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철도은행 등장과 금융·비금융의 경계
게이오전철·JR, 은행업 진출
미국은 애플·골드만삭스 협업
'금융의 경계' 갈수록 낮아져
韓기업·금융당국도 대비해야
지난 9월 일본에서 '게이오(京王)네오뱅크'라는 생소한 형태의 은행이 문을 열었다. 전철·백화점 등을 운영하는 기업인 게이오전철그룹이 설립했는데, 일본에서는 이 회사를 첫 '철도은행'으로 분류하며 세계적으로 드문 사례라고 평가한다. 내년 봄에는 일본을 대표하는 철도기업 JR도 'JR뱅크'라는 이름으로 철도은행업에 가담하며 경쟁을 가열시킬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규모가 큰 철도회사라도 복잡한 금융 시스템을 안고 있는 은행업에 혼자 뛰어들기는 쉽지 않다. 이들 업체가 자사가 가진 철도·역 등 인프라와 고객망을 은행업에 활용키로 한 배경에는 은행이 비금융사나 금융사에 은행 기능·시스템을 제공하는 '서비스형 뱅킹(BaaS)'이 있다.
게이오네오뱅크는 게이오전철과 은행 시스템을 제공해주는 스미신SBI넷뱅크(인터넷뱅크)가 손을 잡고 운영한다. 철도회사가 예적금과 주택담보대출 등 금융거래 창구가 되고 수신액의 관리나 대출에 대한 자금 지원은 인터넷은행이 하는 방식이다. 철도회사는 예적금의 수신이나 대출을 성사시켜 이에 대한 대행 수수료를 받고 이자수익 등은 인터넷은행이 갖는다. 철도은행은 엄밀히 말해 사업구조상 은행대행업인 셈이다.
게이오전철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유동인구 변화에 영향을 덜 받는 새 사업을 모색해왔는데, 고객층의 확대를 모색해온 스미신SBI넷뱅크와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철도은행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게이오전철은 출퇴근에 자사 라인을 이용하는 고정 고객 등을 대상으로 은행 상품을 적극 어필하고 게이오백화점 등 계열사와의 협업 등도 진행할 예정이다. 스미신SBI넷뱅크는 인터넷은행의 특성상 젊은 이용자가 많았는데, 고객 충성도가 높은 철도업체와 협력해 고객층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BaaS는 애플과 골드만삭스가 손잡고 선보인 애플카드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적용되고 있다. 스미신SBI넷뱅크는 일본 프로야구단인 닛폰햄 파이터스에 뱅킹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BaaS 시장의 빠른 성장세와 이를 통한 금융업의 변화를 예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BaaS를 활용한 사업 다양화는 금융·비금융의 경계가 낮아지는 트렌드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경계가 낮아져 보다 좋은 서비스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면 굳이 전통적인 금융기관을 고집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비금융사들은 자사의 인프라와 탄탄한 고객층 등을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수익원을 찾다 보니 은행을 비롯한 금융업에도 눈길을 돌리고 있다. 금융사들 역시 고객층과 서비스 영역을 넓히고 예대마진이나 보험료 수입 같은 기존의 수익구조를 다변화하기 위해 새로운 파트너나 사업에 눈을 돌린다. 미국 JP모건은 2020~2022년 여행사 2곳을 인수해 여행 부문 매출을 높이고 있다.
BaaS와 같이 산업의 경계를 낮추는 트렌드는 이를 어떻게 대비하고 활용하냐에 따라 금융사·비금융사 모두에 기회일 수도, 위협일 수도 있다. 한국 입장도 다르지 않을 텐데, BaaS와 같은 트렌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일단 앞에서 언급한 일본의 철도은행은 아직 한국에서 탄생하기 힘들 듯하다. 수신·여신 등 기본적인 은행 업무를 다른 곳에 위탁할 수 없다는 규제의 한계도 있다. 또 글로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국의 BaaS 업체나 사례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일본의 3대 금융사 중 하나인 미즈호파이낸셜그룹에서는 올해 사명에 '파이낸셜이 필요한가'라는 논의가 있었다고 한다. 결국 '파이낸셜'을 유지하는 쪽으로 결론 났지만, 그만큼 금융·비금융업의 경계가 얇아지는 것과 사업 다각화에 대해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한국에서 금융업이 갖고 있는 특수성이 있겠지만, 우리 업계와 당국도 '경계의 변화'를 숙고하고 대비할 필요가 있다.
[김규식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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