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사에 앨범 쓰레기 반납시위... 세계 K팝 팬과 기후위기 맞서는 그녀
BBC ‘올해의 여성 100인’에 선정
“이다연은 케이팝포플래닛을 통해 기후 위기에 맞서도록 전 세계 K팝 팬들을 결집한다.”
영국 BBC가 지난달 선정한 ‘2023 올해의 여성 100인’에 일본 도쿄외국어대 국제사회학부 2학년에 재학 중인 이다연(21)씨가 올라 화제가 됐다.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포함됐다. 인권 변호사 아말 클루니, 미셸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부인, 국제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 등 쟁쟁한 명사들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이씨는 2021년 3월 인도네시아 기후 활동가 누룰 사리파와 함께 K팝 팬덤의 목소리를 모아 친환경 운동을 펼치는 기후 위기 대응 단체 ‘케이팝포플래닛’을 결성했다. “죽은 지구에 K팝은 없다”는 이 단체 대표 슬로건의 본래 뜻은 “이 좋은 K팝을 우리만 즐길 수 없다. 다음 세대까지 물려주자”이다. K팝의 세계적 영향력을 환경 운동에 활용한 첫 사례였다. 결성 직후에는 기후 변화로 사라지고 있는 꿀벌 탈을 쓰고 국내 대형 기획사들 사옥에 가서 팬들에게 받아 모은 앨범 폐기물 8000장을 박스째 돌려주는 시위를 진행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팬들 애정으로 쓰레기를 양산하지 말라”는 이들의 일침 이후 하이브, SM, JYP, YG 등 국내 대형 음반 기획사들이 친환경 소재 앨범 발매, 2050년까지 사용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대체를 약속하는 RE100 정책 등을 속속 발표했다.
최근 도쿄에서 화상 인터뷰에 응한 이씨는 “선정 소식 직후 가장 처음 음반 쓰레기를 돌려주러 간 기획사에서 보안 요원들에게 쫓겨난 기억이 떠올라 감개무량했다”며 “세계 곳곳에서 영향력을 이어가고 있는 K팝 팬들의 행동주의가 인정받은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K팝 행동주의’란 기후변화, 인종차별, 빈곤 철폐 등 사회적 문제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K팝 팬덤의 성향을 뉴욕타임스 등 미국 유력 매체들이 명명한 개념이다. ‘K팝’과 ‘환경운동’ 두 단어의 조합은 단 2년 만에 세계에서 주목받는 시너지 효과를 일궜다. 비결은 뭘까. 이다연씨는 “디지털 프로젝트에 최적화된 젊음과 국제적인 소통 능력이 K팝 팬들을 역동적인 환경 운동가로 만들고 있다”고 했다.
-케이팝포플래닛 참여자들의 특성이 있다면.
“10·20대 여성 팬들이 많은 K팝 팬덤을 그대로 따라간다. 우리의 주요 활동은 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 한국어와 영어로 양질의 환경 프로젝트 콘텐츠를 올려 참여자를 모으는 일이다. 요즘 K팝 팬들은 ‘K팝 취미’란 연결 고리만 있으면 누구나 온라인 친구를 맺는다. BTS ‘아미’, 블랙핑크 ‘블링크’ 등 유명 가수의 팬덤이 운영하는 ‘팬베이스’ 소셜미디어 계정은 수시간 만에 팔로어 3만~5만명을 움직인다. 단시간에 적은 인원으로 다국적 참여자를 빠르게 모으는 비결이다. 나를 포함해 ‘캠페이너’ 직함을 가진 상주 활동가는 8명뿐이지만, 방글라데시·스페인·영국·미국·인도네시아·태국 등 10여 국에서 다국적 앰배서더 20~30명이 프로젝트마다 참여해 자신들의 문화권과 언어에 맞는 환경 운동 콘텐츠 제작을 돕고 있다. 프랑스, 코스타리카, 멕시코 등 8개의 팬베이스가 케이팝포플래닛과 함께 지난 2년간 150여 국 환경 프로젝트 운동가 5만8000여 명을 모았다.”
-단체를 만든 계기는?
