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화 어때] 사카모토 류이치 아들이 찍은 아버지 사카모토의 마지막 연주, 영화 ‘오퍼스’
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34번째 레터는 오는 27일 개봉하는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입니다. 영화감독 인터뷰 기사가 25일 성탄절 저희 신문 지면에 실렸는데요, 제겐 다소 특이한 인터뷰였습니다. 왜냐구요. 아래에 그 이유를 말씀드릴게요.
먼저 한 가지. 27일 개봉하는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는 콘서트 영화입니다. 다큐멘터리 아니고요. 내내 연주만 나와요. 혹시나 사카모토 류이치(성은 사카모토, 이름은 류이치. 한국&일본식으로 쓰겠습니다)의 일생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로 오해하실 수 있어 말씀드려요. 103분간 연주만 나오기 때문에 귀로 느끼는 영화가 취향이 아니신 분들은 지루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호. 이 영화 감독 소라 네오(성은 소라, 이름은 네오)가 “지루하면 보다 꾸벅꾸벅 졸아도 좋다”고 하네요. 저희 신문 인터뷰에서요. 서면 인터뷰였는데 답변지를 읽다가 “지루하면 졸아도 좋다”는 부분에서 혼자 빵 터졌습니다. 그 답변 한 줄에도 얼마나 진한 애정이 느껴지던지.
네, 애정이 진할 수밖에 없죠. 소라 네오는 사카모토 류이치의 아들이거든요. 저도 이번에 인터뷰 진행하면서 자료 찾아보다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난관이 있었어요. 두 사람의 관계, 특히 본인이 아들이라는 걸 알리지 말아달라고 해서요. 실제로 영화 홍보 측에서도 둘의 관계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 6월 출간된 사카모토의 마지막 저서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에도 아내나 아들에 대해서는 에둘러 표현합니다.
하지만 신문 인터뷰는 다르죠. 지엄한 독자가 있으니까요. 둘의 관계를 밝히지 않고 어떻게 독자에게 인터뷰 내용이 제대로 전달될 수 있겠습니까. 설득 끝에, 아들이라는 점은 밝히기로 했습니다. 단, 가족 관계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고요. 사람 사는 세상, 각자 가족사에 사연 깊은 골짜기가 한 두개쯤 있을 수 있는 법. 그 정도는 양해를 하고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오퍼스’는 음악을 좋아하신다면 무척 감동하실 작품이에요. 아들이 얼마나 열심히 만들었겠습니까. 흑백 화면을 채택한 것도 매우 적절했어요. 피아노가 사카모토인지 사카모토가 피아노인지, 어느새 하나가 된 경지에서 우리가 잘 아는 여러 곡이 나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 ‘마지막 황제' 포함해서요. 어떤 콘서트보다 심장 가까이 느껴지는 연주를 만나실 수 있을 거에요. 죽음을 앞둔 음악가가 자청해 기록한 마지막 콘서트. 거기에 아들의 애정과 존경까지 실렸으니 남다르지 않을 수 없겠죠.
한국에서 전 세계 최초 정식 개봉인데, 한국에 와서 (반강제적으로) 홍보성 애정을 드러내는 일부 스타와 달리, 사카모토는 실제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지극했기에 더 반갑습니다. 보신다면 돌비 애트모스관을 추천합니다. 음악 영화라 일반관에서 보시면(들으시면) 아쉬우실 거에요.
다음 레터가 올해 마지막 레터가 되겠네요. 고작 35번째를 보내면서도 마지막이라는 단어에 맘이 쓰이는데 거장의 마지막 무대는 말해 무엇할까요. 이상, 사카모토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를 들으며~ 자세한 인터뷰 내용은 사진 바로 아래에. 클릭하기 귀찮으실까봐 링크도 달고 아래에 내용도 붙이겠습니다. 편하신 쪽으로 읽어봐주세요. ‘그 영화 어때’ 독자 여러분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되시길.
아버지의 마지막 연주 기록한 사카모토 아들
“한 번 더 납득할 만한 작품을 남기고 싶다. 맡아달라.” 지난 3월 암으로 작고한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는 죽음을 반 년 앞둔 작년 9월 한 영화 감독에게 자신의 마지막 연주를 찍어달라고 했다. 부탁을 받은 감독은 조건을 걸었다. “평소에 즉흥적으로 연주곡을 정하는 경우가 많으셨는데, 이번엔 레퍼토리를 빨리 정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요청이었다. 사카모토는 지난 6월 출간된 마지막 저서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에서 ‘감독이 상당히 엄격한 분이라 꽤 이른 단계부터 레퍼토리를 정해야 했다’며 당시 긴장했던 상황을 술회했다.
