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반성없는 지도자들이 국민을 힘들게 한다

남송우 고신대 석좌교수 2023. 12. 25. 03: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남송우 고신대 석좌교수

지친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낮은 산을 올랐다. 늘 푸른 모습을 지니고 서 있는 소나무 사이 사이로 낙엽 활엽수들은 가지에 마지막 잎새를 단 채 나목으로 서 있다. 시린 바람을 맨몸으로 받으며 하늘 향해 서 있는 그 모습에 두 손을 쳐들고 벌을 섰던 초등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학급의 한 친구가 잘못을 하면 담임 선생님은 전체 학생에게 벌을 내렸다. 모두 책상 위에 꿇어앉아 손을 높이 들고 있게 했다. 오래 손을 들고 있는 그 시간은 온몸을 괴롭히는 견디기 힘든 고통이었다. 한 사람으로 인해 우리 모두는 그렇게 힘든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하늘 향해 두 팔 벌리고 서 있는 듯한 형상의 나목을 바라보며, 몇 날 남지 않은 우리 사회의 지난 한 해를 돌아본다.

많은 사건과 사고가 있었지만, 역시 부산 사람들에게는 2030부산 엑스포 유치 실패가 가슴에 맺혀 있을 것이다. 올 한 해, 부산 전역은 온통 엑스포 유치를 위한 광고와 홍보물로 뒤덮였다. 엑스포 유치만이 부산 사람이 살길이고, 희망이라고 외쳐됐다. 시민의 열기가 유치전에 절대적인 승부수로 작용한다며 많은 시민을 수많은 행사에 동원하기도 했다. 지역신문도 이에 발 맞춰 엑스포 유치에 열을 올렸고, 이 모습은 흡사 지역의 유력 일간지가 마치 부산시의 홍보지로 비춰지기에 충분했다.

나라 안 모든 언론이 엑스포와 관련해서는 오직 한 목소리로 열을 올렸기에 부산 유치는 너무나 당연한 기정사실처럼 인식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허망했다. 나라 안팎으로 써댄 예산이며 유치 홍보를 위해 투자한 시간이 부끄럽고 민망할 정도였다.

정부나 정치권 역시 충격이 컸기에 대통령은 서둘러 사과문을 발표했다. 연이어 부산시장도 같은 맥락의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러나 유치전을 책임졌던 자들이 보여준 사과의 내용과 형식은 진정성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정치적 언설이었다. 한 마디로 그들은 반성을 하고 있지 않았다. 진정한 반성은 단순히 결과만을 두고 따지거나 입으로만 하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다. 원인과 과정을 제대로 짚고 문제가 무엇이었는지를 밝혀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반성은 빈 소리에 불과하다. 특히 실무 총책을 맡은 부산시장은 좀 더 구체적이고도 설득력 있게 그 원인과 과정을 해명해 주어야 했다. 유치전은 무위로 끝났지만 부산을 세계에 알리는 실적은 거두었다는 소리는 구차하다. 통절한 반성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재도전의 이야기까지 거론한다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런 일이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대통령이 부산을 찾았다. 부산발전을 위한, 과대포장된 말뿐인 선물보따리를 허공에 날리고 갔다. 대통령은 유치전의 실패가 어떤 전략상의 문제였고, 어떠한 잘못된 정보가 있었는지부터 밝히고, 그 책임소재를 분명히 해야 했다. 그러한 일이 선행된 연후에야 부산시민에게 제시한 부산발전의 미래상이 진정성 있는 비전이 될 수 있다. 자기성찰 없는 지도자가 남발하는 약속을 어느 누가 믿겠는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 중의 하나는 문제가 생기면 반성은 곧장 하는데, 그것이 말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문제는 문제대로 여전히 불씨처럼 남아 비슷한 유형으로 계속되는 악순환 속에 놓이게 된다. 지난해 일어난 이태원 참사도 아직까지 책임소재를 분명히 밝히지 못해 유가족이 여전히 추운 거리를 떠돌고 있다. 어느 사회든 구성원을 이끌어가는 지도자들이 상황의 유불리를 떠나 무한에 가까운 책임을 지는 풍토 속에서 그 사회의 건강함이 담보된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현 지도자들에게서 그러한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현주소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정치인들이 요지부동이라면 시민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 깨어있는 시민의 단합된 힘이야말로 이 상황을 타개해갈 수 있는 유일한 원동력이다. 문제는 지도자들의 진정성 없는 자기변명에 마치 물들기라도 한 듯 모두가 한통속이 되어간다는 것이다.


나목은 한겨울 동안 잎을 다 떨구고 벌거벗은 상태로 자신의 몸을 드러내며 반성의 시간을 가진다. 그러한 인고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새봄 새로운 모습을 드러낸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의 몇 날이라도 새해를 새롭게 맞이하기 위한 자성의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있길 기도하는 것은 나만의 헛된 꿈일까.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