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정의찬은 누구에게 사과하는가?

임지현 서강대 교수·역사학 2023. 12. 25.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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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세 청년을 프락치라며 죽여놓고
정작 희생자에겐 침묵한 채
유가족과 당시 상황에만 사과를?
광주 희생자에게 사과하는 대신
그때 상황에만 유감 표명한
5공 주역들과 뭐가 다른가
왜 다들 자기 밖의 악마만 보고
자기 안의 악마는 외면하나
정의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특보가 지난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과거 고문치사 사건에 연루돼 유죄 판결을 받은 정의찬 당대표 특보가 총선 후보자 검증 과정서 공천 적격 판정을 받아 논란이 되자 재논의를 거쳐 부적격 처리했다./뉴시스

유대계 이탈리아인인 프리모 레비(1919~1987)에 따르면, 나치즘의 사악함은 단지 많은 희생자를 낳았다는 데 있지 않다. 나치즘의 진짜 나쁜 점은 희생자들을 타락시켜 끝내 자기와 닮게 만든다는 데 있다. 아우슈비츠에서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로서 그가 체득한 비극적 리얼리즘은 여전히 울림이 크다.

정도의 차이야 있지만, 해방 이후 한국에서 독재의 가해자들과 희생자들, 그리고 그들과 맞서 싸운 민주화 운동의 역사를 곱씹다 보면 레비의 리얼리즘을 떠올릴 때가 많다. 요 며칠 사이 정의찬 민주당 정무특보의 공천을 둘러싼 보도를 접하면서 다시 그랬다.

보도에 따르면, 정의찬은 학생운동 시절 민간인 고문치사 전과 때문에 민주당 총선 후보 공천 예비 심사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 그러자 당내에서 ‘강압 수사의 피해자’라는 탄원서가 동지들 사이에서 도는가 하면, 이의신청서를 낸 본인은 “반드시 살아서 돌아가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는 조선대 총학생회장으로 있던 1997년 다른 남총련 간부들과 함께 25세의 청년 이종권을 프락치로 몰아 쇠파이프 등으로 구타해서 죽였다. 이 사건으로 5년 징역형을 받아 형기를 6개월 남기고 김대중 정부의 사면으로 2002년 출옥했다. 이재명 경기도는 2021년 8월 그를 경기도 수원 월드컵경기장관리재단 사무총장으로 임명했지만, 고문치사 전력이 불거지자 스스로 사퇴한 바 있다.

그런 그가 다시 이재명 민주당 당대표 정무특보가 되어 총선에 나가려다 당 공직선거 후보자 검증위원회의 부적격 판정을 받아 이의 신청을 했다가 다시 철회했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억울함과 답답함을 가슴에 묻고, 언론의 왜곡과 음해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싸우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잘못했지만 잘못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런가 하면, “어찌 됐든 사람이 생명을 잃어버린 상황이니까, 그런 것에 대해서는 평생 저도 죄송스럽고, 유가족한테 죄송하고 그 당시 함께했던 동지들한테도 정말 죄송한 상황”이라고도 말했다는 것이다. 이의신청을 철회하고 자숙하는 모양새를 보여주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래도 그의 사과가 나는 어딘지 불편하다. 그가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대상은 “사람이 죽게 된 상황”이거나 죽은 사람의 “유가족,” 그리고 “함께했던 동지들”이다. 정작 자신의 고문치사로 죽은 희생자 이종권에 대한 사과는 없다. 그의 사과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문치사가 일어난 상황에 대한 정의찬의 유감 표명이 광주의 희생자들에게 사과하는 대신 광주의 상황에 대해 유감을 표명한 5공 주역들의 사고방식과 얼마나 다른지는 의문이다. 정의찬의 한총련 동지들 또한 사과받는 위치가 아니라 같이 사과하거나 반성해야 할 주체이다. 이종권 고문치사 사건의 심정적 공범자인 동지들에게 그는 사과와 자성을 촉구해야 했다.

유가족이라고 해서 죽은 이종권을 대신해서 사과받고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도 희생자 대신 가해자를 용서할 수는 없는 법이다. 고문치사의 희생자인 이종권은 쏙 빼고, 운 나쁜 상황과 공범인 동지들 그리고 기껏해야 유가족에게나 죄송하다는 정의찬의 사과에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 것은 나뿐만 아닐 것이다.

이종권은 지역 명문 대학의 유명 문학 동아리 회원 자리를 선망했던 가난한 주변인이었던 것 같다. 민중 속의 민중이었던 그가 민주화 운동의 주역을 자처하는 한총련 간부들에게 프락치로 몰려 맞아 죽은 사건은 비극이라는 말로도 차마 담지 못할 만큼 비극적이다. 설혹 프락치였다고 해도 감금하고 고문해서 죽일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차라리 80년대 5공화국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되어버린 총체적 비극이라 차치할 수도 있다. 이 사건은 6공 출범 이후 정치적 민주화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진전된 시점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더 뼈아프다.

과거는 이미 돌이킬 수 없다. 과거 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이 사건에 대한 비판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기억을 만들 것인가 하는 고민이다. 정의찬 등이 소아병적 정의를 벗어나 자성적 부끄러움에서 다시 시작할 때, 독재 비호 집단의 뻔뻔한 정의도 설 땅이 없어진다. 누구든 자기 밖의 악마만 보고 자기 안의 악마를 지나치면 곤란하다.

냉전적 악마론의 지평에 갇혀 있는 한국 민주주의는 업그레이드할 시점을 많이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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