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법이 아니다’ 존재증명에 지친 K-유학생들이 떠난다
한신대 유학생 강제출국 사건을 계기로 정부와 대학 당국의 외국인 유학생 정책이 도마에 올랐다. 이 사건은 한신대라는 특정 대학에 국한되는 사건이 아니라, 한국의 대학과 지역사회가 함께 직면한 한계와 위기의 지점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매우 징후적이다. 3회에 걸쳐 유학생 정책의 현재와 문제점, 대안을 점검해 본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무함마드 지야(25)는 내년 2월 인하대 국제통상학과를 졸업한다. 낯선 땅에서 우여곡절 끝에 졸업장을 받게 됐지만, 그는 최근 어느 때보다 불안하다. 한국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다. 유학 비자가 곧 구직 비자로 바뀌는데, 6개월마다 체류 기간을 연장해야 하는데다 매번 체류에 필요한 잔고 증명도 해야 한다. 무함마드는 “비자 생각만으로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무엇보다 무함마드를 괴롭히는 건 한국의 비자 심사 방식이다. 무함마드는 단지 더 좋은 교육과 더 큰 꿈을 위해 한국에 왔다. 5년 동안 성실히 공부해 학위까지 받았다. 하지만 비자 심사 때면 그는 끝없이 자신의 존재가 불법이 아님을, 나아가 앞으로도 불법적인 존재가 되지 않을 것임을 증명해야 한다. 무함마드는 “비자를 바꾸거나 연장할 때마다 우리 외국인 학생들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사람, 심지어는 살인자처럼 다뤄진다”고 했다.
무함마드는 지난달 한신대에서 벌어진 우즈베키스탄 유학생 강제 출국도 “이런 시선의 연장선에 있다”고 했다. 한신대는 법무부의 재정능력 입증 요구를 충족하지 못한 학생들이 학교를 이탈해 불법체류자가 될 가능성을 우려해 그들을 출국시켰다. 아직 체류 기간이 남은 학생들을 ‘예비 불법체류자’로 규정한 한신대의 행동은 끝없이 존재의 합법성을 의심받는 무함마드에겐 이미 익숙해진 폭력이다.
외국인을 감시와 처벌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정부 지침에서도 드러난다. 법무부는 ‘외국인 유학생 사증발급 및 체류관리 지침’에 심사 기준으로 학력, 재정, 국적을 명시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출신은 각종 서류 제출을 면제받지만, 국내 유학생의 90%에 이르는 아시아 출신은 대부분 더 엄격한 심사를 받는다. 불법체류자가 많은 우즈베키스탄과 베트남 등 특정 국가는 특히 더 강한 규제를 받는다. 무함마드는 “한국 정부가 이런 인종차별적 관점을 유지한다면 재능 있고 교육받은 외국인들은 한국을 떠날 것”이라고 했다.
유학생들은 이미 한국을 등지고 있다. 법무부 자료를 보면, 2022년 기준 국내 학위과정 유학생은 14만명으로 2010년(7만명)보다 2배가 늘었다.(한국교육개발원 2023년 기준 학위과정·어학·기타연수 포함 유학생 18만1842명) 그런데 이들의 국내 취업률은 16%에 불과하다. 옆 나라 일본(2021년, 37%)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구직 과정에서 비자 유지가 쉽지 않은데다, 유학생들은 대학 졸업 뒤 원칙적으로 사무·전문직에만 취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실제 유학생에 대한 수요가 높은 중소기업·생산직에는 취직이 어렵다. 결국 유학생들은 모국에 돌아가거나, 제3국으로 떠난다.
대학 졸업이 취업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유학생들은 한국에서의 미래를 그리지 못한다.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한국어학당에 다니는 몽골 출신 엥흐진(22)은 한 학기 정도 더 공부한 뒤 대학에 진학해 경영학을 배울 계획이다. 하지만 엥흐진도 대학 졸업 뒤에는 몽골로 돌아갈 생각이다. 엥흐진은 “외국인 여성으로서 한국에서 일할 곳을 찾기가 너무 어렵다. 몽골에 돌아가면 대기업에 취직할 기회도 있기 때문에, 아쉽지만 한국을 떠날 가능성이 현재로선 크다”고 했다.
폐쇄적인 사회 분위기도 문제다. 인도네시아 치과의사 마리아(25)는 한국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마리아는 자카르타에서 학회가 열리면 통역을 맡을 정도로 영어에 한국어까지 유창하다. 한국 문화에 푹 빠져 있는 마리아도 졸업 뒤 한국에 남을 생각은 없다. 그는 “차라리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인도 믿고 찾을 수 있는 치과를 운영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의 비싼 물가에 대한 걱정은 “매일 삼각김밥만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며 장난스럽게 넘겨도, “평생 이방인 취급을 받을 것 같다”는 불안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유학생들에 대한 제도와 문화의 장벽이 공고해진 사이 대학들은 붕괴하고 있다. 교육부와 통계청은 2024년 대학 진학 인구를 37만명으로 예상한다. 86만명이었던 2000년의 절반이 되지 않는다. 비수도권은 더 심각하다. 통계청은 2040년에는 비수도권 대학 신입생 정원의 40.4%(8만4296명)가 충원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대학 간 통폐합 등 물리적 구조조정도 해법으로 제시되지만, 사정이 간단치 않다. 대학이 없으면 젊은 인구가 유입되지 않는 지역사회의 절박함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학생이 없으면 지역 소멸과 직면할 지자체가 한두곳이 아니다.
정부도 이런 현실을 모르지 않는다. 지난 8월 교육부가 2027년까지 외국인 유학생을 30만명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한 것도 이런 상황을 의식해서다. 하지만 단순히 유학생 규모만 늘린다면 부작용만 커질 확률이 높다. 유학 희망지로서 한국에 대한 선호도가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에서 단순한 정원 확대는 비자 장사를 노리는 브로커들의 먹잇감이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1월 법무부가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유학 비자 신분으로 한국에 와서 미등록 체류자가 된 외국인 비율은 2018년 1.38%에서 2022년 7.13%로 5배 가까이 늘었다.
한국어학당도 이런 구조에서 자유롭지 않다. 어학연수-대학 진학-취업으로 이어지는 경로에서 가장 핵심적인 진학과 취업 사이 연결고리가 끊겨 있다 보니, 대학 진학의 예비 과정이 되어야 하는 어학당 또한 학생 모집이 어렵다. 유학생들 입장에선 한국에서 취업이 보장되는 것도 아닌데 어학 공부를 하러 굳이 비싼 돈을 들여 한국에 올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서울에 있는 대학은 한국 관광을 위해 오는 학생들의 수요라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비수도권 대학들은 어학당 학비 수입을 확보하기 위해 차후에 문제가 생길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유학생을 뽑을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사회의 근본적인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처벌·감시 중심의 제도를 취업과 정주를 돕는 쪽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민정책 전문가인 김도균 제주한라대 특임교수는 “한국 학생이든 외국 유학생이든 결국 대학을 졸업하는 가장 기본적인 목적은 취업인데, 이 부분에 대한 지원은 없으면서 규제만 하고 있다”며 “졸업에서 취업으로 가는 사다리가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면 유학생들이 불법으로 빠질 유인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대학이 겪는 어려움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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