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좋으면 본다”…‘서울의 봄’이 증명한 ‘1000만 관객’ 공식 [미드나잇 이슈]

김희원 2023. 12. 24.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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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극장가, 2019년 정점 찍고 코로나19로 추락
비싼 관람료에 OTT 성장…팬데믹 끝나도 ‘침체’
관객 반토막에도 연간 ‘천만 영화’ 두 편 탄생
20일 개봉 ‘노량’…연말 한국영화 ‘훈풍’ 잇는다

한국 영화 산업은 2019년 정점을 찍었다. 영화 관람객 숫자가 2억2600만명으로 가장 많았고 1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5편(한국영화 2편)이나 나왔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이어 아카데미 4관왕까지 거머쥐었다. 전 세계가 한국 영화 시장에 주목했다.

그러나 곧바로 끝 모를 내리막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영향이었다. 사람들은 영화관을 찾지 않았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눈을 돌렸다.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등 국내외 OTT가 무섭게 성장했다. 경영난에 시달린 영화관은 영화 관람료를 인상할 수밖에 없었다. 비싸진 영화표 때문에 사람들은 영화관 찾기를 더욱 꺼렸다. 그 사이 OTT는 완벽하게 자리 잡았다.
24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 영화 '서울의 봄' 홍보물이 게시돼 있다. 뉴시스
돈은 OTT로 몰리고 ‘극장용’ 영화에 대한 투자가 줄었다. 그랬더니 영화관에서 볼 영화가 없게 됐다. 명절이나 연말 성수기만 되면 배급사들이 앞다퉈 ‘텐트폴’(흥행이 확실하게 기대되는 작품) 영화를 개봉하며 경쟁하던 풍경이 사라졌다. 팬데믹이 끝나도 관객들은 영화관에 돌아오지 않았다. 이제 ‘천만 영화’는 나오기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천만 영화는 계속 나온다. 양상은 전과 달라졌어도 좋은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고 싶은 관객의 욕구는 사라지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12·12 군사반란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24일 누적 관객 수 1000만명을 돌파했다. 지난달 22일 개봉해 33일 만이다.

‘서울의 봄’은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이끄는 군내 사조직 하나회가 무력을 동원해 불법적으로 군 지휘권을 장악한 사건을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재구성한 작품이다.
영화 ‘서울의 봄’ 스틸컷.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공
실화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오락 영화의 문법을 충실히 따랐다. 이에 군사정권 시대를 보낸 중년 이상 세대는 물론 해당 사건을 모르는 2030 세대로부터도 공감, 분노, 현대사에 대한 관심을 끌어내며 호평받고 있다.

한국 영화계는 들떴다. 1000만이라는 상징적 숫자가 위기의 한국 영화 시장에 희망을 줬다는 것이다. 얼마 전 시원찮았던 추석 연휴 성적 탓에 분위기가 침울한 가운데 나온 천만 영화라 영화계에 더욱 큰 의미로 다가온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서울의 봄’은 올해 첫 천만 영화가 아니다. 지난 5월 31일 개봉한 ‘범죄도시3’도 개봉 한 달여 만에 관객 1000만명을 넘겼다.

지난해는 어떤가. 지난해에도 ‘범죄도시2’와 외화인 ‘아바타: 물의 길’이 2편이 관객 1000만명을 돌파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4편, 두 해 연속 2편씩 천만 영화가 탄생한 것이다.
사진=뉴시스
이는 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도 나쁜 성적이 아니다. 

한국에서는 2003년 실미도를 시작으로 2019년까지 27편의 천만 영화가 나왔다. 2007, 2008, 2010, 2011년엔 천만 영화가 한 편도 없었다. 가장 많이 탄생한 해는 2019년 5편(극한직업, 어벤져스: 엔드게임, 알라딘, 기생충, 겨울왕국2)이었고, 2014년 4편(겨울왕국, 명량, 인터스텔라, 국제시장), 2015년 3편(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암살, 베테랑)이 뒤를 이었다. 나머지는 대부분 1∼2편이었다. 

물론 천만 영화 숫자만 놓고 한국 극장가의 ‘회복’을 말할 수는 없다. 관객 수는 절반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두 편의 천만 영화가 탄생한 2017년(택시운전사, 신과함께-죄와 벌)과 2018년(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신과함께-인과 연)의 연간 관객 수는 각각 2억2000만, 2억1600만이었다. 2019년엔 2억2700만명이었다.

7년 연속 2억명을 넘겼던 연간 관객 수는 지난해 1억1300만명, 올해 1억1900만명(11월까지)으로 코로나19 이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24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영화관에 영화 '서울의 봄' 홍보물이 게시돼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서울의 봄은 개봉 33일 만인 이날 1000만 관객을 기록했다. 뉴시스
관객이 절반으로 줄었음에도 천만 영화가 이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나온다는 것은 관객의 ‘선택과 집중’ 경향이 뚜렷해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작품이 뛰어나면 아무리 관람료가 비싸고 OTT가 흥해도 관객들은 영화관을 찾는다는 말이다.

올해 세 편의 영화를 봤으며 그 중 두편이 ‘서울의 봄’과 ‘범죄도시3’였다는 회사원 김모(36)씨는 “전에는 한 달에 한두 번 꼴로 영화관에 갔지만 이제 영화 관람료가 비싸져서 자주 가지 않는다. 재미없거나 작품성이 떨어지는 영화를 보면 돈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좋은 영화는 여전히 영화관에서 보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평이 좋은 영화를 골라 본다”고 말했다. 

한 멀티플렉스 관계자는 “한국영화가 잘 안되는 때에도 ‘서울의 봄’이 천만 영화 반열에 올랐다는 것은 기대를 충족하는 작품이 나와만 준다면 관객들이 언제든지 극장을 찾아 영화를 본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연말 극장가를 찾는 관객이 늘면서 ‘서울의 봄’이 뒷심을 발휘하는 가운데, 이제 관심은 20일 개봉한 ‘노량: 죽음의 바다’로 옮겨가고 있다.

‘노량’은 ‘명량’(2014), ‘한산: 용의 출현’(2022)에 이은 이순신 3부작의 마지막 작품으로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노량해전을 배경으로 한다. 이순신 장군 역의 김윤석과 백윤식, 정재영, 허준호 등 존재감 묵직한 배우들이 열연했다. 전작보다 해상전투신에 더욱 공을 들였고 특히 화공을 이용한 전투신이 압도적이라는 평이다. 개봉 당일 박스오피스 1위에 올라 나흘째인 23일 관객 100만명을 돌파하며 순항 중이다.
영화 ‘노량’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앞서 ‘명량’은 1300만 관객을 동원했고, ‘한산: 용의 출현’은 극장가가 얼어붙은 상황에서도 670만 관객을 모아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서울의 봄’이 없다면 ‘노량’의 관객 수가 더욱 파죽지세로 올라갈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 ‘서울의 봄‘이 기세를 올리고 있어 경쟁작이 되어버린 상황”이라며 “중요한 것은 두 작품이 어려웠던 영화관에 훈풍을 불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연말연초에는 외화보다 한국 역사를 다룬 작품을 많은 관객이 찾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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