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아기 예수가 포화에 스러졌다”
이스라엘은 이날도 대가족 몰살
“기쁘다 구주 오셨네 부를 수 있나”
“만일 예수께서 오늘 태어나셨다면 가자지구의 잔해 속에서 태어나셨을 것이다. 오늘 누가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부를 수 있겠나.”
요르단강 서안지구 베들레헴에 있는 루터교 크리스마스 교회의 문테르 이삭 목사는 성탄절을 앞둔 23일(현지시간) 이같이 말했다. 그는 부서진 시멘트와 돌더미 위에 놓인 아기 예수 인형을 가리키며 “팔레스타인의 성탄절은 이런 모습”이라고 했다. 아기 예수가 태어난 베들레헴이 올해 성탄절에는 예년과 달리 조용하고 침울하다고 워싱턴포스트(WP)·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서안지구의 지배적 종교인 이슬람교와 유대교는 성탄절을 기리지 않지만, ‘예수 탄생의 성지’인 만큼 전 세계에서 이날을 축복하려는 이들이 베들레헴으로 몰려들곤 했다. 구유 광장을 비롯한 곳곳에서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 점등식과 성대한 퍼레이드가 열리고, 사방에서 캐럴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올해 성탄절 행사는 대폭 축소되거나 사라졌다. 약 70㎞ 떨어진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전쟁 때문이다. 요셉과 마리아의 여정을 기리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베들레헴까지 이어지는 총대주교 행진은 악기 연주 없이 규모를 축소해 진행될 예정이다. 보통은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대통령 등 고위 인사가 참석하지만 올해 참석 여부는 불투명하다.
베들레헴 일대에는 기독교인 약 3만5000명이 산다. 서안지구 팔레스타인인 중 약 2%는 기독교인이며, 가자지구에도 기독교인 약 1000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베들레헴의 기독교 공동체는 하마스가 지난 10월7일 이스라엘을 습격한 것을 규탄했고, 이스라엘의 무차별 보복이 시작된 이후에는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인도적 재앙에 우려를 표했다. 성탄절을 맞아 축제 분위기를 지양하자는 결정 또한 이들이 자체적으로 내렸다.
이삭 목사는 “화면 앞에 붙어 앉아 어린이들이 잔해 밑에서 끌려 나오는 것을 매일 봤다”며 “가자지구에서 살해된 모든 어린이에게서 예수님의 모습을 본다”고 말했다. 한나 하나이아 베들레헴 시장은 성탄절 메시지에서 올해를 ‘애도의 해’로 선포하고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서 벌인 전쟁을 “인종청소”이자 “대량학살”이라고 비판했다. 베들레헴은 경제적으로도 타격을 입었다. 매년 평균 외국인 관광객 150만~200만명이 방문했으나, 전쟁 이후 관광은 완전히 끊겼다.
가자지구에서는 이날도 포성이 계속됐다. 이스라엘군은 북부 자발리야 난민촌과 중부 누세이라트 난민촌에서 작전을 벌였고, 북부에서 대가족 70여명이 몰살당했다는 보도도 이어졌다. 가자지구 누적 사망자 수는 2만258명이다.
베들레헴에 사는 이들 상당수가 가자지구에 친지가 있다. 움 샤디는 “이 대량학살 전쟁 속에서 어떻게 성탄절을 축하할 수 있나. 가자지구 사람들이 하루에 한 끼도 먹기 힘든 상황에서 축하할 수는 없다”고 알자지라에 말했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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