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실패한 국정운영에 한동훈 책임은 없나

정제혁 기자 2023. 12. 24. 20: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여당이 두 달 넘게 하고 있는 이른바 혁신 논의는 매우 기이하다. 위기의 1차적 원인이 윤석열 대통령의 잘못된 국정운영이고, 거기에 부화뇌동해 여당을 용산 대통령실의 여의도 출장소로 만든 ‘핵관’들의 윤심팔이가 위기의 2차적 원인이라는 걸 모두 안다. 이런 상황이라면 대통령실에 종속되지 않는 당, 대통령실을 견제·견인하는 당을 만드는 것이 혁신의 방향이어야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은 딴판이다. 마치 대통령실이 여당 혁신의 주체인 것 같다. 장제원 의원의 불출마 선언, 김기현 전 대표의 사퇴에 ‘윤심’이 어른거리고, 비대위원장 인선을 놓고도 ‘윤심’ 얘기만 무성하다. 결국 현직 법무부 장관이던 한동훈씨가 여당 비대위원장에 내정됐다. 검찰공화국의 사회적 피로감이 만연한 상황에서 검사 출신이 여당마저 접수한 것이다.

한 전 장관은 윤석열 정부의 명실상부한 2인자다. 이 말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 실패에 한 전 장관 역시 그 지분만큼의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검찰공화국의 토대는 검찰의 강력한 수사권이다. 한동훈 법무부는 검찰청법 시행령과 수사준칙을 개정해 검찰의 수사 범위를 현행 검찰청법 시행 이전 수준으로 되돌려놓았다. 여기에다 검찰 요직을 ‘윤석열 사단’ 검사들로 채워넣어 윤 대통령이 검찰을 직할하는 구도로 만들었다. 과거 검찰청법에 있던 검사동일체 원칙이 대통령·검찰 동일체 원칙으로 확장되었다는 느낌마저 든다. 지난 대선 때 윤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전국 최대 검찰청인 서울중앙지검이 특별수사팀까지 만들어 현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사들을 대대적으로 수사하는 것도, 검찰이 야당이나 전 정권 인사들을 하루가 멀다 하고 압수수색하는 것도, 반면 의심스러운 정황이 차고 넘기는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관여 의혹 수사는 제자리걸음인 것도,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취소 소송 2심에서 법무부 측이 ‘패소할 결심’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무성의한 변론으로 일관한 끝에 결국 패소에 성공(?)한 것도 한 전 장관이 애써 구축한 제도와 인적 토대의 결과물이다. 강서구청장 보선 패배를 방아쇠로 여권의 위기감이 확산해 오늘의 혁신 논의에 이르렀다. 여권은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유죄를 확정받아 구청장직을 잃은 검찰 수사관 출신 김태우씨를 사면복권까지 해가며 무리하게 공천해 참패를 자초했는데, 한 전 장관 역시 김씨의 사면복권을 윤 대통령에게 상신한 주무 장관이었다는 점에서 정치적 책임이 적지 않다.

여당이 한 전 장관을 비대위원장에 내정한 데는 윤 대통령과 한씨의 특수관계 못지않게 한씨의 정치적 상품성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여당 나름으로는 ‘더불어민주당의 꼰대 86세대 대 X세대 한동훈’의 구도를 염두에 두었음직하다. 그러나 상품성이라는 것도 올바른 방향과 만날 때 힘을 갖는 법이다. 내년 총선은 윤석열 정부 집권 1년11개월을 평가하는 중간선거다. 여당이 혁신위에 이어 비대위를 꾸린다는 것 자체가 국정운영에 무언가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여당의 혁신이라는 것이 결국 국정운영에 대한 냉정한 평가를 토대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그에 걸맞은 새 인물을 발탁하는 것일 텐데, 윤석열 정부의 2인자로서 그 자신도 책임이 있는 한 전 장관이 과연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냉정하게 평가할 수 있겠는가, 한다고 해도 유체이탈 화법으로 비치지 않겠는가, 그러지 않기 위해 일종의 자기부정으로까지 평가를 밀어붙일 수 있겠는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런 존재론적인 난점에 더해 일천한 정치적 경험의 한계, 유아적 화법의 문제도 있다. 정당 공천은 목숨을 건 생사의 전장이다. 검찰 인사에 비할 바가 아니다. 김기현 전 대표가 대표직을 버릴지언정 총선 출마는 포기하지 않는 것을 보라. 고도의 정치력을 요하는 이런 문제에는 설득하고 조정하는 성숙한 어른의 언어가 필요하다. 특유의 ‘너도 그랬잖아’식 화법의 유통기한은 이제 끝났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한 전 장관이 이런 장애물을 용케 극복하고 총선에서 성과를 낸다면 여권 내 권력 중심은 미래권력인 한 전 장관 쪽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 윤 대통령은 총선에서 이기면 이기는 대로, 지면 지는 대로 조기 권력누수를 피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한동훈 비대위원장 내정과 동시에 레임덕의 시계는 돌아가기 시작했다. 통상 임기 말에나 터져나오는 대통령 부인 관련 잡음이 벌써 여기저기서 들리는 것은 징후적이다. 윤 대통령만 그걸 모르는 것 같다.

정제혁 사회부장

정제혁 사회부장 jhjung@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