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인조 트리’ 대 ‘생나무 트리’
1521년 크리스마스 전날 밤,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가 숲길을 산책하다 눈 쌓인 전나무가 달빛 아래 환하게 반짝이는 모습을 보고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이 전나무와 같다. 예수님의 빛을 받으면 주위에 아름다운 빛을 밝히며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루터는 이 장면을 간직하고자 전나무 한 그루를 집에 가져와 눈 대신 솜으로, 달빛 대신 촛불로 장식했다. 그 후 1419년 프라이부르크에서 처음 등장한 걸로 기록된 크리스마스트리가 독일을 넘어 유럽 각국으로 퍼졌다고 한다.
이 트리는 전쟁통에도 빛을 밝혔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12월24일, 영국·프랑스 연합군과 독일군이 대치 중인 프랑스 북부 전선에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참호 속에서 나지막이 캐럴을 읊조리던 양측은 어느새 ‘크리스마스 휴전’에 합의했고, 트리를 함께 세운 뒤 모여 앉아 가족사진을 돌려보며 고향 얘기를 나눴다. 축구도 함께했다. 독일이 3-2로 이겼지만 마지막 골은 오프사이드였다. 영국군이 가족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알려진 이 실화는 2005년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소재가 됐다.
크리스마스트리로 쓰이는 나무는 전나무·가문비나무·구상나무·삼나무 등이다.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상록수이자 원뿔 모양으로 곧게 자라는 침엽수들이다. 무한한 생명력과 올곧은 희망을 상징한다. 근래에 트리를 말할 때는 ‘기후위기’가 빠지지 않는다. 2021년 여름 미국 서부 지역의 ‘열돔’ 폭염과 가뭄으로 트리용 침엽수 500만그루 중 10%가 손상됐다. 그 후 비싸고 귀해진 생나무 대신 중국산 플라스틱 인조 트리를 세우는 집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생나무·인조 트리 중 어느 쪽이 친환경적인지 따져보기도 하는데, 전문가들은 인조 트리의 탄소 배출량이 10배 이상 많다고 했다. 값비싸고 관리하기 불편해도 생나무 트리가 환경에 낫다는 것이다.
지금 지구촌 곳곳에서 크리스마스트리가 빛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아기 예수가 태어난 베들레헴은 조용하고 침울하기만 하다. 트리도 캐럴도 없다. 크리스마스에도 포성이 멈추지 않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때문이다. 기후위기 문제와 더불어, 1차 세계대전 중에도 평화와 화해의 시간을 만든 <메리 크리스마스> 기적을 떠올리게 하는 크리스마스다.
차준철 논설위원 che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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