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칼럼] 유엔 플라스틱 협약 대응전략 재점검해야

목진용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명예연구위원 2023. 12. 25.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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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진용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명예연구위원

유엔(UN) 플라스틱 협약을 마련하는 최종 회의가 내년 부산에서 열린다. 작년 3월에 열린 제5차 유엔환경총회(UNEA)에서 ‘유엔 플라스틱 협약’을 체결하기로 결의함에 따라 유엔환경계획(UNEP)은 내년 말까지 5차례 정부간협상위원회(INC)를 소집해 협약문을 완성할 계획이다.

지난 11월에 개최된 제3차 정부간협상위원회(INC-3)는 유엔환경계획에서 준비한 유엔 플라스틱 협약 초안을 처음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본격 조율에 들어간 첫 회의였다. 초안에는 플라스틱 생산량 감축, 재사용 목표 설정, 수명이 짧은 일회용 플라스틱 제품의 단계적 퇴출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핵심 쟁점은 ‘1차 플라스틱 폴리머 생산량 감축’이었다. 1차 플라스틱 폴리머는 석유 추출 원료로 만든 새 플라스틱으로, 재활용 기법으로 생산하는 재생 플라스틱과 구분된다. 1차 플라스틱 폴리머를 규제에 포함할 지와 규제 방식에 대해 국가 간 입장차가 있었다. 협약 초안의 다른 조항에 대한 이견도 많아 각국의 입장을 반영한 협약 2차 안을 만들어 다음 회의에서 논의하기로 하고 이번 회의는 끝났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플라스틱 오염 종식을 위한 우호국 연합(HAC)에 가입해 강력한 규제를 가진 협약 제정을 지지했었다. 그러나 이번 회의에서는 1차 플라스틱 폴리머를 규제에 포함하는 것에는 찬성했지만 국제적 감축목표 설정보다는 국가 자율적 목표 설정 방식을 주장해 생산량 감축에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 생산량이 세계 4위(1270만 t·에틸렌 기준)에 달하는 만큼 국내 산업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국제협약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국가대응전략은 국익 등을 고려해 바뀔 수 있다. 문제는 그 간의 유엔 플라스틱 협약 제정에 대한 정부 대응이 치밀하지 못하고, 대응 속도도 너무 늦은 감이 있다는 점이다. 이미 2019년부터 유엔 차원에서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국제 규범화를 위한 워킹그룹이 구성돼 총 5차례의 회의를 가졌으며, 플라스틱 생산량 감축도 이 워킹그룹의 논의대상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그 간 플라스틱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 등을 파악하지 않고 있다가 제3차 정부간협상위원회를 앞둔 금년 11월에야 ‘유엔 플라스틱 협약 대응 방향’을 정했다. 그 뿐만 아니라 정부는 ‘제조·생산부터 순환이용성 강화’ ‘재활용 확대’ 등과 함께 ‘일회용 플라스틱·포장재 규제’ 등을 지지한다고 밝혔지만 국내 정책은 실질적인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고, 심지어 정부부처 간 정책 조율도 매끄럽지 못하다.

최근 환경부는 식품접객업 매장 내 일회용컵 사용금지 규제를 철회하고, 플라스틱 빨대, 젓는 막대 등 일회용품 사용규제를 무기한 연기했다. 정부의 이런 결정은 당장 내년부터 시행하는 해양수산부의 어구보증금제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 어구보증금제도는 어구에 일정금액의 보증금을 부과해 판매하고, 반납할 때 그 금액을 돌려주는 제도다. 어민들은 보증금 부과로 인한 어구가격의 상승과 폐어구를 바다에서 수거해 트럭으로 집하장까지 운반하는 비용 등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어 환경부의 이번 결정은 이 제도 시행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유엔 플라스틱 협약 초안은 전주기에 걸쳐 플라스틱 상품 등의 종류와 수량에 대한 모니터링 조항이 있다. 협약이 제정되면 정부는 전주기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할 의무가 생긴다. 그런데도 정부는 2008년부터 전국 해안가 60개 정점에 대해 주기별로 시행해 온 국가 해안(플라스틱)쓰레기 모니터링 사업 예산을 내년부터 전액 삭감했다.


유엔 플라스틱 협약에 임하는 정부의 대응전략과 최근 시행되는 정부의 정책 간의 부조화는 우리나라 협상대응 전략의 실효성에 의문을 가지게 한다. 적어도 내년 4월 제4차 정부간협상위원회 이전까지는 플라스틱 산업계뿐만 아니라 어민 등 이해관계자, 육상과 해양 플라스틱에 대한 정부부처 간의 통합적 정책 대응을 고려해 ‘유엔 플라스틱 협약’ 대응전략을 세밀하게 가다듬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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