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덕이 만난 사람] 가미카제였던 日농부에게도 젖소를… ‘노아의 방주’는 ‘평화의 방주’였다
‘한 잔의 우유 대신 한 마리의 소(Not a cup, but a cow)’라는 구호는 1944년 미국 농부 댄 웨스트가 창시한 ‘헤퍼 인터내셔널(Heifer International)’의 철학이다. 미국 아칸소에 본부를 둔 헤퍼는 ‘노아의 방주’라는 작전명으로 6·25 직후 폐허가 된 한국에 가축 3200마리와 유정란 21만개, 꿀벌을 보내 농·축산업의 기반을 다지게 했다.
조영이(69)씨는 “댄 웨스트는 지극히 단순한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꾼 사람”이라고 했다. “남편에게 댄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말을 떠올렸어요. 단순함이란 궁극의 정교함이다(Simplicity is the ultimate sophistication). 한 잔의 우유는 사라지지만 한 마리의 소를 키우면 매일 우유를 마시면서도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으니까요. 이토록 심플하면서도 완벽한 신념이 또 있을까요?”
조씨는 댄 웨스트의 한국인 며느리다. 둘째 아들 필립 웨스트의 아내로, 미 유학 중 만난 필립과 결혼해 1남1녀를 두었다. 헤퍼 창립 80주년을 앞두고 한국에 온 그는 “내가 미국으로 떠난 70년대만 해도 극빈국이었던 한국이 다른 나라 농부들에게 가축을 선물하는 ‘패싱 온 더 기프트(Passing on the gift)’의 주역이 돼 큰 감명을 받았다”고 했다. 헤퍼 코리아(Heifer Korea)는 2022년 네팔에 젖소 101마리를 보냈다.
◇도움받는 이들의 존엄
-댄 웨스트에게 한국인 며느리가 있는 줄 몰랐다.
“인디애나 대학에서 공부할 때 동양학센터 소장이던 남편을 만났다. 필립은 중국사 연구자로, 하버드에 동양학 연구소를 설립한 석학 존 페어뱅크의 제자다.”
-헤퍼와 한국의 인연으로 서로에게 끌린 걸까.
“좀 더 가까워지는 계기는 됐겠지만, 필립은 날 만나기 전부터 한국학에 관심이 많았다(웃음). 인디애나 대학에 한국학과를 개설하려고 백방으로 뛴 사람이다.”
-댄 웨스트를 직접 보셨나.
“아버님은 1971년에 돌아가셔서 뵙지 못했지만 남편과 그의 가족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사진앨범 속 댄은 정말 미남이더라(웃음). 내 아들 이름도 댄 웨스트로 지었다. 할아버지처럼 살라고.”
-헤퍼는 폐허가 된 한국에 자립의 씨앗을 뿌렸지만 우리는 댄 웨스트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
“댄 웨스트는 인디애나주에서 농사를 짓던 청년이다. 1938년 스페인 전쟁에 참전했는데 도저히 총을 쏠 수가 없어 전쟁고아들에게 우유 보급하는 일을 했다고 한다. 더 많은 아이에게 우유를 나눠줄 수 없었던 안타까움이 댄이 암송아지란 뜻의 헤퍼(heifer) 프로젝트를 시작한 바탕이 됐다. 남편에게서 ’한 잔의 우유 대신 한 마리의 소’라는 모토를 듣는 순간 어릴 적 한국 학교에서 구제품으로 받아 먹던 옥수수빵이 떠올랐다. 아주 맛있었지만 동정을 받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헤퍼의 철학은 그래서 탁월하다. 그들은 도움을 받는 이들의 존엄(dignity)까지 지켜준 것이다. 소를 키워 가난한 이웃에게 선물하는 자부심도 갖게 해줬다.”
◇가미카제 농부와의 만남
-댄 웨스트는 부농(富農)이었나?
“소 두세 마리를 키우던 평범한 농부였다. 그러나 전쟁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실현하고자 이웃 농부들과 헤퍼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한 재력가가 아칸소의 땅을 기부했고, 그곳에 본부와 목장을 지었다.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한국에 노아의 방주 작전을 실행한 사람은 설 메츠거였다.
