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수선도 최선을 다하니 알아주는 이들이 [6411의 목소리]

한겨레 2023. 12. 24.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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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11의 목소리]

드라이클리닝 한 바지를 스팀다리미로 다리고 있는 필자. 필자 제공

이정숙 | 세탁소 운영

17살부터 일을 시작했으니 벌써 50년이 되었네요. 충남 보령시 대천에서 6남매 중 첫째로 태어나, 이모가 계신 전북 군산에서 중학교에 다니기 위해 혼자서 고향을 떠났어요.

야간 중학교에 입학해 낮에는 양재학원에 다녔는데, 3개월쯤 뒤 이종사촌 오빠가 일류 재단사로 일하던 군산에서 가장 큰 의상실에 취직했어요. 미싱사 선생님 밑에서 단을 꿰매고 끝마무리하는 하급 일부터 시작해 주머니와 옷깃에 싱(빳빳하게 만들기 위해 넣는 재료)을 붙이는 중급 일을 거쳐 모든 재료를 준비해서 미싱사를 돕는 상급 일까지, 4년 동안 일 배우고 중학교를 졸업했어요. 그 뒤 몸이 아파 일 그만두고 고향집에서 3개월 정도 요양하고 겨우 나았습니다.

배운 게 의상 일이라, 다시 이종사촌 오빠가 군산에 차린 의상실에서 일하며 재단까지 배웠어요. 장사가 되지 않아 의상실이 문을 닫게 되자, 고모가 계신 서울로 올라와 다닐 만한 양장점을 물색했어요. 처음 다닌 양장점은 일이 너무 많아 의자에서 엉덩이를 뗄 새도 없었어요. 다시 병이 생겨 잠시 쉬다가 다른 양장점을 다녔는데, 재단만 할 줄 아는 주인 밑에 일하는 사람은 나뿐이라 여기서도 거의 모든 일을 해야 했지요.

그렇게 여러 의상실을 전전하다가 서울 성북구 삼선동에서 의상실을 열게 됐습니다. 그때가 22~23살 정도 됐을 거예요. 10년 넘게 의상실을 하면서 고향 부모님께 돈도 보내드리고, 동생들도 서울로 데려와 학교에 다니게 하면서 바쁘게 살았습니다. 그러다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느라 의상실을 접었어요. 하지만 몇년 뒤 다시 일을 시작했지요. 아이들 학비와 학원비를 벌어야 했거든요. 그렇게 수선을 겸한 세탁소 일을 시작해 20년 넘게 하고 있네요.

요즘 같은 겨울에는 패딩과 코트, 양복이 가장 많이 들어옵니다. 먼저 오염이 된 부분을 전처리하죠. 오염물질에 따라 각기 다른 약품을 이용해서요. 그 뒤에 물빨래할 것은 고급 세제로 손빨래를, 드라이클리닝 할 것은 클리닝용 기름을 써서 기계에 넣고 세탁해요. 와이셔츠와 바지는 4천원부터, 코트나 패딩, 이불은 1만5천원부터 세탁비가 매겨져요.

성수기는 겨울옷을 정리하는 봄입니다. 비성수기에 하루 5~10벌 들어오던 게 이때는 20벌 정도 들어옵니다. 보통 오전 10시 반 정도 출근해 저녁 8시까지 가게에 있어요. 이렇게 일해서 어느 정도 생활은 가능하지만, 돈을 모으는 건 불가능해요. 하루 벌어 하루 생활하는 거지요. 나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요. 월세로 전체 수입의 50%가 나가고, 각종 약품, 세제, 옷걸이, 비닐 커버와 같은 재료비가 10~20%예요.

한동네에서 20년 넘게 세탁소를 해왔으니 단골손님이 많지요. 하지만 주택재정비 공사로 이사한 사람이 많고, 코로나에 셀프빨래방까지 생기며 운영이 쉽지 않아요. 정장 대신 편한 옷을 입고 출근하는 이들이 많아져 세탁소에 옷 맡길 일은 더욱 줄어들었지요. 대신 맞벌이 가정은 시간이 없어 세탁소에 옷과 이불을 맡기는 경우는 많더군요.

옷을 맡기고 찾아가지 않은 손님이 많은 게 제일 힘듭니다. 찾아가지 않은 옷으로 세탁소가 가득 차,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길만 겨우 남겨졌을 정도예요. 그런 분들은 유독 선금을 지불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크고, 길에서 만나면 찾으러 오겠다고 말해놓고도 안 오시는 경우도 많습니다. 길게는 7년 만에 찾아간 경우도 있어요. 예전에는 무조건 기다렸는데, 요즘은 도저히 버틸 수 없어 일부는 버리고 쓸 만한 것은 기부하기도 합니다.

그래도 돌이켜 보면 좋은 일도 많았어요. 다른 세탁소에서 빼지 못한 청바지의 페인트 자국을 여러가지 방법을 써서 빼 드렸더니 손님이 무척 기뻐하는데, 아주 뿌듯했어요. 다른 세탁소에선 제거하지 못한 흰옷 얼룩을 빼 드렸더니, 고맙다며 수고비를 더 주고 가시는 분도 있었지요. 좋아하시는 손님을 보니 저도 너무 즐겁고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 손님은 나중에 따님도 저희 세탁소에 옷을 맡기게 하셨어요. 성심성의껏 일하면 알아주시는 손님이 있다는 것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최선을 다하면 인정을 받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정리: 강명효 ‘6411의 목소리’ 편집자문위원

※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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