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기 성숙한 사람은 어떤 관계를 맺을까? [중·꺾·마: 중년 꺾이지 않는 마음]

2023. 12. 2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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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인생 황금기라는 40~50대 중년. 성취도 크지만, 한국의 중년은 격변에 휩쓸려 유달리 힘들다. 이 시대 중년의 고민을 진단하고 삶의 질을 높이는 해법들을 전문가 연재 기고로 모색한다.
건강 : <6> '느슨한 유대'의 중요성
중년만의 독특한 심리상태
친밀한 가족관계의 중요성
가족 간 자율성도 중시돼야
성인기에 대한 발달 심리학적 구분

현대인은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 초기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한 사람의 개인으로 적응하고 살아가기 위해 합리적·객관적 사고의 토대 위에 지식을 축적한다. 또 자신의 미래에 도움이 될 기술을 습득해가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교류하며 새로운 경험을 탐색하는 ‘지식과 기술 습득’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그렇기에, 청소년기와 성인 초기의 정신건강의 적신호인 우울과 불안은 대개 지식과 기술 습득, 또는 대인관계에서 실패를 경험했거나 실패하게 될까 두려워 사회적인 삶을 회피하는 행동문제로 드러난다. 따라서 이들을 위한 심리치료는 이러한 좌절과 불안을 보듬고, 기꺼이 세상 속으로 나아가도록 돕는 데 주안점을 둔다.

반면, 이들보다 한 세대 위인 중년기 이후는 ‘시간’으로 측정되는 삶이 제한적이기에, 미래의 이득을 위해 현재 누릴 수 있는 즐거운 활동이나 의미 있는 관계를 미루거나 포기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동안 개인적 성취와 사회적 성공을 위해 애쓰느라 미처 돌보지 못했던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에 에너지와 주의를 기울이고, 무엇보다 자신의 내면을 살펴야 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에 맞닥뜨리게 되는 심리적 어려움은 일반적으로 너무 많은 시간을 사회적 관계와 일에 할애해 소중한 가족 또는 본래의 자기를 잊고 돌보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 따라서 이들을 위한 심리치료는 그간 연연했던 사회적 관계와 활동을 점차 축소하고, 가족과 친구를 비롯한 소중한 사람들을 돌아보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진정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된다.

‘건강하게 나이 들어가는 것’(healthier-ageing)에 관한 세계적 권위자인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의 로라 카스텐슨 교수는 부부관계에 관한 연구를 통해 중년 이후 삶의 우선순위 변화가 삶의 만족을 고양시키고, 마음의 평화를 가져오는 잠재력이 있음을 입증했다. 그에 따르면, 경제적 문제는 물론 자녀 혹은 친족 간의 관계 문제로 인한 갈등을 다룰 때 나이 든 부부는 젊은 부부에 비해 분노나 적대감, 불평을 덜 하며, 정감은 더 많이 표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카스텐슨 교수는 갈등이나 마찰이 있을 때, 나이 든 부부가 젊은 부부보다 정서조절을 더 잘하고, 부부가 함께하는 활동이 더 많았으며, 그로 인해 전반적으로 결혼생활에서 더 많은 만족을 경험한다고 보고했다.

함께 해온 세월이 긴 부부들은 나이가 들수록 서로에 대한 이해가 깊어짐에 따라 더욱 친밀해지고 외부의 사회적 관계를 줄이며 부부가 함께하는 활동에서 오는 즐거움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인다. 배우자를 변화시키려 하거나 지배하려는 일에는 관심을 덜 기울인다는 점에서도 ‘따로 또 같이’의 건강한 관계, 즉 ‘느슨한 유대’를 특징으로 한다. 삶의 유한성을 체감하지 못하는 젊은 시절과는 달리, 중년기 이후 성숙한 사람들은 ‘작지만 질이 높은 관계’, 즉 배우자나 자녀, 가까운 친구에게로 관심이 이동하게 되고, ‘느슨한 유대’ 속에서 인정받고 사랑받으며, 이 작고 소중한 관계 안에서 함께 행복을 나눈다. 이들은 우연히 알게 된 사람이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데 소비하는 시간과 에너지를 아꼈다가, ‘작고 소중한 관계’의 사람들에게 투자한다는 특징이 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직장생활을 하든 하지 않든, 중년 이후 건강하게 나이 들어가는 데 정서적인 만족을 주는 ‘친밀한 관계’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배우자나 자녀와 나누는 ‘사랑’을 비롯해 가까운 친구와 나누는 ‘우정’은 ‘작고 소중한 관계’의 핵심이며, 이때 중요한 요소는 자율성과 친밀감의 적절한 균형, 즉 ‘따로 또 같이’의 지혜이다. ‘자율성’을 강조하다 ‘친밀감’을 상실해도 안 될 것이고, ‘친밀감’을 강조하다 ‘자율성’을 침해해도 안 될 것이니 말이다. 올 한 해도 저물어간다. 새로운 한 해를 앞둔 지금 중년인 당신의 정신건강을 지탱해 주는 ‘작고 소중한 관계망’이 있는지, 그 관계망 속에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들과 적절한 자율성과 친밀감의 균형과, 조화의 지혜를 발휘하며 ‘느슨한 유대’를 유지하고 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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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미 서울상담심리대학원 교수ㆍ<심리학이 나를 안아주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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