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말 할 수 있다…“4년 전 이미 코로나19 대비하고 있었다?”

천선휴 기자 2023. 12. 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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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팬데믹]① 2020년 1월 '우한폐렴' 한국 상륙
"원인·특징 모르는 상태서 정책 선택의 순간 가장 힘들어"

[편집자주] 2020년 1월. 중국에서 시작된 원인 모를 폐렴이 한국을 덮쳤다. 전세계가 공포에 떨었고 우려는 현실이 됐다. 코로나19로 밝혀진 이 병은 이후 약 4년간 전세계인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줬지만, 인류 지성은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말한다. 코로나19를 능가하는 어마무시한 팬데믹이 앞으로 더 짧은 주기로 우리를 덮칠 것이기에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팬데믹의 어제와 오늘을 되돌아보고, 그 교훈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팬데믹 대응을 준비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2020년 1월 10일 보호복을 입은 노동자가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 폐업해물시장에 서 있다. ⓒ 로이터=뉴스1 ⓒ News1 이동원 기자

(서울=뉴스1) 천선휴 기자 =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아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거든요. 저희 병원 환자가 확진자라는 게 공개되고 나선 끔찍한 시간을 보냈어요. 폐쇄되고 기자들 계속 찾아오고…"

서울의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2020년 1월을 떠올릴 때면 아직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다고 했다. 20여년간 병원에서 일을 해왔지만 그때만큼 지독히도 괴로웠던 적은 없었다며 손사래를 쳤다.

지난 5월, 약 4년 만에 전세계를 공황에 빠트렸던 코로나19가 엔데믹으로 전환됐지만 그의 머릿속엔 지나온 시간이 아직 생생히 떠오른다고 했다.

2020년 1월 21일 오전 대구국제공항 국제선 입국장에서 중국 상하이(上海)를 출발해 대구에 도착한 탑승객들이 열화상카메라가 설치된 검역대를 통과하고 있다. 2020.1.21/뉴스1 ⓒ News1 공정식 기자

2019년 12월. 중국 우한에서 원인 모를 감염병이 돌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 병에 감염되면 폐렴 증상을 보인다고 해서 처음엔 '우한 폐렴'이라고 명명됐다.

옆나라에서 그칠 줄 알았던 이 감염병은 순식간에 전세계로 기세를 뻗치기 시작했다.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우리나라도 2020년 1월 3일, 질병관리본부에 '우한시 원인불명 폐렴 대책반'이 만들어졌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17일 후인 1월 20일. 국내 첫 확진자가 나타났다. 본격적인 패닉의 시작이었다.

김갑정 질병관리청 감염병진단관리총괄과장도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새로운 감염병이 출현한 것이기 때문에 대응을 하기 위해선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진단이었다"며 "진단법이 개발돼야 확진자를 구분하고 감염이 퍼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신속하게 검사법을 개발하고 세팅하는 게 우선의 큰 과제였다"고 설명했다.

김갑정 과장은 당시 질병관리본부(질병관리청 전신) 진단 총괄팀에서 근무했다. 중국 우한시에 원인 불명 폐렴이 돌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12월 말부터 이들은 검사법 세팅에 들어갔다. 밤낮없이 시작된 연구의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WHO(세계보건기구)와 중국이 이 ‘우한 폐렴’의 원인이 새로운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이라고 지목하기도 전인 1월 9일, 연구에 착수한 지 불과 약 열흘 만에 모든 코로나바이러스를 분석할 수 있는 '판코로나 검사법'을 개발했다. 이 검사법으로 1월 20일 국내 첫 감염자를 골라냈다.

김 과장은 "사실 이렇게 초기에 신속하게 검사법을 세팅한 나라가 많지 않았다"며 "감염병이라는 게 초기 대응이 굉장히 중요한데 특히 이번처럼 백신이 없는 새로운 감염병의 경우엔 특히 초기에 고리를 끊지 않으면 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때문에 상황은 더 급박했다"고 설명했다.