아시아인 최초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를 긴장하게 한 감독은 소라 네오(空音央). 사카모토의 아들이다. 두 사람이 부자(父子) 관계라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소라 감독은 부친의 마지막 연주를 담은 영화 ‘류이치 사카모토: 오퍼스’ 개봉을 앞두고 본지 서면 인터뷰에서 “저와 아버지의 관계가 아니라, 아버지의 영화로 관심이 모였으면 좋겠다”며 가족 관계에 대한 질문은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오퍼스’의 제작 총괄은 사카모토의 매니저이자 아내인 소라 노리카(空里香). 거장은 세상에 남기는 작별 인사를 아내와 아들에게 맡겼다.
소라 감독은 인터뷰에서 “아버지 부탁을 받았을 때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며 “그분의 마지막 존엄을 담으려고 노력했다”고 했다. 예술가 아버지는 마지막 순간에도 아들에게 전에 몰랐던 면모를 보여줬다. 소라 감독은 “이번 영화를 찍고 나서 그분이 감정과 이성 사이에서 생겨난 모순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작곡가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답했다.
촬영은 작년 9월 8일부터 8일간 진행됐다. 클래식, 얼터너티브, 전자음악을 넘나들며 실험을 멈추지 않았던 사카모토가 자신의 50년 음악 인생을 보여주는 20곡을 직접 선곡했다. 영화음악 데뷔작인 ‘전장의 크리스마스’(1983)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 ‘마지막 황제’(1987), 지난달 개봉한 영화 ‘괴물’에 흐르는 ‘아쿠아’ 등이 이어진다. 소라 감독은 “각 곡을 1~3번 촬영해 완성했는데, 좋은 연주는 일회성이기 때문에 놓치지 않기 위해 카메라가 돌 때마다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영화는 흑백이다. 색(色)이 지워진 자리에 피아노와 하나로 이어진 사카모토와 음악만 남았다. 사카모토는 조명을 따라 모습을 드러내거나 어둠에 잠기며 떨리는 손으로 작별을 연주한다. 소라 감독은 “시각 정보를 줄여 음악과 소리에 보다 더 집중하게 했다”며 “피아노와 사카모토 류이치의 몸이라는 신체성에만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고 했다.
아들은 아버지의 한계까지 그대로 기록했다. 한 부분에서 사카모토가 힘이 부친 듯 가쁜 숨을 내쉬며 얼굴을 감싸는 장면이 있다.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주저하기도 한다. “잠시 쉬고 합시다, 좀 힘드네”라는 말도 한다. 그가 20대에 전자음악 밴드인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를 이끌며 만든 ‘동풍’(東風, 1978) 연주는 원곡보다 박자가 다소 느리다. 소라 감독은 “과거에는 빠른 템포로 연주했지만, 당시 몸 상태로는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다, 건반 터치가 잘못된 부분이 꽤나 많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며 “관객에게 그분의 한계까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는 오는 27일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정식 개봉한다. 소라 감독은 “아버지께서 한국 사람, 문화, 역사를 매우 좋아하셨고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라며 “이렇게 한국 분들께 보여드리는 것을 매우 기뻐하실 것 같다”고 말했다. 사카모토는 타계 직전까지 병실 침대 정면에 한국 단색화 대가 이우환 화백의 그림을 걸어 놓는 등 한국 문화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사카모토는 촬영이 끝난 후 “하루에 몇 곡씩 집중해서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며 “죽기 전에 만족할 만한 공연을 녹음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아들에 대한 사랑을 담은 한 마디도 잊지 않았다. “좋은 작품이 되었다. 자랑스럽다.”
영화는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며 끝난다. 사카모토가 세상이라는 무대를 떠나는 소리다. 이어 그를 위한 조종(弔鐘)인 듯 풍경(風磬) 소리가 뒤따른다. 소라 감독은 “영화를 보다 졸리면 주무셔도 된다”며 “사카모토의 마지막 연주를 함께한다는 느낌으로 지켜봐 주신다면 그것만으로 감사하다”고 했다. 신정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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