 개발한 마인즈내비./마인즈에이아이

- 침을 뱉어 우울증을 진단한다고 고위험군까지 분류한다니 신기하다. ‘마인즈내비’에 대해 설명해 달라.

“지금도 임상에서는 우울증 입원 환자에 한해 혈액을 채취해 기능 이상을 알아본다. 확실한 중증 환자에겐 가능하지겠만 우울증이 의심가는 모든 환자에게 입원해 채혈하도록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까지 임상에서 코르티솔을 우울증 진단 바이오마커로 사용하지 못했던 이유다.

우리 연구진은 2007년 스트레스호르몬 ‘코르티솔’과 부신에서 생산되는 스테로이드호르몬 ‘DHEA’가 우울증 바이오마커로 사용될 수 있다는 단서를 찾아냈다. 그것을 이용해 만든 진단키트가 바로 마인즈 내비다.

마인즈내비는 우울증 환자 또는 우울감을 경험하는 일반 사람들이 병원에 오지 않고도 집에서 본인이 우울증인지, 그렇다면 우울증이 얼마나 심각한지 검사해볼 수 있는 진단보조솔루션이다. 현재 확증임상을 하고 있다.

정신이 건강한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아서 코르티솔이 증가해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평상시 수치로 돌아온다. 하지만 만성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은 부신피질의 기능에 영향을 받아 오히려 코르티솔 수치가 낮게 나타난다.

마인즈내비 키트에는 총 4개의 타액수집 튜브가 들어 있다. 기상 직후, 기상 후 30분, 기상 후 60분, 자기 전 이렇게 총 4번 침을 뱉어 키트에 넣어 마인즈에이아이에 보낸다. 그리고 온라인 심리검사지를 작성하면 약 일주일 뒤 자신의 스트레스 지수와 우울증 여부, 심각도를 알 수 있다.

코르티솔 수치는 스트레스 단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코르티솔 농도가 정상 범위보다 높으면 ‘급성 스트레스’, 정상보다 낮으면 오히려 오랜 시간 스트레스를 받은 ‘만성 스트레스’로 판단한다.

우리는 결과를 단순히 숫자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신호등’을 이용해 보여준다. 스트레스에 대해 건강한 사람은 초록색, 주의가 필요한 사람은 노란색, 우울증(경계)은 주황색, 중증 우울증(심각)은 빨간색 등 4단계다. 주황색이 나온 사람은 세부사항을 보면서 약물치료를 할지 심리치료를 할지 결정한다. 빨간색이 나온사람은 약물치료를 반드시 해야 하고 심리사회적인 치료도 강도 높게 해야 한다.

우울증 환자 35명과 건강한 사람 12명, 총 47명을 대상으로 탐색임상을 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게 진단을 내리게 한 다음, 마인즈내비로 시험한 결과와 비교 분석했다. 그 결과 특이도 91.6%, 정확도 97%, 민감도 100%가 나왔다. 민감도가 높게 나와서 특히 좋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어떤 환자는 의사가 정상군으로 분류했지만 마인즈내비 결과 경계를 나타내는 주황색이 나타났다. 즉, 임상에서 의사가 마인즈내비를 활용한다면 혹시 이 환자에게서 놓친 게 있나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미 우울증 진단을 받고 약물치료 중인 환자라도 마인즈내비를 통해 얼마나 좋아졌는지 진단하고 앞으로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석정호 마인즈에이아이 대표(강남세브란스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마인즈내비와 치유 포레스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강남세브란스

-어릴 적 트라우마가 심하거나 회복 탄력성이 낮은 사람은 약물 치료가 잘 듣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런 환자들은 어떻게 치료하면 좋을까.

“우리는 마인즈내비 외에도 치료를 위한 솔루션인 ‘치유 포레스트’를 개발했다. 마인즈내비 결과 주황색이나 빨간색이 나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교육을 하는 디지털치료제다.