사실 우리나라가 이토록 빠르게 진단법을 개발할 수 있었던 건 우연이 아니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질병관리본부는 2018년 4월부터 TF팀을 꾸려 새로운 감염병 출몰에 대비했다고 했다. 그리고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출몰하기 불과 몇 주 전인 2019년 12월 27일, 이들은 원인불명 감염병이 국내에 유입됐을 때를 가정한 훈련을 가지기도 했다. 그 시나리오도 소름끼치도록 비슷했다.

중국 윈난성을 여행하고 온 한국인 가족이 원인불명 폐렴을 앓기 시작했고 귀국 후 이들이 들른 병원, 직장에서 신종 감염병이 확산하기 시작했다는 상황을 가정했던 것이다.

김 과장은 "원인 불명 감염병에 대한 검사법을 새롭게 세팅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향후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에 대비해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TF를 만들게 된 것"이라며 "그런데 실제로 이런 상황이 벌어지더라"라고 말했다.

이 도상훈련에서 이들은 새로운 검사법 개발, 접촉자 범위 규정, 확진자의 이동경로 파악 방법 등에 대한 논의를 해왔다.

2020년 12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가 이어지면서 방역당국은 향후 하루 최대 1200명대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진은 2020년 12월 22일 오전 서울광장에 설치된 임시선별검사소를 찾은 시민들이 코로나19 검사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 2020.12.22/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원인불명 감염병의 초기대응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검사법 개발뿐만이 아니다. 역학조사도 중요하다. 가능한 한 빨리 전파의 고리를 끊어주고 차단하는 것. 특히 호흡기 감염병에선 이 역학조사를 토대로 한 확산 차단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나 코로나19 초기 때처럼 백신과 치료제가 없는 호흡기 감염병이 출몰했을 경우, 대항할 약들이 개발될 때까지 감염병 확산을 최대한 막는 것이 최선이다.

당시 최일선에서 역학조사를 담당해온 박영준 질병청 인수공통감염병관리과장은 "질병이 발생하면 그때까지 알고 있는 정보만을 가지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역학조사의 첫 번째는 전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감염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 이동을 중지시키고 제한시키는 것, 두 번째는 일일이 따라다니면서 개인별로 추적해 집에 머물게 하는 것, 이게 한계가 있다면 특정 지역 전체의 이동을 통제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우리나라도 중국인 입국자 등을 통해 감염이 산발적으로 발생했을 때는 확진자의 동선을 바탕으로 접촉자들을 격리해왔다. 하지만 13번째 대구 신천지 관련 확진자가 발생했을 때는 신천지 대구지부에 있던 9800여명의 신도 전체에 대한 격리 명령이 내려졌다.

박 과장은 "당시엔 코로나19에 대한 특성도 몰랐고 국민들의 불안감까지 함께 케어를 해줘야 했기 때문에 조치를 과도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코로나19는 발생 국가의 데이터상 고령환자의 초기 치명률이 10%가 넘을 정도로 굉장히 높은 수치를 나타냈는데 이 경우 감염병이 기하급수적으로 확산하면 나라가 흔들릴 정도가 되기 때문에 최대한 발생을 억제하려 했다"고 말했다.

박 과장을 괴롭힌 건 코로나19가 등장했을 당시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염병이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그에 따라 내리는 조치들이 적절한지를 확신할 수 없었던 상황이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박 과장은 "이 질병의 특징이 원래 중증을 유발하는 것인지, 치료가 제때 이뤄지지 않아서인지조차도 몰랐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었다"면서 "확진자만 격리할 것인지 접촉자도 같이 격리할 것인지, 접촉자는 7일을 격리할지 14일을 격리할지, 가족만 할지 직장 동료까지 할지 모든 게 선택의 기로에 놓였고 그 조치가 맞는지 불확실 할 때 가장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쉬운 건 국민도 우리도 코로나19가 이렇게 오래갈 줄 몰랐다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도움으로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 비해 선방할 수 있었고 우리도 국민들에게 상황을 최대한 투명하게 알리려 노력해 함께 위기 상황을 지혜롭게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sssunhu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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