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想과 세상] 목화가 피어 살고 싶다고
시든 억새를 쥐고 당신에게 가는 길
눈구름에 입술을 그리면 어떤 슬픔이 내려앉을까
눈사람을 만들 때 당신의 눈빛이 무슨 색으로 변할까
은색의 숲이 심장이 뛰기 시작해
몸속에 목화들이 우거져
당신에게 가는 문병은 어디로 휘어질까
마른 목화솜을 쓸어 모으면
마음엔 서리지 않는 유리 입김,
단 한번 몸과 기쁨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살려주세요 빌 수밖에 없는
사람의 몸과 캐럴의 종이 울던 밤
솜 같은 당신을 안아보았지
한 사람을 지우기 전에 이 슬픔이 끝나기 전에
한 문장만 읽히고 있었어 사는 거 별거 있었냐 그냥,
목화가 피어 울고 싶다고 살고 싶다고
그래, 엄마, 잘 자
정현우(1986~)
시인은 ‘시든 억새’를 손에 꼭 쥐고 엄마에게 문병 간다. 마음은 폭설에 휘어진 억새밭이고, 눈동자에는 눈구름이 지나간다. 문병 가는 길은 온통 ‘은색의 숲’이다. 당신의 창문이 얼어버릴까 봐, ‘마른 목화솜’으로 닦는다. 당신의 마음에 서리가 끼지 않도록, 아픈 몸이 더 무너지지 않도록.
‘캐럴의 종’이 울리던 밤에 시인은 엄마를 안아주었지. 잠든 엄마의 눈꺼풀 안쪽에는 눈송이들이 하염없이 내릴지도, 슬픔의 고드름이 심장을 찌를지도 모른다. 사는 것에 대해 ‘별거 있었냐’고 말하는 엄마에게 시인이 해줄 수 있는 말은 ‘잘 자’라는 한마디뿐. 살고 싶다는 엄마의 시간은 눈보라 속에서 희미해져 가겠지. 목화솜처럼 따스한, 세상 모든 엄마는 아이들에게 작은 신이었겠지. 아이들은 커가면서 다른 신들을 찾아가겠지. 신은 도대체 어디에 있나, 왜 자꾸 숨어 버리냐면서.
이설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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