국내 정신건강의학과 임상에서 가장 부족한 게 심리치료다. 의사는 외래 환자가 너무 많아서 각각 5~10분 보는 게 다다. 환자 한 명씩 20분 이상 상담하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 병원에서는 외래 시간을 최소로 줄이고 약물치료 위주로 한다. 약물만 잘 써도 70~80% 환자들이 증상이 나아지기 때문이다.

치유 포레스트는 우울증 원인과 스트레스 해소 방법, 정신질환 약물에 대한 설명 등을 임상심리전문가가 가상현실(VR)에 아바타로 나와서 설명해주는 프로그램이다. 6주에 걸쳐 일주일에 30분씩 교육을 받는다. 이 안에는 마음챙김(명상)과 감정조절기술, 위험한 순간 견뎌내는 기술, 효과적인 의사소통 기술 등이 담겨 있다. 집에서 실천해보고 실생활에 잘 적용이 되는지 돕는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기술은 위험한 순간을 견뎌내는 기술이다. 자살 위기에 닥쳤을 때 스스로 힘든 상황임을 알아차리고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다. 예를 들면 자해하고 싶을 때 고무줄을 팔에 감고 튕겼다가 놓으면서 ‘건강에 해가 되지 않는 단순 고통’을 주게 한다거나, 피를 보고 싶다면 빨간 물감을 손목에 묻히게 한다거나. 비파괴적인 방법으로 자해, 자살 충동을 이기게 돕는 훈련이다. 이미 해외에서는 자살 고위험군 환자에게 많이 하고 있지만 한국에선 보급이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디지털치료제에 적용해 널리 보급하려는 것이다.

현재 치유 포레스트도 2022년부터 시작한 탐색임상을 끝냈다. 우울증 환자를 대상으로 치유 포레스트를 6주동안 매주 30분씩 하거나 약물치료를 하게 했다. 그 결과 치유 포레스트를 한 그룹과 약물 치료를 한 그룹 모두 3주, 6주째 우울증이 나아져 치료를 멈춘 4주후까지 유지가 됐다. 하지만 자살 충동성은 약물 치료 그룹에선 거의 변화가 없는 반면, 치유 포레스트를 한 그룹은 6주후부터 떨어져 치료 4주 후까지 이어졌다.

그 이유는 근력 운동을 하면 근육이 생기고 몸이 건강해지듯이, 심리치유 기술도 익혀 놓으면 일상에서 힘든 일이 생겨도 스스로 이겨낼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치유 포레스트 역시 마인즈내비와 함께 내년 확증 임상을 할 예정이다.

마인즈에이아이.

-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

과거 가까운 친구 등 소중한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헤어진 경험이 있다. 이 때문에 내가 더 많은 사람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도록 막아보자는 생각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됐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기술을 연구 개발해왔다. 이 기술들이 실제로 임상 현장에 적용돼 수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으면 좋겠다.

구체적인 꿈은 마인즈내비를 이용해 환자 데이터를 가능한 한 많이 모아, 그 빅데이터를 이용해 인공지능(AI)을 만들고 싶다. 루닛이 개발한 AI가 엑스선 촬영 이미지를 보고 폐암이나 결절을 찾아내는 것처럼, 마인즈내비 결과를 보고 이 환자가 우울증인지를 훨씬 더 정확하게 분석하기 위해서다.

이외에도 우울증 환자의 뇌 안에 생긴 염증을 이용한 바이오마커, 후성유전학적인 바이오마커 등을 찾고 싶다. 바이오마커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울증을 진단하고 고위험군을 분류하는 데 정확도가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조울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트라우마), 조현병에 대해서도 바이오마커를 찾아 진단 키트를 개발할 예정이다.

석정호 대표는 '마음 헤아리기'와 자살 위기에 닥쳤을 때 스스로 힘든 상황임을 알아차리고 기분 전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인 '위험한 순간을 견뎌내는 기술' 등을 통해 회복 탄력성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석 대표가 지은 저서 '내 마음과 화해하기, 마음 헤아리기'./이정아 기자

참고 자료

신경정신의학(2021) DOI: https://doi.org/10.4306/jknpa.2021.60.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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