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소비자 '갓성비 아니면 플렉스'… 어중간한 동네가게 줄폐업
중국산 초저가제품 직구 늘고
중고거래 벼룩시장에 오픈런
짠돌이도 필요땐 '스몰 럭셔리'
연말 고가와인·위스키 불티
초고가·초저가 소비 트렌드에
소규모 자영업자 설자리 없어
◆ 소비의 두얼굴 ◆
30대 김 모씨(서울 강서구)는 일명 '거지방(거지 카톡방)'과 '부자방(부자 카톡방)'에서 동시에 활동한다. 수백 명이 모인 거지방은 말 그대로 초절약 공유방이다. 본인의 '짠돌이' 소비 내역을 공개하고, 누가 더 적게 썼는지 경쟁한다. 회원들이 '인증'하면 그제야 사고 싶은 걸 구매하기도 한다. 알뜰 소비를 늘 염두에 두는 방이라 허투루 돈을 쓰는 것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된다. 부자방은 그 반대다. 부와 사치를 뽐내는 방이다.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다거나, 고가 명품을 샀다는 소비 내역을 인증한다. 그는 "앱테크로 얻은 쿠폰으로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한 끼 15만원짜리 오마카세를 즐긴 적도 있다"며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갓성비(신이 내린 가성비)와 플렉스(부의 과시). 올해 내내 지속된 고물가·고금리로 지갑이 얇아진 젊은 층과 중산층 사이에서 평소엔 초저가, 특별한 날엔 초고가를 소비하는 양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여기에 금융자산이 많아 오히려 지갑이 두툼해진 부유층은 초고가 소비를 늘리면서 전반적인 소비 양극화가 더욱 깊어지는 모습이다.
올해 중국산 저가 직구(직접구매), 중고거래 활성화로 대표되는 초저가 열풍은 소비 양극화의 하단을 크게 낮췄다. 대형마트나 온라인쇼핑몰 외에 동대문이나 지하철 상가, 동네 가게는 대응이 불가능한 수준까지 낮아졌다는 평가다.
실제로 24일 중고거래 플랫폼 번개장터에 따르면 올해 들어 12월까지 7차례 진행한 플리마켓(벼룩시장) 방문자는 1만6000여 명에 달한다. 정가보다 50~90% 싼 브랜드 의류를 사기 위해 새벽 2시부터 대기줄을 서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사전 입장표도 1시간 만에 동났다. 중국 초저가 직구 플랫폼 알리와 테무는 20·30대 젊은이들이 몰리며 올해 앱 다운로드 상위 1, 2위를 휩쓸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 시즌에 가장 많이 팔리는 와인·위스키, 케이크 매출에서도 소비 양극화 현상이 나타난다. GS25에 따르면 이달 들어 17일까지 10만원을 넘는 와인·위스키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218%, 398% 급증했다. 3만~5만원대 저가 와인·위스키 판매량도 크게 늘었다. 하지만 5만~10만원대 와인·위스키는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특급호텔 케이크와 저가 케이크는 잘 팔리지만, 어정쩡한 가격대 케이크는 외면하는 현상도 두드러진다. 신라호텔, 롯데호텔을 비롯한 특급호텔이 내놓은 케이크는 올해 가격을 20% 이상 올렸는데도 크리스마스이브와 당일 예약이 진작에 마감됐다. 신세계푸드가 최근 선보인 9980원짜리 가성비 케이크는 출시 2주 만에 무려 3만개나 팔려나갔다.
소규모 케이크 점포는 호텔 초고가 상품보다 가격이 크게 낮지만, 그렇다고 1만원대 이하로 판매하기도 어려워 딜레마에 빠져들고 있다.
이수진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국민소득이 높은 시대에 태어나 특별한 경험과 만족을 중시하는 젊은 소비층은 적어도 특별한 날엔 자신이 좋아하는 영역에 과감히 지갑을 여는 '스몰 럭셔리' 성향을 보이고 있다"며 "젊은 층은 플렉스 소비가 평소의 절약형 소비와 모순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소비 양극화의 상단인 명품시장은 소비가 위축된 올해에도 굳건하다.
2~3년 전과 같은 오픈런 현상이 줄었고 명품 판매 증가율도 5% 안팎으로 둔화됐지만, 초고가로 가격을 높인 명품은 오히려 높은 판매 증가율을 보였다. 한 백화점에서는 파텍필립, 바쉐론콘스탄틴을 비롯한 하이엔드 시계 매출이 10~30% 증가해 비쌀수록 잘 팔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반클리프아펠, 까르띠에 같은 하이엔드 주얼리는 올해 매출이 최대 60% 증가하기도 했다. 이는 고물가·고금리에도 소득 상위 계층의 소비 여력은 유지되거나, 오히려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인협회 설문에 따르면 소득 상위 20%(5분위) 계층의 60.9%는 내년에 소비지출을 확대하겠다고 답했다. 모든 소득 계층을 통틀어 전년 대비 소비 확대 비중이 확연히 높다.
점점 양극화되는 소비시장에서 자영업자들이 운영하는 단일 점포는 핫플을 제외하곤 소비자들 관심을 끌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초저가와 초고가는 중견기업 이상만 대응이 가능하다"며 "소상공인 자영업자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라고 전했다.
[정슬기 기자 / 이효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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