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경험, 성장… 인생의 ‘콩쿠르 같은 순간들’[오늘과 내일/손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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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우승한 지난해 밴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크레센도'가 20일 개봉했다.
2015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파이널리스트'(2019년)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은 우승자 발표 과정에서 벌어진 해프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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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속 자신 직시하는 시간, 통찰력 키워
역대 최연소(18세)로 우승한 임윤찬이 땀으로 머리카락이 흠뻑 젖은 채 연주하는 모습은 수차례 봤음에도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건반을 두드리는 손등에 떨어져 순간순간 빛에 반사되는 땀방울은 그 뜨거움을 고스란히 전했다.
놀라운 건 연주만이 아니다. 덥수룩한 머리에 여드름이 드문드문 난 앳된 소년이 단어를 곱씹듯 천천히 하는 말 역시 그렇다. “고립되고 외로운 순간에 음악의 꽃이 핀다고 생각해요.”
다른 참가자들도 가슴에 꽂히는 말을 한다. “콩쿠르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에요”, “해낸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해요”, “떨어진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에요”, “1등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얼마나 깊은 음악을 할 수 있는지 스스로 검증해 보고 싶어요”…. 우리네 삶에 적용해도 될 울림을 준다.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 경험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라는 걸 온몸으로 겪은 후에야 깨닫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평소 오전에는 잠을 자느라 연주를 해 본 적이 없다는 벨라루스의 피아니스트 데니스는 오전에 경연이 열린다는 공지에 당황한다. 그는 “경험이 왜 중요한지 알게 됐다. 나의 루틴을 돌아보고 있다”고 말한다.
혼자 피아노를 쳤던 이들은 결선에서 오케스트라와 협연하게 된다. 자기만 잘하면 되는 솔로 무대와 달리, 협연은 수십 명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춰야 한다. 오케스트라 연주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서로 조율해 나가야 한다.
2015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파이널리스트’(2019년)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은 우승자 발표 과정에서 벌어진 해프닝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이 1위를 한 이 대회에는 이지윤도 참가했다. 이지윤은 1위를 호명하자 자기 이름으로 잘못 듣고 벅차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우승자는 그가 아니었다. 이후 인터뷰에서 이지윤이 한 말은 뜻밖이었다. “1위인 줄 알았던 그 1분 동안 행복했습니다.”(이지윤은 2017년 독일 명문 악단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종신 악장으로 임명됐다. 동양인 여성 최초이며 역대 최연소(25세)다.)
10대인 임윤찬을 비롯해 20, 30대인 이들이 어떻게 이런 통찰을 할 수 있을까.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오롯이 스스로 견뎌야만 하는 순간이 이들에게 깊은 사유를 하게 한 건 아닐까. 긍정적인 자극을 주는 이들을 만나 자신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집중하며 마음을 다잡는 과정은 수행과도 닮았다. 경연 시간엔 오직 현재만이 있다. 그 순간 온 힘을 다해야 한다. 끝난 후에는 돌이킬 수 없다. 받아들여야 한다. 일각에서는 예술에 어떻게 순위를 매기느냐며 콩쿠르에 비판적인 의견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콩쿠르가 참가자를 성장하게 만드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예술가가 아니라도 우리는 살면서 ‘콩쿠르 같은 순간들’을 맞는다. 철저히 혼자여서 외롭고 두렵지만 스스로 해야만 하는 때를. 사유의 깊이와 내공은 그 순간들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손효림 문화부장 arys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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