“설 메츠거는 가축을 운반하는 봉사자였다가 헤퍼의 사무총장이 된 분이다. 댄 웨스트가 헤퍼의 비전을 제시한 철학자라면 메츠거는 실무 집행가였다.”
-가축을 운반하는 봉사자들은 농민이었나?
“농민이 많았지만 의사, 상원 의원, 고등학생까지 다양했다. 이들을 ‘항해하는 목동(Seagoing cowboys)’이라 불렀는데, 현지로 가는 동안 배에서 가축을 돌보고 현지 농민들에게 농업 기술, 목장 기술까지 전수한 뒤 돌아왔다. 지난 80년동안 20국에 7000명이 넘는 목동이 파견됐다.”
-남편 필립도 대학생때 헤퍼의 목동으로 봉사했다던데.
“다섯 살 때부터 소를 키우며 자라 가축 돌보는 데는 선수였단다(웃음). 필립은 일본으로 갔다. 헤퍼는 2차 대전 패전국인 일본·독일·이탈리아에도 가축을 보냈다. 필립에게 소를 전달받은 일본 농부는 놀랍게도 가미카제 특공대원이었다.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그는 헤퍼에서 받은 젖소 1마리로 훗날 홋카이도에서 가장 큰 우유업체를 일궜다고 한다. 냉전으로 꽁꽁 얼어붙은 세계에 헤퍼는 평화를 심었다.”
◇프란체스카 여사와 ‘노아의 방주’
-’노아의 방주 작전’에 프란체스카 여사의 노력이 있었다더라.
“나도 헤퍼 코리아 이혜원 대표를 통해 최근에 알게 됐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1948년부터 2년 동안 헤퍼에 도움을 청하는 편지를 띄웠고, 헤퍼는 1951년 가을 실사단을 꾸려 한국에 들어온다. 이듬해 종란을 시작으로 꿀벌이 들어오고 돼지·염소 같은 가축이 운반된다. 80년대 초반 한국에 있던 닭의 50% 이상이 이때 들어온 종란에서 부화한 것이라니 놀랍지 않은가.”
-부산 애아원, 이사벨 보육원, 마산 애리원 등지에도 가축을 보냈다던데.
“헤퍼는 전쟁으로 집과 가족을 잃은 이들에게 주목했다. 돼지, 닭, 염소 등을 보내 아이들의 영양분을 공급하고 어릴 때부터 가축 돌보는 법을 배우게 했다.”
-1960~70년대엔 연세대, 서울여대 등 대학 5곳에도 암소를 보냈다.
“1962년 연세대에 기증한 암송아지 9마리와 황소 1마리는 국내에서 둘째로 역사가 긴 유가공업체인 연세우유가 시작된 기반이 되었다고 한다. 서울여대엔 1963년 5마리를 기증했는데, 여학생들이 젖소 키우는 모습을 육영수 여사가 와서 격려하는 사진을 이번에 와서 봤다.”
-연세우유를 마시면 연세대에 들어간다는 우스갯말이 있다.
“하하하, 그런가? 그런데 난 이번에 한국에 오면서 ‘신의 개입(divine intervention)’이란 말을 자주 떠올렸다.”
-신의 개입이라니?
“연세유업은 백낙준 당시 총장이 1959년 부지를 매입하면서 창설됐다. 그로부터 20년 뒤 남편 필립이 인디애나대학에 한국학을 개설하려 분투할 때 기금을 마련해 준 분이 백 총장의 아들 백창익씨다. 한국학 개설에 일본학·중국학 교수들이 완강히 반대하고 대학 측도 예산이 없다며 난색을 표하자 인디애나에서 사업을 하던 백창익씨가 발 벗고 나선 것이다. 그분이 시카고 한인회까지 연결해 기금 운동을 펼쳤고 필립은 마침내 한국학을 개설한다. 댄 웨스트가 보낸 젖소로 백낙준은 연세우유를 만들고, 몇 십 년 뒤 백낙준의 아들은 댄의 아들을 도와주게 되니 창조주의 개입이 아니고 무엇인가(웃음).”
◇'사랑의 목동’이 되어 주세요
-스물넷이던 1978년에 한국을 떠났더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외환은행과 이스라엘·호주 대사관에서 일했다. 할아버지가 여자는 대학에 보내지 않으셨다(웃음). 유엔과 세계은행에서 일해보고 싶어 무작정 모험을 시도했다.”
