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면 2~5년 내 더 큰 팬데믹 온다"…전문가들 예측 근거는?
주기 빨라지고 파장 커…새 백신·치료제 개발 속도가 관건
[편집자주] 2020년 1월. 중국에서 시작된 원인 모를 폐렴이 한국을 덮쳤다. 전세계가 공포에 떨었고 우려는 현실이 됐다. 코로나19로 밝혀진 이 병은 이후 약 4년간 전세계인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줬지만, 인류 지성은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말한다. 코로나19를 능가하는 어마무시한 팬데믹이 앞으로 더 짧은 주기로 우리를 덮칠 것이기에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팬데믹의 어제와 오늘을 되돌아보고, 그 교훈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팬데믹 대응을 준비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다음 신종 감염병은 더 빠른 시일 내에 나타날 겁니다. 그 파장 또한 더 클 거라고 예상하고 있어요. 과거 데이터들이 보여주고 있고 코로나19가 그걸 증명했죠. 그래서 준비하고 있는 겁니다, 넥스트 팬데믹을요."
질병관리청에서 신종 감염병 대유행 대비와 중장기 계획을 담당하고 있는 김유미 위기대응총괄과장은 영국 데이터 전문기관 에어피니티(Airfinity)가 내놓은 자료를 내밀며 "초기 코로나19급 치명률을 가진 감염병이 출몰해 팬데믹으로까지 확산할 가능성이 5년 이내 14.9%, 10년 이내 27.5%로 예상하고 있다"고 했다.
김 과장에 따르면 전세계 전문가들 모두 이런 예측에 공감하고 있다. 그 이유 또한 분명하다. 신종감염병이 발생한 주기를 살펴보면 이런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다.
주요 신종·재출현 감염병 최초 발생연도를 보면 1918년 스페인독감으로 시작해 39년이 흐른 1957년 아시아 독감, 11년 후 1968년 홍콩 독감, 13년이 지난 1981년 HIV(사람면역결핍바이러스), 21년 후 2002년 사스, 7년이 지난 2009년 신종플루, 바로 3년 뒤 2012년 메르스, 2년 후인 2014년 지카바이러스 감염증과 에볼라, 그리고 5년 후인 2019년 코로나19까지.
WHO(세계보건기구)에 따르면 전세계를 뒤흔들 정도로 큰 규모의 신종감염병은 그 주기가 2~5년으로 짧아지는 추세다.
박영준 질병청 인수공통감염병관리과장은 "지난번 팬데믹부터 다시 팬데믹이 나타날 때까지 주기는 더 짧아질 것이고 그 파괴력과 영향력은 더 커질 것"이라며 "이러한 예측이 충분히 타당한 근거가 있는 것은 전 세계에 물동량, 이동량이 훨씬 많아졌고 인구 증가, 기후 변화 등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 과장은 다만 아쉽게도 정확히 어떤 감염병이 전세계를 휩쓸지 예측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박 과장은 "이미 2009년 전에 전세계 많은 전문가들이 AI(조류인플루엔자)가 팬데믹화될 것이라고 점쳐왔었고, 가금류와 밀접 접촉이 많은 동남아 지역이 그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판단해 준비를 해왔지만 결론적으로 그 예상은 빗나갔다"며 "우리가 어느 시점에 어떤 바이러스가 유행할 것이라고 타기팅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준비들이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 감염 예방 수칙, 역학조사 기법, 백신 생산 체계, 진단 방법 등 호흡기 감염병 대응에 대한 기본적인 틀이 갖춰진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국내에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았어도 다른 나라들을 패닉에 빠트렸던 감염병들이 등장할 때마다 우리나라 방역 체계도 한 단계씩 발전을 거듭했다.
