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브렉시트의 배신’… 이민자 되레 2배로 늘었다
영국 런던 중심가 러셀 스퀘어 인근의 수퍼마켓 ‘세인즈베리’ 매장. 이곳에서 일하는 20여 명의 직원 중 15명은 인도와 중동, 아프리카 출신 이민자다. 인근에 위치한 햄버거 체인점 ‘파이브 가이즈’ 역시 8명의 직원 중 매니저 1명을 제외한 7명이 인도와 아프리카 이민자였다. 수퍼마켓 매니저 아이잘씨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전에는 직원 대부분이 폴란드와 루마니아 출신이었다”며 “(저임금 노동력을 찾다 보니) 외국인 근로자의 출신만 바뀌고 그 수는 오히려 늘었다”고 했다.
영국이 지난 2016년 브렉시트에 나선 이유 중 하나가 “이민자들이 지나치게 늘었다”는 것이었다. 2016년 6월 국민투표로 브렉시트가 결정되자 이후 1년간 영국으로 들어온 순이민은 23만명으로 직전 1년간(33만명)에 비해 30%나 줄었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했다. 22일(현지 시각) 영국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영국으로 들어온 순이민자 수는 74만5000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전의 두 배로 폭증했다. 영국 보수 일간 텔레그래프는 “브렉시트의 배신이 완성됐다”며 “(이민자 증가를 놓고) 정치권에 대한 좌절감과 극심한 배신감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브렉시트 이후 이민자 구성이 크게 바뀌었다. 브렉시트로 영국의 저임금·단순 노동력 시장을 지탱했던 동유럽 이민자들이 대거 빠져나가자, 이 자리를 인도·파키스탄·나이지리아 등 과거 영국 식민지였던 영연방 국가 출신들이 메우기 시작했다. 인도 이민자의 경우 2013년 3만3000명에서 올해 25만3000명으로 약 8배가 됐다. 2020년부터 영국을 덮친 코로나 사태도 이민 정책 변화에 한몫했다. 영국은 2020년 이민자가 연간 8만명대로 뚝 떨어져 극심한 인력난을 겪었고 2021년엔 트럭 운전사와 상하차 인력 부족으로 생필품과 연료난까지 벌어졌다. 결국 단기 노동력의 이민 문호를 넓혀야 했다.
지난해 이민자 수는 당초 영국 정부가 예상했던 60만명보다 25%나 늘어난 것이다. 우크라이나 난민 17만4000명, 홍콩 출신 영국 여권 소지자 12만5000명 등 일시적인 이민 증가 요인이 큰 영향을 미쳤다. 또 프랑스 북부와 영국 사이의 영불해협을 건넌 불법 이주민이 2021년(2만9000명)보다 58%나 늘어난 4만6000명에 달했다. 반면 EU 국가 출신 이민은 지난해 기존 이민자 5만여 명이 빠져나가며 ‘순유출’로 돌아섰다. 영국 런던대학교는 내무부 의뢰로 작성한 연구 보고서를 통해 “영국은 유럽 주요국은 물론이고, 신규 회원국(동유럽 국가)에서도 인기가 없다”며 유럽인 이민자는 줄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이민은 계속 늘어날 것임을 시사했다.
영국 정부는 불법 이민을 줄이려 영국행 난민을 아프리카 르완다로 보내는 정책까지 내놨지만 별 효과가 없는 상황이다. 텔레그래프는 “아시아·아프리카·중동 출신 이민자들이 영국 사회 통합이나 세수 확보에 상당한 과제를 제기할 것이 확실하다”고 지적했다. 물밀듯 몰려오는 동유럽 이민에 놀라 EU에서 탈퇴했는데, 그들의 빈자리를 구(舊)식민지와 제3세계 출신들이 채우는 역효과만 나타났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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