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故 윤기중 교수 마지막 논문의 교훈
“국가 미래에 통계 중요” 논문 써
보궐선거·엑스포 전략 실패
숫자 무시한 결과라고 말하는 듯
윤석열 대통령의 아버지 고(故) 윤기중(1931~2023) 연세대 명예교수는 세상 떠난 올해 8월 15일에 한 달 앞서 나온 ‘학술원 논문집’에 생애 마지막 논문을 실었다. 윤 교수가 ‘대통령 아들’을 두고 쓴 처음이자 마지막 논문이다. 김홍우 서울대 명예교수(정치학)는 필자도 속해있는 소셜미디어 단체방에서 최근 이 논문을 언급하고 “바로 지금의 윤석열 대통령에게 하고 있는 말”이라고 적었다. 안타깝게도 단체방에선 논의가 더 진전되진 않았다.
윤기중 교수의 마지막 논문을 찾아 읽었다. 학술원 논문집 62집 1호에 실린 논문의 제목은 ‘윌리엄 페티 경과 정치산술’. 17세기 영국 경제학자 윌리엄 페티(1623~1687)의 저서 ‘정치산술(Political Arithmetick)’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고 해설했다. 산업혁명보다 약 100년 앞서 1690년 출간된 책이지만 그저 옛날이야기는 아니다. 윤 교수는 “현시점에서 페티의 저서 정치산술을 고찰해 봄으로써 국가 경제의 미래 방향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필요성도 시사하고 있다”고 했다.
논문에 따르면 페티의 ‘정치산술’은 영국의 권위를 높일 수 있는 조건과 방법을 제안하고 이를 논증한 책이다. 윤 교수는 페티의 주장을 이렇게 요약했다. “국토가 좁고 인구가 비록 적어도 그 위치와 산업 그리고 정책 여하에 따라 국부와 국력은 많을 수 있고, 국토가 넓은 나라와 대적할 만하다는 것을 통계적으로 논증하고 있다.”
페티는 당시 네덜란드 연합국의 두 지역 홀란드·질란드를 프랑스와 비교한다. “홀란드·질란드에 비해 프랑스 왕국은 인구는 13배, 국토 면적은 80배이지만 국력은 3배밖에 되지 않는다”면서 이를 산술적 통계를 들어 입증한다. 페티는 “유럽의 선박은 모두 200만톤으로 이 가운데 잉글랜드 것이 50만톤, 홀란드 것이 90만톤, 프랑스 것이 10만톤”이라며 홀란드·질란드가 훌륭한 성취를 이룬 이유를 ①환경적 위치 ②산업 ③제도와 정책에서 찾았다. 윤 교수는 “소국이라 할지라도 위치와 산업 정책으로 대국과 맞먹을 수 있는 국부를 창출할 수 있다”고 적었다.
영국과 프랑스의 국력도 숫자를 바탕으로 비교한다. 인구·영토는 물론이고 감자, 과일, 가금류, 생선, 아연, 주석, 철광석 등의 가치까지 상세히 따진다. 페티는 “잉글랜드 사람들은 한 사람당 평균적으로 프랑스 사람들보다 3배나 많이 외국 무역 거래를 하고 있다”고 평가하고, 국력 증진에 방해가 되는 요인, 즉 잉글랜드·스코틀랜드·아일랜드로 나뉜 정치적 분열 등을 극복하고 일자리 창출로 실업 문제를 해결하면 국력은 더 커질 것이라고 했다.
17세기 유럽의 복잡한 통계와 숫자가 나오는 윤 교수의 논문을 읽는 건 상당한 인내가 요구되지만 결론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윤 교수는 “통계가 없는 현대 국가를 상상할 수 없는 현시점”을 말하면서 “페티의 연구 방법인 수리를 근거로 한 대량 관찰을 토대로 한 통계”가 “국가 경제의 미래 방향”에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연세대 응용통계학과 교수를 지낸 윤기중 교수가 국가의 미래에 통계의 중요성을 언급한 점은 당연한 듯하지만 92세 노학자가 생의 마지막 순간 혼신의 힘을 다해 이런 논문을 쓴 것은 앞서 김홍우 교수 언급처럼 윤석열 대통령에게 주는 전언(傳言)은 아니었을까. 자기만 정의롭다는 허상을 바탕으로 숫자와 통계를 조작한 전 정부는 끝내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최근 여당의 보궐선거 패배와 정부의 엑스포 유치 실패 역시 자신만의 희망 사고를 바탕으로 숫자와 통계를 무시한 결과는 아닌가. 윤 교수의 마지막 논문은 ‘대통령 아들’에게 이렇게 묻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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