김유미 과장은 "이런 큰 감염병의 변곡점마다 보건 정책과 방역당국의 대책도 굉장히 발전하게 됐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가장 큰 불쏘시개가 된 것이 바로 사스"라며 "2002년 홍콩에서 사스가 발생했는데 우리나라는 당시 환자가 없었지만 치명률이 굉장히 높다 보니 각 국가들이 서로 정보를 교환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됐고 WHO IHR(국제보건규약)을 통해 국립보건연구원에 조그맣게 있던 방역과가 질병관리본부로 몸집을 키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2012년 메르스가 출몰했을 때도 그랬다. 우리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병원 내에서도 감염병이 확산한다는 사실을 목격하게 되면서 당시 질병관리본부에 감염관리과가 생겨났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도 큰 변화가 있었다. 전국 동시 유행에 대한 대응이 중앙정부로만은 한계가 있다는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나면서 체계를 만들게 됐다.
김 과장은 "코로나19를 경험하면서 중앙정부의 역할을 넘어 각 지역, 권역에서 감염병을 대처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돼 질병청 소속 기관으로 5개 권역의 질병대응센터가 생겨났고 17개 시도로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며 "백신과 치료제도 해외에서 돈 주고 사오는 걸 떠나 자체적인 개발 능력을 키워야겠다고 판단해 백신, 치료제 연구 개발에 힘을 쏟게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런 꾸준한 노력들 덕분에 국내산 코로나19 항체 치료제가 나올 수 있었다.
코로나19 환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을 때 해외에서 치료제를 사오려면 한 개에 200만원가량이 들었지만 질병청 국립보건연구원 산하에 있는 국립감염병연구소에서 치료제를 개발하게 되면서 우리나라 6만 명의 환자가 싼 가격에 빠르게 국내 치료제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 전 세계 세 번째였다.
장희창 국립감염병연구소장은 "우리가 빠르게 코로나19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었던 건 미국 국립보건원(NIH)과의 협력 덕분"이라며 "협력을 통해 쌓은 기술들로 우리 연구팀이 코로나19에 대한 항체 치료제를 개발했고 현재로선 우리 감염병 연구소에는 임상 의사가 많지 않기 때문에 더 세계적으로 연합하고 활동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과거와는 달리 감염병이 한번 발생하면 전세계로 빠르게 퍼져나가게 되면서 국제 공조는 더욱 중요해졌다. 전문가들 모두 미래 팬데믹을 대비하기 위해선 인력 양성, 국제 정보 공조 등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영준 과장은 "사실 코로나19 대응할 때도 전세계적인 발생 현황, 치명률 등 정보를 얻는 데 가장 많은 신세를 진 것이 '아워월드인데이터'라는 사이트였는데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전에 다른 감염병 사업을 위해 국제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코로나19에 맞춰 확장됐고 우리도 큰 덕을 봤다"며 "우리도 다가올 팬데믹에 대비해 어느 정도 범위 내에서 포괄적으로 준비하는 것을 목표로 노하우와 플랫폼들을 하나하나 갖추고 최후의 병기라고 할 수 있는 백신을 빠르게 충분히 생산해낼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런 준비는 발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국립감염병연구소 자원보존실엔 사스·코로나 바이러스 등 세균 723종 5954주, 진균 184종 536주, 바이러스 27종 455주, 조류 1종 1주, 파생물질 278건 등 935종 7224주 등 병원체가 보관돼 있다. 이 병원체들 모두 백신, 치료제 개발을 위한 것이다.
김경창 신종바이러스매개체연구과장은 "우선순위 감염병을 선정해 병원체를 보관하고 있다"며 "신종감염병이 발생했을 때 100일, 200일 이내에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하고 공급할 수 있도록 체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과장에 따르면 타깃 병원체에 대한 임상 1·2상 정도의 안전성과 용량이 확인된 시제품을 확보하고 있을 경우 100일, 타깃 병원체와 유사성이 높은 시제품을 가지고 있을 경우 200일로 기준을 잡고 있다.
또 연구소는 삼성그룹에서 7000억원을 지원받아 중앙감염병병원과 국립감염병연구소 분소를 짓고, 경북 안동시에는 미국 국립 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NIAID)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될 국가첨단백신기술센터(가칭)도 짓는다.
박영준 과장은 "넥스트 팬데믹이 발생하면 최후의 무기라고 말하는 백신과 치료제를 얼마나 빠르게 충분히 생산해내느냐가 관건"이라며 "우리 연구원들과 직원들도 다음 감염병을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sssunhu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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