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노인이 행복한 나라

손균근 기자 2023. 12. 2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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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5명 중 1명이 노인, 빈곤·극단선택 세계 최고
일자리 공급 확대가 해법…정부·기업 인식전환 절실

날이 추워졌다. 연일 영하 10℃를 오르내린다. 붕어 빵이 눈에 들어오는 요즘이다. 붕어 빵은 붕어 모양을 한 빵이다. 한 때 ‘붕어 빵에 정작 붕어가 없다’는 말이 유행했다.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를 돌려 칠 때 쓰인다. 붕어 빵이야 죄가 없지만 그렇다. 이 말이 양두구육에 버금갈 정도로 험하게 쓰일 때도 있다. 국민행복시대를 내건 정부를 ‘붕어 빵 정부’로 불렀던 때가 있었다. 대통령과 측근들만 행복한 나라라는 비판이었다. 국민은 행복하지 않다는 항변이었다. 당시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국정방향과 의지를 표현한 것인데 지나친 비판이다”며 섭섭해 하던 장면을 기억한다.

모든 정부는 지향이나 이념을 떠나 국민의 행복을 내세웠다. 그런데 우리 국민은 행복하지 않다. 국민의 행복추구권(헌법 10조)은 법 조문일 뿐이다. 적어도 쏟아지는 국제기구의 분석 지표와 국내 통계당국의 자료상으로는 그렇다. 최근 유엔 산하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는 한국인의 행복도가 전 세계 137개국 가운데 57위라고 발표했다. ‘2023 세계행복보고서’ 내용인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가운데 최하위권이다. 지난해 한국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 당 24.1명으로 OECD 국가 중 최악이다. 통계청이 지난 4월 발표했다.

정부도 심상치 않다고 본 모양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5일 ‘정신건강정책 비전 선포식’에서 “정신건강 문제를 주요 국정 어젠다로 삼겠다”고 했다. 정부는 내년에 정신건강 중·고위험군 8만 명을 시작으로 윤 대통령 임기 내 100만 명에 심리상담을 제공하는 목표를 제시했다. 필요한 조치지만 근원적 해법은 아니다. 국민이 행복할 수 있는 최소한의 환경과 조건을 만들지 않으면 한계가 분명하다. 불행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개선하지 않고 심리상담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특히 65세 이상 노인세대 자살률(10만 명 당 39.9명)은 압도적이다. OECD 회원국 평균(17.2명)의 두 배를 넘는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노인빈곤율과 자살률간 상관 관계이다. 한국의 노인인구 빈곤율은 OECD 국가 중에서 최악이다. OECD의 ‘한눈에 보는 연금 2023’(Pension at a glance 2023)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한국의 66세 이상 노인 인구의 소득 빈곤율은 40.4%로, OECD 회원국 평균(14.2%)보다 3배 가까이 높단다. 소득 빈곤율은 평균 소득이 빈곤 기준선인 ‘중위가구 가처분소득의 50% 미만’인 인구의 비율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노인의 자살원인으로 경제적 궁핍과 사회적 고립을 꼽는다. 스스로 극단적 선택을 해야 할 정도의 불행을 막는 길은 노인의 빈곤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자산이 취약한 노인에게 일자리는 생존을 위한 호흡기인 셈이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자료를 보면 올해 전체 노인인구 950만 명의 22.4%(212만8000명)가 일자리 사업 참여를 희망했다. 노인 일자리는 올해 88만 3000개 공급됐다. 수요의 41.5% 수준이다. 그런데도 노인인구의 증가와 일자리 공급속도에 비해 예산과 지원인력이 따라가지 못한다. 지난해 84만 5000개 일자리를 관리하는데 5084명의 전담인력이 투입됐다. 올해는 전년보다 3만 8000개가 늘었는데, 전담인력은 202명 증원에 그쳤다. 노인일자리 사업 수행기관들은 일자리를 원하는 노인들을 다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한다.

노인에게 일자리가 얼마나 큰 의미를 부여하는 지 보여주는 조사연구 자료는 차고 넘친다. 일자리 참여 노인들은 소득이 늘어나는 효과 외에도 건강, 사회적 관계 형성, 우울감 해소 등에서 매우 긍정적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한마디로 삶의 행복도가 올라간 것으로 볼 수 있다. 노인의 행복도 증가는 자살률을 낮추는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있다. 또한 노인의 행복도 증가와 자살률 감소는 젊은 세대에 선한 효과를 미칠 수 있다. 노인세대의 불행을 보면서 청년세대가 행복한 미래를 꿈꾸기는 어렵다.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1724~1804)는 행복의 조건으로 일 사랑 희망을 꼽았다. 노인들이 은퇴 이후에도 일을 통해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고 소득을 얻는 것이 노인의 행복을 증진하는 첫 걸음이다. 사랑도 희망도 거기서 시작된다. 내년이면 노인인구 1000만 명 시대가 열린다. 거리에서 만나는 다섯 명 중 한 명이 노인이다. OECD 올해 통계를 기준으로 하면 빈곤에 시달리는 노인이 400만 명을 넘는다. 새로이 노인에 편입되는 이른바 베이비 붐 세대는 고학력에 한국의 오늘을 일궜다. 사회적 참여욕구와 책임의식이 높은 특징이 있단다. 맞춤형 일자리를 찾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노인 일자리 공급 확대를 위해 정부와 기업, 우리 사회가 함께 지혜를 모으는 세밑이 되길 바란다. 노인은 청년의 미래다. 노인이 행복한 나라는 온 국민이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최소 조건이다.

손균근 서울본부 마케팅국장·㈔한국지역언론인클럽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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