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터치] 화해의 사탕

장미영 소설가 2023. 12. 2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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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영 소설가

연말이다. 들뜬 기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한 해를 잘 마무리 할 때이다.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 참 많다. 그럼에도 꼬인 실타래 같이 풀리지 않은 일들도 있다. 마무리 짓지 못한 숙제가 남은 것처럼 말이다. 이상하게 행동은 굼뜨고, 머릿속은 명쾌하지 않은 일로 복잡하고, 마음은 모가 나서 뾰족해지기만 하는,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죄다 아름답지 않은, 그런 날이 있다. 이런 나를 보고 누군가 내 귀에 속삭인다.“제발, 화 내지 마세요”라고.

한 아이가 복도를 지나가며 시끄럽게 떠들어 댔다. 또래끼리 하는, 별 의미 없는 말장난 이었다. “야, 문어는 왜 머리카락이 없을까? 그거, 참 신기하네”(킬킬거리는 웃음)

아이의 말에 나도 모르게 불끈했다. 어떤 아이가 떠올랐다. “○○가 그런 말 들으면 기분이 나쁘지 않겠니? 말조심 좀 하면 좋겠다.” 아이는 복도에 주저앉아 훌쩍거렸다. 그러더니 이내 울음을 터트렸다. 대성통곡을 했다. “선생님, ○○가 아니고, 문어라고 했는데요?” 반 친구들이 우는 아이를 달랬다.

앗! 문어와 발음이 비슷한 이름을 가진, ○○의 이름으로 들었던 것이다. 아이의 말을 내 방식으로 해석해 버리는 실수를 했다. 오해했음을 깨달았다. 선생님이 잘 못 들은 거라고, 오해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도 아이는 계속 울기만 할 뿐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말도 듣지 않겠다는 듯, 아이는 입도 귀도 닫아버렸다. 아이는 자신의 억울함을 눈물로 호소하는 것 같았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을지, 시원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중학교 때 생물 시간으로 기억한다. 선생님은 내가 너무 떠들어 수업에 방해가 된다고 했다. 하필 내 자리가 말 많은 아이들 바로 옆이었다. 떠든 건 정작, 그 친구들이었음에도 선생님은 나를 모질게 혼을 냈다. 나를 옹호해주는 아이들 말도 선생님은 귀담아 듣지 않았다. 선생님은 화가 났는지, 뒤로 나가 손을 들고 있으라고 했다. 어찌나 서럽던지, 세상 다 산 것처럼 펑펑 울어 버렸다.

평소 나는 선생님의 품행, 아니 행동에 대해 탐탐치 않게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여자아이들 상대로 놀리는 걸 재미있어 했다. 선생님을 만나면 인사를 해도 뭔가 뻣뻣했고, 선생님 앞에서는 모든 게 삐딱했다. 선생님 역시나 그런 삐딱한 내 모습을 싫어했던 것 같았다. 나는 선생님에 대한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었고 선생님은 나를 그저 그런 아이, 버릇없는 아이로, 오해를 했다. 선생님은 내가 울음을 그치지 앉자 더 이상 수업 할 생각이 없는지 도중에 나가 버렸다. 나는 몸 어딘가 고장이 난 듯 했다. 그 날 하루를 양호실에서 보냈다. 사실 몸이 아니라 마음 한 구석이 아팠던 거였다.

아이와의 사이가 어색해졌다. 복도를 지나 갈 때마다 선생님! 하며 살갑게 안기던 아이가 나를 피하는 듯 했다. 나도 아이를 보면 웬만하면 아이와 엮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러면서도 꺼림칙했다. 어른스럽지 못한 태도를 스스로도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자, 내 모습을 닮은 아이의 모습에 이해가 갔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도 서럽고 억울하고 슬펐을 거라고.

아이는‘어른의 거울’이 맞다.‘조금 더 성숙한 어른, 성숙한 선생님이 될 수 있겠지.’ 아이를 통해 나를 되돌아보게 됐다.

며칠 뒤 아이가 먼저 내게 말을 걸었다.“내가 너무 많이 울어 선생님도 속상했을 거라고 엄마가 말했어요. 미안해요. 사과할게요.” 아이가 나를 안아주었다. 아이와 나는 쿨 하게 악수를 나누었다. 문득, 그 선생님이 떠올랐다. 세월이 많이 흐르긴 했다. 죄송함과 함께 악수를 청해본다.


올 한해, 지나간 오해와 실수에 손 내밀 수 있는 시간들로 채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가 바지 주머니에서 조심스럽게 사탕 하나를 건넨다. 화해의 사탕이다. 유난히 달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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