-박사 학위를 받을 때까지 남편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던데.
“내 힘으로 할 수 있으니까(웃음). 필립이 학비를 대주겠다고 했지만 거절했다.”
-몬태나 대학 NTSG(Numerical Terradynamic Simulation Group) 연구소의 프로그램 디렉터로 20년 일했다.
“나사(NASA)와 협업해 지구를 모니터링하는 테라와 아쿠아 위성을 원격 감지하며 기후 변동성과 생태계 복원에 관한 연구를 하는 곳이었다.”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와 인연이 깊다던데.
“필립은 다른 나라, 다른 문화를 몰라서 생기는 공포가 전쟁의 한 요인이 된다고 믿었다. 몬태나 대학 맨스필드연구소 소장으로 있을 때 네 차례에 걸쳐 ‘아시아에서의 미국 전쟁(America’s Wars in Asia)’ 세미나를 연 이유다. 그중 ‘한국전’ 세미나를 서지문 교수와 조직했다. 박완서·윤흥길·이문열 작가와 백선엽 장군이 오셔서 전쟁이 인간의 의식에 끼친 영향을 분석했다. 6·25 때 끊어진 대동강 다리를 건너는 피란민들을 찍어 퓰리처상을 받은 맥스 데스포 AP통신 기자도 참석했다. 남편은 서지문 교수가 번역한 한국 문학의 애독자였다.”
-필립의 어떤 점을 사랑했나.
“그는 자기 아버지처럼 평화주의자였다. 댄 웨스트가 자선을 통해서였다면, 필립 웨스트는 학문을 통해 평화를 추구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 나는 애들은 엄하게 길러야 한다고 믿어서 가끔 소리도 지르는 한국 엄마인데, 남편은 ‘제발 애들한테 소리 좀 지르지 말라(Please don’t yell at the kids)’며 감싸고 돌았다. 우리가 싸우는 유일한 이유였다(웃음).”
-댄 웨스트는 그 어머니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더라.
“대공황 때 댄의 어머니는 매일 빵을 구워 길가에 내놨다고 한다. 서부로 떠나는 배고픈 이들이 수치심을 느끼지 않고 집어 갈 수 있도록. 헤퍼의 시작인 셈이다. 이런 일화도 있다. 댄이 하루는 마을 학교에 가서 헤퍼와 기부의 힘을 이야기하면서 바지 한 벌이라도 이웃과 나누자고 했단다. 그러자 아들 필립이 울상을 짓더란다. 바지가 두 벌밖에 없었기 때문이다(웃음). 자기도 넉넉하지 않지만 자기보다 더 가난한 이웃과 나누는 삶이 웨스트 집안의 전통이었다.”
-웨스트 집안은 헤퍼 인터내셔널에 관여하지 않나?
“남편의 누나인 재닛이 지난 봄 세상을 떠난 뒤로는 누구도 관여하지 않는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할 뿐이다.”
-11년 전 세상을 떠난 필립의 일기장엔 헤퍼의 역사가 담겨 있다더라.
“그렇잖아도 헤퍼 코리아에서 남편의 일기를 버리지 말아 달라고 신신당부하고 있다(웃음).”
-일기를 열어 보셨나.
“그리워질까 봐 아직…. 아들과 딸이 먼저 읽더니 아빠가 일본으로 가축을 운송할 때 배의 선원들이 하도 험한 말과 욕설을 해대서 자기 방으로 도망가 기도를 했다는 대목이 나온단다, 하하!”
-헤퍼 코리아(www.heiferkorea.org)를 모르는 이들에게.
“헤퍼 코리아가 한국의 농부들과 함께 네팔에 젖소 101마리를 보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온몸이 떨릴 만큼 자랑스러웠다. 더 많은 분이 헤퍼를 통해 ‘사랑의 목동’이 되어주시면 좋겠다.”
☞조영이
1954년 서울 출생. 고교 졸업 후 외환은행과 이스라엘대사관·호주대사관에서 근무하다 1978년 미국으로 갔다. 인디애나대학에서 경제학과 동양학을 전공한 뒤 MBA를 했고, 몬태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몬태나 대학 NTSG 연구소의 프로그램 디렉터로 20년간 일하다 2017년 은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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