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밥 먹는 장사꾼’의 미술사랑…부산 작가들, 전시회로 추앙하다

하송이 기자 2023. 12. 2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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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특정한 인물을 주제로 한 전시나 공연은 흔하다.

신 사장은 "언젠가 작가들하고 술 먹는 자리에서 작가들이 (이번 전시의 계획에 관해 말하며) 전시 어쩌고 하길래, '니 미쳤나' 그랬지. 나는 그냥 장사꾼인데. 사회사업가도 아니고 그냥 한 건데 부끄러워 문화계에 좋은 사람 많을 텐데 그래서 고맙지요. 이걸 계기로 사인화랑 정신도 이어가고 그러면 좋겠어요."(신 사장) 이욱상 교수는 "전시 작품 판매금액 절반은 후원금으로 적립할 계획"이라며 "이번 전시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바람이 불어 '아이러브○○' 시리즈로 이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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팸플릿 전문 인쇄소 신동배 사장

- 부산 유망주 발굴·잡지 발행 등
- 여러 문화운동 묵묵히 뒷받침

- 그 고마움에 작가들 의기투합
- 피카소화랑서 28일까지 전시
- 신 사장 그린 드로잉 등 선봬

사실, 특정한 인물을 주제로 한 전시나 공연은 흔하다. 수많은 업적을 쌓은 역사 인물이나 특출난 재능을 가진 예술인을 기리는 경우는 숱하다. 그런데 그 인물이 스스로를 ‘기름밥 먹는 장사꾼’이라 칭하는 인쇄소 사장님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대부분은 모를 이 사람. 대체 누구이길래 미술계 인사 30여 명이, 그의 이름을 딴 전시를 열고 무크지까지 발간하는 걸까.

전시 ‘아이러브신동’ 주인공인 신동문화사 신동배 사장이 자신을 그린 작품(김정호 작가의 ‘신동무나’)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하송이 기자


지난 22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피카소 화랑으로 향했다. 전시 ‘아이러브신동-我羅釜申東’을 보기 위해서다. 개막식이 열리기 몇 시간 전이었지만, 벌써 화랑은 방문객들로 북적였다. 모두 아는 얼굴들인지 연신 안부를 묻고 인사하기 바빴다. 이번 전시 기획 총괄을 맡은 이욱상 신라대 겸임교수와 전시장 귀퉁이에 마주 앉자마자 “오늘 주인공, 대체 어떤 분이시냐”부터 물었다.

신 사장(왼쪽에서 다섯 번째)과 이번 전시를 기획한 미술인들이 전시장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하송이 기자


“김정호 작가가 이런 말을 했어요. 우리가 대통령이나 왕 말고 평민을, 특별한 의도나 기획 없이, 오랜 세월에 걸쳐, 이렇게 많이 그린 예가 또 있느냐고. 그만큼 부산 작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거죠. 예술가보다 더 예술가 같은 분이고, 부산 미술을 사랑하는 분입니다.”

‘아이러브신동’ 전시의 주인공은 부산에서 수십 년 동안 인쇄소 신동문화사를 운영한 신동배 (68) 사장이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인쇄소에서 일했던 1970년대, 그때부터 그는 지역 작가들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엔 전시 팸플릿을 만드는 비용이 전시장 대관과 맞먹을 정도로 비쌌는데, 그런 ‘고가 서비스’를 그는 주머니 얇은 지역 작가들에게 ‘별것 아닌 양’ 제공했다. 그것도 아버지 몰래 장부를 빼내서. 처음엔 고교 동창 작가들로 시작했는데, 언제부터 그 대상이 부산 작가 전체가 됐다.

그의 주머니 사정이 딱히 넉넉한 것도 아니었다. 때마침 전시장에 도착한 주인공 신동배 사장에게 물었다. “팸플릿 그냥 찍어주고 하는 거, 쉽지 않으셨을 것 같은데요.”

“다들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는데, 사실 아버지가 하던 인쇄소는 망했어요. 문 닫고 2년쯤 산 타고 있던 어느 날 지역 작가들이 놀면 뭐 하냐고, 같이 하자고 하더라고. 그래서 새로 차린 게 신동문화사인 거예요. 그때는 작가들이 날 도운 거지. ”(신동배 사장)

1980년 초 당시 신 사장에게 이런 제안을 한 이들은 사인화랑 멤버들. 김응기 박은주 정진윤 안창홍(이후 예유근) 작가가 의기투합해 만든 사인화랑은 지역 대학 유망주를 선발해 전시를 여는 등 부산 현대미술에 크게 이바지했다. 다시 ‘기름밥’을 먹기 시작한 신 사장은 인쇄소 운영과 함께 1세대 평론가 묘비 세우기, 평론잡지 무료 발행 같은 문화운동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자처했다. 그의 이런 활동이 결국 ‘예술가가 사랑한 인쇄소 사장님’을 만든 셈이다.

10여 년 전 사석에서 제기된 ‘신동배 전시’ 아이디어는 2년 전부터 속도를 냈고, 올해 초 부산문화재단 지원이 확정되면서 급물살을 탔다. 10여 명이 기획단을 꾸려 자료와 작품을 모았다. 이 교수는 “모두 자발적으로”를 강조했다. 이렇게 모은 자료는 무크지로 탄생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강선학 미술평론가를 비롯해 30여 명 미술계 인사가 자신의 작품을 선뜻 내놓았다. 그 중엔 신 사장이 주인공인 작품도 많다.

이 전시에 대해 주인공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신 사장은 “언젠가 작가들하고 술 먹는 자리에서 작가들이 (이번 전시의 계획에 관해 말하며) 전시 어쩌고 하길래, ‘니 미쳤나’ 그랬지. 나는 그냥 장사꾼인데. 사회사업가도 아니고 그냥 한 건데 부끄러워… 문화계에 좋은 사람 많을 텐데… 그래서 고맙지요. 이걸 계기로 사인화랑 정신도 이어가고 그러면 좋겠어요.”(신 사장) 이욱상 교수는 “전시 작품 판매금액 절반은 후원금으로 적립할 계획”이라며 “이번 전시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바람이 불어 ‘아이러브○○’ 시리즈로 이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2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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