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는 캡틴 코리안의 시대 [무비줌인/임현석]
이들 영화 속 한국형 히어로들은 누구보다도 철저한 국가관에 입각한 원칙론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범죄도시3에서 주인공 형사 마석도(마동석)는 범죄 조직이 서울 한복판에서 마약을 판매하고 있다는 걸 알고 말한다. “나쁜 놈들은 잡아야 돼.” 수사 방식이 무리하다는 상부 지적에도 초인적인 완력을 믿고 홀로 범죄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악인들을 기어이 쥐어팬다.
범죄도시 시리즈 속 “나쁜 놈들은 잡아야 돼”는 시대를 넘나들며 변주된다. 서울의 봄에선 12·12 군사반란 당시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을 모티브로 한 이태신(정우성)의 입을 통해서도 나온다. “내 조국이 반란군한테 무너지고 있는데 끝까지 항전하는 군인 하나 없다는 게 그게 군대냐.” 여기 국가관이 철저한 원칙론자는 시시각각 전세가 기울어지는 가운데서도 고군분투하며 기세를 팽팽히 맞춰 놓는다.
연말 대작인 노량에서도 이 대사는 반복된다. “이 전쟁을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 이순신(김윤석)은 전쟁을 종결하기 위해 왜군을 끝까지 쫓아 섬멸하겠다는 의지를 다진다.
그러고 보면 한국형 히어로들은 국가 시스템 내지는 세상과 불화한다는 공통점도 있다. 이들은 모두 내부의 적으로 인해 발목이 잡혀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범죄도시 시리즈에선 상부가 무리한 수사라며 마석도를 말리기도 하거니와, 3편에선 아예 경찰이 범인이다. 서울의 봄에서도 결코 멈추지 않을 것만 같던 이태신에게 제동을 거는 것은 결국 상부다.
노량에선 진린이 명나라 황제에게 하사받은 칼로 항전을 결사하는 이순신을 겨누면서까지 전투를 만류하는 장면이 들어간다. 임금 선조가 왜 아직도 이순신은 고니시 유키나가를 잡지 못했느냐고 책망하자 신하 윤두수가 이순신이 공적을 세우지 않으면 오히려 잘됐다고 고하는 장면도 있다. 이들 영화 모두 상황과 원칙이 충돌할 때, 자신을 멈춰 세우려는 세상과 이를 돌파하려는 원칙론자의 대립을 통해 극을 끌고 간다.
애국 영웅 캡틴 코리안에 열광하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원칙 없이 상황에 따라 부화뇌동하는 세상, 자기 진영에 따라 진실도 다르게 취급하는 세상에서 그저 원칙과 본질만을 추구하는 마음을 영화에서라도 찾고 싶은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해 보인다. 진영과 조직 논리에 상관없이 본질만을 향해 가는 올곧은 이들이 그만큼 현실에선 귀하다는 것이다.
대중은 영화를 통해 불의한 세상을 극복할 상상력을 얻고, 올바른 세상에 대한 비전을 얻는다. 혹은 잘못된 현실에 대한 대리만족으로서 영화를 소비한다. 영화란 언제나 한국 사회의 거울이었지만, 최근엔 그러한 경향이 더욱더 뚜렷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올바른 세상에 대한 비전을 의리로 똘똘 뭉친 군대와 경찰 조직의 초인적 영웅상에서 찾고 열광하는 심리가 무엇인지도 궁금해진다. 한국 사회가 불의에 대한 대안으로서 여전히 초인적 메시아를 갈망해서? 매력적인 서사를 가져 한때 초인처럼 보이던 정치인들이 권력을 쥐자마자 그저 비루한 욕망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걸 보고도?
아 참, 이들 영화의 또 다른 공통점. 모두 영웅담을 다루지만, 관념적 영웅주의에 대해서 동시에 냉소를 심어 놓았다는 점이다. 결국 동료의 조력으로 퍼즐을 풀어가는 마석도, 전두환을 모티브로 한 전두광의 대사(“인간은 강력한 누군가가 자기를 리드해 주길 바란다니까”),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인간적인 마음을 부각하고 전장을 왜군과 조선군 일개 병졸의 시선으로 따라가는 노량 속 연출까지. 불의를 일소하는 영웅을 기대하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다독이면서도 동시에 냉소하는 표정이 영화에서 동시에 스친다. 올해 영화는 한국 사회 그 자체가 됐다.
임현석 디지털이노베이션팀 기자 lh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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