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도 산타가 올까요? [사이공모닝]
5년 전 처음 베트남에 발을 디뎠습니다. 그야말로 우당탕탕거리며 베트남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니는게 취미입니다. 우리에게 ‘사이공’으로 익숙한 베트남 호찌민에서 오토바이 소음을 들으며 맞는 아침을 좋아했습니다. ‘사이공 모닝’을 통해 제가 좋아하던 베트남의 이모저모를 들려드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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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호찌민시 1군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이 이번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황금색 조명으로 화려하게 빛을 밝혔습니다. 프랑스 건축가에 의해 1880년대 만들어진 이 성당은 호찌민시의 상징적인 건축물이자 대표적인 관광 명소입니다. 저 역시 친구들이 오면 노트르담 성당을 호찌민 시내 투어의 첫 코스로 잡곤 했지요.
노트르담 대성당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꾸며진 것은 보수 작업이 시작된 지난 2017년 이후 처음입니다. 60m 높이의 종탑 두 동을 뒤덮고 있던 비계(飛階·공사를 위해 설치한 임시가설물)에 조명이 둘렸고, 종탑 사이에 예수의 탄생을 의미하는 상징인 ‘베들레헴의 별’이 자리 잡았습니다. 교회 내부는 예수 탄생 장면을 재현한 장식품으로 꾸며졌지요.
사진 찍기 좋아하는 베트남 사람들은 올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오랜만에 예쁘게 꾸며진 노트르담 대성당 앞에 몰렸다고 합니다. 네오 로마네스크 양식을 띤 프랑스풍 건축물인 이 성당은 기념사진을 촬영하기에 제격이지만 수년째 이어지는 보수 공사로 제 모습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올해 완공을 목표로 했던 보수 작업은 아직 50%밖에 이뤄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코로나 이후 급격히 증가한 공사 비용으로, 완공 시기가 2027년으로 미뤄졌지요.
베트남에서는 크리스마스가 빨간 날(공휴일)이 아닙니다. 성당을 찾는 이들의 대부분은 종교적인 이유보다는 아름답게 변신한 성당 앞에서 사진을 찍기 위한 목적이지요. 뭐,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가져다줄 거라 믿으며 작은 양말을 걸어놓고 자는 어린 아이들은 많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건 종교의 영역이 아니라 1년 동안 울지 않고 부모 말을 잘 들은 것에 대한 보답일 테니까요. 날이 더운 베트남 남부 지역에 오는 산타 할아버지는 땀을 좀 흘리시겠네요.
◇베트남 사람이 주로 섬기는 종교는, 조상님?
사회주의 국가인 베트남이지만 공식적으로는 종교의 자유를 표방합니다. 동네 곳곳에서 성당은 물론, 불교 사원도 쉽게 찾아볼 수 있지요. 베트남에 놀러 가 본 분이라면 그 지역에 유명하다고 알려진 성당을 가본 적도 있을 겁니다. 네오 고딕 양식과 베트남 양식이 혼합된 건축물로 유명한 하노이 성 요셉 대성당이나 핑크 성당이라 불리는 다낭 대성당 등 지역마다 성당이 하나의 관광 명소가 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베트남 택시에서 불상이나 천주교 묵주 팔찌 같은 것이 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기도 합니다.
인근 국가인 태국은 불교, 필리핀은 천주교 국가로 분류되곤 합니다. 하지만 베트남의 경우 국가를 대표하는 주도적인 종교가 없습니다. 주베트남 한국대사관 등은 베트남의 종교에 대해 “전체 국민의 6.1%가 천주교, 4.8%가 불교”라고 안내하고 있지요. 과거 다른 종교 단체의 조사에서는 불교(10.5%), 천주교(9%), 개신교(0.8%) 등의 숫자 분포가 나오기도 했지만, 주도적인 제1의 종교가 없다는 건 똑같아 보입니다.
그럼 베트남의 나머지 국민은 종교를 믿지 않는 걸까요? 종교를 믿지 않는다는 말보단 도교·유교 등을 기본으로 한 전통적인 무속·민간 신앙을 믿는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보살핌과 덕을 바라고, 집을 지켜주거나 운명을 관장하는 신이 있다고 믿는 전통 신앙이지요. 종교와 관계없이 새해에 신당을 찾아 복을 빌거나 탑을 돌며 절하는 것이 모두 이런 전통 신앙을 기반으로 합니다.
베트남 집마다 놓인 ‘제단’도 이런 관습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집은 물론, 가게 한 편에도 작은 제단을 만들어두곤 하죠. 베트남 사람들은 이렇게 마련한 제단에서 매일 조상께 신선한 과일과 간단한 먹을거리를 바치며 향을 피우고 기도를 합니다. 아마도 평안한 하루를 부탁하는 거겠죠. 우리나라의 ‘초코파이’가 베트남에서 제사 음식으로 인기라는 이야기는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기업마다 제사를 지내는 비용을 따로 배정해두고 공식적으로 처리하기도 합니다.
귀신 이야기나 미신도 많습니다. 어디에 가면 귀신이 나온다, 어떤 행동을 하면 화를 입는다 같은 것들 말이죠. 숫자 4를 꺼리는 것도 우리와 비슷하고, 자동차를 처음 샀을 때나 가게를 처음 열었을 때 성대하게 제사를 지내는 것도 비슷합니다. 코로나 때는 ‘귀신 나오는 건물’로 유명했던 호찌민 투언 끼에우 플라자가 격리 장소로 지정되면서 “귀신 나오는 건물에 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코로나에 걸리면 안 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지요.
◇조심, 또 조심
1986년 도이머이 정책으로 불리는 개혁·쇄신 노선을 시행하면서 1992년 베트남 정부는 헌법으로 신앙과 종교의 자유를 더 명확히 합니다. 이후 사원과 사찰, 교회 등이 신자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고, 석가탄신일 같은 날도 부활합니다. 현재는 상대적으로 적은 규모이지만 개신교를 믿는 사람들도 있고, 베트남에서 처음 만들어진 신흥 종교를 믿는 이들도 있습니다.
최근 한국에서 종교 활동을 이유로 베트남을 찾는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선교 등을 이유로 베트남에 찾아오시는 것이지요. 저도 베트남에 갈 때 종교 활동을 하러 가는 분들과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간 적이 있습니다. 종교 활동이야 누가 막을 수 있겠느냐마는, 여전히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 베트남에 등록된 종교만 인정할 뿐 아니라 다수가 모이는 집회에 굉장히 민감합니다.
일부 종교 단체의 경우 한국 기업에 취직하고 싶어하는 베트남 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쳐주거나 한국 문화를 알리는 프로그램 등으로 포장해 포교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 2022년 베트남 정부는 직업 훈련을 빌미로 한 포교활동을 금지하는 시행령을 제정했습니다.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베트남이지만, 세세한 법령을 전부 파악할 수 없다면 여전히 종교 모임은 신중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이번 뉴스레터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아름답게 꾸며진 호찌민 노트르담 대성당 이야기를 하다가 종교 이야기까지 나아가버렸습니다. 종교와는 별개로, 뉴스레터를 구독해 주시는 모든 분이 행복한 크리스마스, 벅찬 연말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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