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이 총탄을 두 번 맞았다? 영화 ‘노량’과 실제 역사 비교해보니
1598년의 노량해전을 그린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가 개봉 나흘 만에 관객 100만명을 돌파하며 예매율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런데 임진왜란 최후의 해전과 이순신 장군의 죽음을 묘사한 이 영화가 어디까지 실제 역사에 부합하는 것인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실제와 허구의 경계를 분석해 본다(스포일러 있음).
①거북선이 노량해전에서 침몰했다?
영화에선 원균의 칠천량해전에서 침몰했던 거북선 2척이 노량해전에 깜짝 출전하고, 일본군이 조선군으로부터 노획한 화포를 쏴 거북선을 침몰시키는 것으로 묘사된다. 거북선이 노량해전에 등장했는지는 전문가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명량해전으로부터 1년 이상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이순신이 새로 건조했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임진왜란 중 일본 전함이 화포를 사용한 적은 없다. 당시 조선 전함은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고, 일본 측 기록에 4척을 침몰시켰다고 했으나 규모가 작은 배로 봐야 한다. 반면 일본 전함은 200여 척이 침몰됐고 100여 척이 나포됐다.
②고니시가 협공하려 출전했다?
순천에 있던 일본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가 시마즈 요시히로에게 구원을 청했고, 이순신이 고니시 대신 시마즈의 함대를 공격했던 것은 맞는다. 그러나 고니시가 협공을 위해 이순신 함대를 공격하러 가던 중 퇴각했다는 영화 속 묘사는 사실과 다르다. 고니시는 처음부터 협공을 포기하고 도주했다.
③치열한 백병전이 펼쳐졌다?
영화에선 근접전을 벌인 조선군과 일본군이 배 위에서 치열한 백병전(칼을 들고 직접 몸으로 맞붙어 싸우는 전투)을 벌이는 장면이 길게 묘사된다. 그러나 이민웅 대구가톨릭대 이순신학과 교수는 “당시 배에 올라 백병전을 벌이는 ‘등선 육박전’은 일본 수군이 쓴 전술이었고, 조선 수군은 총통을 쏴 적선을 깨뜨리는 ‘당파 전술’을 썼다”고 말했다. 일본군이 우리 배에 올라왔다면 이미 적의 전술에 넘어간 셈인데, 노량해전에서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명 수군이 이 전술에 당했고 명나라 장수 등자룡이 전사한 것은 사실이지만, 적장 시마즈가 등자룡의 목을 베고 명 제독 진린이 이순신의 배에 올라 구출되는 장면은 모두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한 허구다.
④이순신은 총탄을 두 번 맞았나?
이순신이 적의 총탄을 맞기 전 북을 쳐서 병사들을 독려하는 영화 속 인상적인 장면은 ‘선조실록’ 등의 기록을 근거로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두 차례에 걸쳐 적의 총탄을 맞았고, 첫 번째 총탄을 맞았을 때 “나는 괜찮다”며 10·26을 연상케 하는 말을 했다는 것은 허구다.
⑤열도 끝까지 쫓아가 항복을 받아야 한다고?
영화는 거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렇게 끝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열도 끝까지 쫓아가서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야 한다”는 이순신의 대사를 통해 그가 끝까지 전투를 벌이려 한 이유를 밝힌다. 노승석 여해고전연구소장은 “해전 직전 ‘이 원수를 갚을 수만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 기도하는 장면은 이순신 조카 이분의 ‘행록’에 나오지만 ‘열도 끝까지 쫓아가겠다’는 말은 어느 기록에도 없다”고 했다. 이순신이 마지막까지 전투를 벌인 진짜 이유는 전면 퇴각 후에도 여전히 재침략이 우려되는 일본군을 섬멸해 전투력을 최대한 약화시켜야 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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