“나도 초등학교 때부터 보이그룹 비스트로 입문해 걸그룹 에스파를 좋아하는 K팝 덕후다. 내 또래 K팝 팬들은 날 때부터 기후변화 위기를 몸으로 체감하고 ‘그린 컨슈머’를 고민한 세대이기도 하다. 함께 케이팝포플래닛을 만든 인도네시아 환경운동가 누룰 사리파와도 고등학생 때 청소년 환경 단체 활동 중 만났다. K팝 팬들이 이미 ‘BTS 숲 만들기’ 등 좋아하는 가수의 기념일에 맞춰 세계 곳곳에 나무를 심는 문화로 지구 환경을 바꾸고 있었다. 그런 공감대가 2021년 단체 설립으로 이어졌다. 같은 해 세계 K팝 관련 트위터가 78억건 이상 쏟아졌는데, 그중 가장 많은 K팝 트윗을 한 국가 1위가 인도네시아였다. 대기오염이 심한 자카르타 팬들은 일상적으로 기후 위기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 두 점을 연결시키면 큰 힘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케이팝포플래닛에 따르면 각국 K팝 팬이 지난해까지 10년간 심은 나무는 11만3824그루로, 이산화탄소 2만8000톤의 감축 효과를 냈다. 반면 국내 K팝 음반 기획사들이 생산해 낸 플라스틱 폐기물은 2017년 55.8톤에서 지난해 801.5톤까지 14배로 껑충 뛰었다.
-친환경 에너지 사용 등 활동 영역을 넓혀가고 있는데.
“전 세계 K팝 영향력이 커지면서 우리의 역할도 커지고 있다. 각국 유명 브랜드들이 앞다퉈 한국 가수들을 기용해 젊은 세대 소비자를 겨냥 중이다. 그 상품이 정작 미래 세대의 기후 환경을 망치는 방식으로 생산된다면 그 역시 K팝의 문제가 된다. K팝 팬덤은 좋아하는 가수가 모델인 상품을 집단적으로 따라 사는 성향이 강하다. 예컨대, 좋아하는 가수 노래를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높은 차트 순위에 올리려고 하루 종일 튼다. 만일 그 플랫폼이 화석연료 전기를 쓴다면 곧 엄청난 양의 탄소가 배출되는 것이다.
이런 성향을 악용하는 ‘그린 워싱(친환경적이지 않으면서 친환경처럼 보이게 하는 것)’도 주요 고민거리다. SM은 친환경 굿즈를 판다며 대나무 칫솔에 포토카드를 끼워 팔고, 하이브는 비대면·대면 사인회 참석권을 미끼로 포토카드 100여 종을 친환경 포장 앨범에 끼워 판다. 사실 친환경 소재 제작은 대안일 뿐이다. 이 역시 수백 장을 사면 ‘재활용 쓰레기’가 된다. 애초에 소속사들이 팬들이 필요한 만큼이 아니라 목표한 만큼 앨범이나 굿즈를 미리 찍어두고 다 팔릴 때까지 사인회를 여는 게 문제다. ”
-그럼에도 ‘불매운동은 하지 않는다’가 단체의 원칙이다.
“팬들은 굿즈에 돈을 쓰게 만드는 것 자체를 비판하는 게 아니다. 그 돈이 좋아하는 스타의 명성을 높인다면 팬들은 기꺼이 지갑을 연다. 내 스타의 이름이 걸린 그 돈으로 환경을 망치고, 그 책임을 팬들에게 돌리는 데 동의하지 않을 뿐이다. 2021년 단체 결성 후 팬들에게 ‘앨범 폐기물 해결법’을 설문했을 때도 가장 많이 원한 건 앨범을 수십 장 구매해도 실물 CD는 원하는 만큼만 받게 선택하는 ‘그린 옵션’을 달라는 것이었다. K팝 글로벌 팬덤이 넓어지면서 자칫 ‘K팝이 지구를 망친다’는 나쁜 이미지로 흐를까 걱정하는 팬도 많다.”
-다음 주력 프로젝트가 있다면.
“‘지속 가능한 K팝 콘서트 방식’을 촉구할 계획이다. 콜드플레이, 빌리 아일리시처럼 콘서트 투어 때 탄소 배출을 최대한 줄이겠다고 선언하고, 노래할 때 팬들이 뛰는 힘을 이용해 전기로 쓰는 공연장 등 친환경 옵션은 세계 음악계의 대세 흐름이다. 이제 K팝은 한국에서만 향유하는 게 아닌, 전 세계를 움직이는 문화가 됐다. 그에 걸맞은 전 지구적인 책임감을 갖고 움직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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