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스타트업 CEO 된 서울대 교수들… “시장 통찰력 키우는 게 숙제”
’효소 권위자’ 김병기 EGC테라퓨틱스 대표
“교수들이 창업을 꽤 많이 하는데 실패 확률은 압도적으로 높다. 시장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기술만 좋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많이 느낀다.”
“우리가 이렇게 좋은 걸 만들었으니 써보라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을 찾아 시장이 원하는 상품을 만들려 한다.”
김병기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명예교수와 최인철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교수들은 평생 한 분야에 몸담으면서 ‘이런 게 있으면 좋겠다’고 느껴서 창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작 제품을 개발하면 시장이 없어 사업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학자로서의 전문성은 유지하되, 기업가로서 시장에 대한 통찰력을 키우는 것이 숙제”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2021년에 바이오 스타트업 ‘EGC테라퓨틱스’를, 최 교수는 작년에 정신건강 관리 스타트업 ‘굿라이프랩’을 창업했다. 김 교수는 올해 초기투자 30억원을 받았다. 최 교수는 김봉진 배달의민족 창업자,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 남경필 전 경기지사(J&KP 대표)로부터 엔젤 투자를 받았다. 두 교수를 지난 19일 서울 관악S밸리 신림벤처창업센터에서 만났다.
◇ 멘탈 치료 아닌 ‘관리’ 집중한 굿라이프랩
14년째 서울대 행복연구센터 센터장을 역임하고 있는 최인철 교수는 ‘행복 전문가’로 유명하다. 최 교수가 창업한 굿라이프랩은 행복 검사, 번아웃 검사로 일상과 일터에서의 행복도를 진단한다. 이를 바탕으로 종합 보고서와 해석을 제공한 뒤 맞춤형 설루션을 제공한다.
최 교수는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건강검진을 받고 영양제를 먹는 것처럼 정신건강도 일상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을 느끼고 굿라이프랩을 창업했다. 그는 “개인의 정신건강은 곧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이다. 공동체의 특성과도 관련이 있는 사회문화적 현상이기도 하다”며 “공동체의 행복도를 올리는 일은 정신질환자를 잘 치료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굿라이프랩의 행복 검사는 기존의 우울, 불안 검사와는 결이 다르다. 질환자가 아니라 일반인이 일상에서 얼마만큼 행복함을 느끼는지를 측정한다. 이들이 일상에서 덜 지치고 더 행복할 수 있도록 관리를 돕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이다. 검사는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들이 1110만건의 행복 데이터 분석 노하우를 바탕으로 직접 개발했다.
최 교수는 행복을 기업의 생산성과 연결 지었다. 그는 “직장인의 정신건강 문제는 개인적인 원인도 있지만 대부분 업무, 인간관계 등 직장 문제에서 기인한다”며 “이는 기업의 생산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개인 차원으로 접근해선 안 되고 인사관리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 기업 복지가 아니라 투자 관점”이라고 말했다.
굿라이프랩의 ‘배터리(Betterly)’ 서비스는 SK 계열사 6곳과 현대차 등 약 10개 기업이 도입해 조직원의 행복 관리를 지원하고 있다. 굿라이프랩은 B2B(기업 간 거래)를 넘어 추후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 서비스로도 확장할 예정이다.
◇ 식품 사업부터 세포 치료까지 아우르는 EGC테라퓨틱스
김병기 교수는 효소 연구의 권위자 중 한 명이다. 창업 계기가 된 기술은 ‘세포 코팅’ 기술이다. 김 교수는 효소를 이용해 세포를 코팅하는 연구를 진행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코팅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이 기술은 장기이식 시 면역 거부 반응을 줄여줄 수 있다. 장기를 이식하면 면역 체계가 이를 외부 이물질로 인식해 공격하는데, 이때 효소 코팅이 세포 공격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김 교수는 “보통은 면역 거부 반응을 줄이기 위해 평생 주사를 맞는다. 이 때문에 결국 신장이 망가지는 경우가 많아 이 부분에서 해결책이 되어 줄 수 있다”며 “특히 선천적으로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는 1형 당뇨는 돼지의 췌도(인슐린을 분배하는 췌장 조직)를 환자의 간에 주사하는 방법으로 치료하는데, 이런 이식 과정에서 면역 거부 반응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고 말했다. 회사에 따르면 글로벌 1형 당뇨 치료제 시장은 77조원 규모로, 인슐린 전달 장치 시장 규모만 약 20조원에 달한다.
EGC테라퓨틱스가 사업화에 성공한 연구물로는 비건 멜라닌인 ‘버섯 블랙’이 있다. EGC테라퓨틱스는 버섯으로 멜라닌을 만들어 오징어먹물을 대체했다. 김 교수는 “오징어먹물은 식품, 미용(염색) 분야에서 쓰이는데 대부분 유럽에서 수입한다. 그러나 해양오염 문제로 품귀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며 “버섯 블랙은 국내 식품기업에 납품을 시작했다. 글로벌 회사로 수출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치과, 정형용 합성골 이식재 제품도 준비 중이다. 합성골 이식재는 가루 형태로 뼈가 결손된 부위에 이식하면 뼈가 재생된다. EGC테라퓨틱스는 합성골 이식재의 대량 생산 기술을 확보했다. 내년부터 연구용 판매를 시작으로 사업화를 추진한다. 2028년까지 총 131억원의 매출이 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인허가와 임상시험은 숙제다. 김 교수는 “인허가는 죽음의 계곡으로 불린다. 이 때문에 자본력이 있는 글로벌 제약회사에 기술을 이전하는 것이 목표”라며 “내년 하반기에 시리즈A 투자를 받아 기술을 고도화하고 매출을 늘려 2027년에 기업공개(IPO)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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